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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2일차 - 6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21. 01:36
내 기준 오르막, 아저씨 기준 내리막길이었는데, 아저씨는 뭔가 편안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물어보셨다. 오늘 도착지가 목적지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최종 목적지를 말씀드리는게 맞지 싶어 "부산까지 갑니다."고 하니 "부산이요?"하고 놀라신다. 가볍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 생각하신 듯 하다. 아무래도 자전거 국토종주라 하면 자전거를 타는 분들의 로망 같은 것이다 보니 부산까지 간다는 나는 꽤나 낭만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시는 말씀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곧이어 아저씨 뒤로 한 아주머니께서 자전거를 타고 도착하신 것으로 봐서는 부부시고 아내분을 기다리는 중이 아니셨나 싶다. 나도 언젠가 아내와 같이 국토종주를 해보고 싶은데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잘 없지 싶다. 부부가 국토종주를 하는영상을 종종 봤는데 그건 천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지 싶다.
언덕을 올라서부터는 공도에 자전거마크만 딸랑 그려놓은 공용도로를 달려야 했다. 다행히 차가 거의 없는 도로라서 편안하게 가기는 했지만 사실 전용도로가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차가 없어도 항상 뒤를 신경써야 하고 정면의 차량도 신경써야 하고, 음악도 못듣고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속해서 시골의 도로가 나왔다. 무언가 특별할 것 없는 도로를 계속 달리다 보니 네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려왔다. 비내섬 인증센터였다.
스탬프를 찍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그제서야 바로 옆에 있는 비내쉼터라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인증센터 바로 옆에 있는 가게라니 자연스럽게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의 필수코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밖에서 슬쩍 보니 팥빙수를 파는 듯 해서 메뉴판을 보았는데 보통 밖에서 사먹는 팥빙수 가격이 내 기준엔 무난하지가 않다. (딱히 이곳이 더 비싼건 아니었다.) 가난뱅이가 감히 팥빙수는 엄두도 못내고 음료수만 하나 구입해서 자리에 앉았다. 창 저쪽편으로는 비내섬과 다리가 보이는 풍경이 있어서 뷰맛집이었다. 거기서 먹은 파워에이드가 그렇게 시원하고 달았다. 사장님이 온도 센스가 좀 있으신 듯. 오후 다섯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라서 앞서 달린 피로가 누적되어있었다. 한참을 쉬었는데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참고로 자전거를 탈 때 마스크, 헬멧, 팔토시, 무릎보호대, 반장갑 등을 차고 있는데 잠시 쉴때는 그런 것도 벗지 않았다. 근데 여기는 들어오자마자 다 벗어던졌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출발하기위해 다시 하나씩 주워입으면서는 우울함이 몰려올 정도였다. 땀에 절은 옷을 다시 입는 그 기분을 아실런지.
비내섬은 갈대밭이 풍성하고 자갈로 된 강변이 예쁜데다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사용되었다. 징비록, 육룡이나르샤, 정도전, 전우치, 광개토대왕 등 꽤 많은 사극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였다. 그 중 내가 본 드라마는 정도전밖에 없었는데 그 대하드라마의 한 장면이 기억이 날리가 없었다. 근데 현대극으로 최근에 찍은 것이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이건 나도 재미나게 봤고 마침 최근에 재방까지 본 상태. 북한에 떨어진 여주인공이 친해진 북한 군인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소풍을 떠났던 그 장소였다. 쉼터에서 내려가 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면 있는 듯 했는데 이때만 해도 정확한 위치도 모를뿐더러 체력의 소모가 심했다. 내려가서 보고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다시 가게 된다면 볼 수 있으려나.
그림자가 꽤 길어지고 세상이 조금씩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나를 계속 공도로 안내하는데 날이 저물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공도를 벗어나 농로쪽으로 길안내를 해주면서부터는 네비게이션을 본격적으로 불신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앞서 몇 번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고. 다행이 국토종주 표지판이 나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계속 의심하면서 자전거를 탔을 것 같다. 농로의 오른쪽으로는 황금들판이 펼쳐져있었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이런 것은 자전거 국토종주만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그것도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조금 더 지나가니 눈에 익숙한 길이 보였다. 데크길이었는데 막아놓지는 않고 공사중이니 돌아가라는 표시만 해두었다. 돌아서 어떻게 가라는 말도 없이 국토종주 코스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쩌자는 건지. 주변에 딱히 돌아갈 길이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데크길 막바지에 난간이 모두 제거되어 안전테이프를 둘러놓은것을 보니 예전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도로가 다 망가져서 데크 바닥도, 난간도 너덜너덜한데 수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장면이었다. 그나마 내가 갔을 때는 바닥은 다 고쳐놓은 것 같았고 난간을 한참 교체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길을 막아놓고 돌아가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런지 모르겠다. 데크길을 바로 지나면 무언가 진흙 뻘창같은것이 말라붙은 길이 나오는데 이곳도 비올 때 지나가면서 진창에 신발이 빠지고 하시는 장면들을 본 기억이 난다. 국토종주를 하면서 심한 흙길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관리방법을 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을로 붉어진 하늘이 점차 무채색으로 변해갔고 상대적으로 달은 점차 밝게 보였다. 그렇게 자전거도로와 공도를 오가다가 조정지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은 직진을 하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국토종주 간판은 왼쪽으로 꺾어 댐을 건너라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