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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국토종주 2일차 - 7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22. 02:23

    조정지댐은 충주댐의 보조댐이다. 충주댐에서 방류를 시작했을 때 하류의 수위가 갑자기 높아져 생기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하류에 작게 세워둔 댐이다. 물론 여기서도 소량의 수력발전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다. 아무튼 이 조정지댐은 네이버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구글에서는 검색된다.) 아마 조정지댐을 건너면 나오는 곳에 공군 군사시설이 있어서 보안상의 문제로 같이 검색이 안되는 듯 싶다. 아니면 그 자체로 보안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여섯시가 살짝 넘어간 시간이었다. 조정지댐에서 네비게이션과 국토종주 안내표지판이 서로 다른 길을 안내하면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다만 결정을 빠르게 했는데, 네비게이션이 가라고 하는 직진 방향으로는 차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쌩쌩 달리고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라서 빨리 달리는 차들과 함께 달리기는 조금 쫄렸다. 그래서 나는 네비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나중에 네이버지도의 거리뷰 기능으로 직진방향을 살펴봤더니 한 10미터 바로 뒤에 데크길이 이어지면서 차와 완전히 분리되어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댐 방향으로는 차들이 별로 가지 않아서(거기에 뭐가 없으니 차가 안가지 이사람아...)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빠르게 조정지댐을 건넜다. 그리고 댐을 건너 국토종주 방향이라고 화살표가 되어있는 오른쪽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네비게이션이 계속해서 방향이 틀렸다고 시끄럽게 안내를 해댔다. 나는 분명히 국토종주 코스라고 쓰여있는 팻말을 보고 움직이는데 왜 틀리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했던 점은 보통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때 경로를 재탐색하면 내가 지금 있는 지점에서 도착지까지의 최단거리를 새로 계산해주는데 네비게이션이 계속 돌아가라고 표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행방향으로 가는 경로를 끝끝내 재탐색해주지 않았다. 그렇다. 네비게이션은 어쨌든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그러나 그것을 못알아 들은 것은 나다. 그리고 힘든 것도 나다. 이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그런데 네비를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첫 번째 실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야겠다.)

    국토종주 코스 팻말과 바닥의 자전거 그림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주변에 워낙 아무것도 없어서 전조등을 키고서야 겨우 길이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명이 많은 곳이 나타났다. 임페리얼레이크CC라는 골프클럽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세 번째 실수를 하고 만다. 자동차의 진출입을 유도하기 위한 파란색 화살표를 자전거 국토종주 코스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될 임페리얼레이크CC로 향하는 언덕길을 기어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문득 국토종주 코스가 이렇게 사기업 부지의 내부를 지나가도록 짜여져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바닥을 보니 이따금 나오던 자전거 그림도 전혀 나오고 있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은 여전히 조정지댐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주어진 힌트를 하나라도 심각하게 생각했더라면 그때라도 다시 조정지댐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임페리얼레이크CC에서 다시 내려왔다. 그제서야 바닥에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코스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골프장쪽으로 올라가지 말고 직진을 하라고 되어있었다. 파란선 그려놓은 사람들...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안그래도 하루의 끝에 체력도 많이 바닥난 마당에 괜히 업힐 코스를 올랐다 내려오면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국토종주 코스가 있다는 쪽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주변이 어두워졌다. 가로등도 잘 없고 사람도 없고 차도 없었다. 심지어 언덕길이 길게 이어지면서 체력을 있는대로 갉아먹었다. 그러다 도로 왼쪽으로 철조망이 길게 뻗어있었다. 당시에는 여기에 공군이 있는건 알지 못했고 무슨 보안이 심한 연구소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밖에서 봤을 때 건물들이 워낙 깔끔했고 보초병이 보이지도 않았다. 이런 외진 곳에 무슨 연구소가 있나 싶어 오히려 무서웠다. 왜 이럴때 쓸데없이 그동안 봐왔던 좀비영화들이 기억나고 마는지 모르겠다.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내 평소 능력보다 조금 더 세게 페달을 밟았다. 이때쯤엔 다리의 통증보다 공포가 더 컸다.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어느 마을의 가로등에서 잠시 멈추어 양갱 하나를 꺼내 먹었다. 국토종주 시작하면서 준비한 세개의 양갱 중 하나를 이날 처음 먹은 것이다. 긴장을 잔뜩 해서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는데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잽싸게 꺼내 먹었다. 단게 들어가니 조금 마음이 안정되는 듯도 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어둠속 라이딩을 한참 한 끝에 잠시 음식점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 환한 빛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람도 조금씩 있어서 더욱 안심했던 것 같다. 잠시 구석에 서서 현재 내 위치는 어디인지, 내가 도대체 무슨 길을 가고 있는건지, 목적지인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조정지댐에서 직진을 했다면 잘 닦인 데크길을 통해 한시간 정도면 목적지에 편안하게 도착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정지댐에서 댐을 건너라고 알려주는 표지판도 국토종주 코스인 것은 맞다. 다만 충주탄금대인증센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충주댐 방향으로 가는 코스다. 남한강 종주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충주댐인증센터의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데, 국토종주에서는 찍지 않아도 상관 없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충주댐 방향으로는 갈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위에서 저지른 실수로 충주댐에는 가지도 못하면서 충주댐방향으로 가는 코스를 가게 된 것이었다. 코스를 확인해보니 이제 돌아가는 것은 오히려 더 멀어졌고 이제 네비도 포기했는지 진행방향으로 가는 경로를 재탐색해주었다. 쓸데없이 한 시간 이상을 손해본 셈이다. 정말 억울했던 것은 미리 예약해둔 숙소와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가 강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데도 한참을 더 가서 다리를 건너 돌아와야 했다는 점이다. 내 체력은 한칸한칸이 소중한데 억울하게 낭비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인 것을.

    카페나 캠핑장이 있는 강변을 한참 더 달렸다. 그곳도 불빛이 적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앞서보다는 덜 무서웠던 것이 종종 차가 다니고 캠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어서였다. 여차하면 승합차를 타고 지나가는 분께 돈이라도 쥐어드리고 "저를 제발 강 건너편에 데려다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는 상상도 했다. 그리고 그건 꽤나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강 건너로는 오색 찬란한 조명들이 하늘로 강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공포심을 몰아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나온 다리를 건너 편안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오고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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