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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2일차 - 4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19. 02:29
강천보 옆으로는 한강문화관이 있어서 전망대도 있고 편의점도 있어 쉬면서 음료수를 보충하기 좋았다. 한강문화관은 둥그렇고 넙적한 구조물이 지붕을 덮고 있었는데 백로의 날개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강천보는 뾰족하고 길쭉한 구조물이 있는데 근처의 명물 황포돛배의 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어떤 기능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주변을 찾게 하고 기억에 남기는 것은 결국 독특한 외형에서 오는 것이지 싶다. 문득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평소에 나의 기능이 충실하면 외관은 조금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책을 열심히 읽고 각종 잡 기술을 익히고 내면을 충실하게 가꿔가면 누군가는 그 내면을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외면이라는 것은 예선전 같은 것이고 내면은 본선이라고. 내면이 결국 경기에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지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본선은 닿을 수 없다고. 나는 여전히 외관을 꾸미는데는 영 젬병이지만 그렇다고 외관을 꾸미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한강문화관 뒤쪽으로 가면 강천보를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천천히 건너가고 있자니 역시나 유튜브에서 많이 보았던 곳이 나타났다. 워낙 특징적인 곳이라 많은 유튜버들이 이곳의 영상을 남겨놓았다. 강 건너에서 자전거도로로 진입하는 곳인데 우선은 도자기의 도시 여주답게 화강암을 깎아놓은 고려청자형태의 구조물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게 장애물이 잔뜩 되어있었다. 원래는 그 양쪽 끝으로는 자전거가 통과되도록 만들어놓았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차단봉같은 것으로 막아두었다. 결국 자전거를 들어서 건너가야만 했다. 이 곳의 구조가 이렇게 된 이유는 진입로가 급경사이기 때문이다. 경사도가 워낙 심해서 타고 내려간 사람들이 심심치않게 다쳤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단순히 "끌고가세요."라던가 "타고 내려가지 마세요."라고 하면 반드시 타고 내려가고자 하는 청개구리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방지턱이 점차 추가되다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것이지 싶다. 아마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에서 자전거를 '못'타는 것이 아니라 타면'안돼'는 곳은 이 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경사로 옆은 어도가 있었다. 보나 댐 같은 것이 생기면 우선 하류에서 상류로 물고기가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먼 바다로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습성이 있는 회유성 어종들의 길을 막는 셈이 된다. 물고기 하나가 하천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그 종의 멸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물고기가 지나가면서 먹어치우는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들이 번성하게 되고, 반대로 그 물고기를 먹이로 삼는 종의 소멸도 불러온다. 이는 또 다른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본래 그대로를 유지하지 않는 것은 연쇄반응을 통해 생각치도 못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제는 이런 개념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단순히 난개발로 그치지 않고 이런 어도를 통해 예전 모습을 조금이나마 유지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존재한다. 최근에 어도 관련 사진 공모전이 있었던 모양인데 카메라만 있었어도 아마 자리잡고 한참은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싶다. 자전거가 가벼워진 것은 좋지만 카메라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구름이 몽실몽실 떠있는 좋은 날씨였다. 그 선명한 구름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너른 풀밭에 비포장길이 나타났다. 바로 강천섬이었다. 이곳은 예전에 백패킹의 성지였다고 한다. 제주 비양도, 선자령, 그리고 이 강천섬까지가 3대 백패킹 명소라고 한다. 나도 지난 봄부터 백패킹을 해보고 싶어 이것저것 구입하며 준비를 하면서 유튜브를 많이 봤었는데 강천섬에서 백패킹을 하는 영상을 보고 참 좋은 곳이구나 했다. 그러나 그 영상은 3년도 더 전의 영상이다. 2021년 6월을 기점으로 이곳은 피크닉은 가능하지만 숙박은 불가능한 곳이 되어버렸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기존에 사용하던 사람들의 무분별한 행태 때문이었다. 쓰레기 무단투기는 기본이고 화장실에서 전기도둑질을 하지 않나,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나, 어업면허가 있어야만 어로가 가능한 곳에서 낚시질을 하지 않나, 주변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질 않나, 심지어 화기를 사용하다가 불을 내고 담배를 피운 꽁초를 함부로 버려 화재를 내는 등 여러가지 개념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무료로 수도권에서 가볍게 접근할 수 있었던 백패킹의 명소는 사라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다. 물론 LNT(Leave No Trace -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에 입각해 안전하고 깔끔한 캠핑을 즐기던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정말 슬픈 것은 소수의 개차반이 만들어낸 이 상황에 대해 그 소수의 개차반은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걸 신경쓸 줄 아는 인간들이었으면 애초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거다. 결국 선량한 다수의 캠퍼들만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금도 섬은 아름답고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장소다. 하지만 왠지 새로이 생긴 제약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비포장의 모래밭같은 길을 한참 지나고 야트막한 언덕을 살짝 지나가니 다시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다리 하나가 나타났다. 섬강교라는 이름의 다리로 섬강을 엄청나게 높은 높이에서 지나가는 다리였다. 다리 옆으로는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다리에서 바라본 섬강의 풍경에 눈길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