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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2일차 - 8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23. 15:12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당연히 야간에 방문객을 맞이할 계획으로 세워진 인증센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명 하나 없이 컴컴했다. 자전거를 세워 그 조명을 부스쪽으로 향하게 하고서야 도장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신기하게도 탄금대 인증센터에 가면 빨간색 부스가 두개 있는데 글씨가 쓰여있는 것은 오른쪽의 하나뿐이었다. 아마 도장도 오른쪽 것에만 있었던 것 같다. 왜 두개인지 궁금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예전 것이 하나 있었는데 새것을 설치하고 난 뒤에 철거를 안했다던가, 혹은 한강 자전거길의 종점이자 새재 자전거길의 시작점이고 스탬프를 앞장 뒷장 각각 두 번 찍어야 하기에 두개라던가 하는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런것들을 매우 궁금해하는 나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탄금대는 가야금을 타는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가야에서 가야금 좀 타던 우륵이라는 사람이 신라로 넘어왔는데 왕이 음악을 들어보니 덩실덩실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충주에 거처도 마련해주고 배울 사람도 보내주고 해서 지금의 탄금대 자리에서 강습도 하고 연주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가야금 소리를 들으러 조금씩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지금의 탄금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가 평온하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은 아쉬움을 준다. 임진왜란 당시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던 왜군을 막기 위해 당시까지 명장이라 불리던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수가 적어서였는지 상대가 파죽지세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급조된 병사들의 군기가 부족하여 도망치려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물을 뒤로 하고 진을 치는 이른바 "배수의 진" 전략을 쓴다. 뒤에 물이 있으면 전진만 가능하고 후퇴가 어려워져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배수의 진은 "더 이상 물러날 곳 없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게 목숨을 걸고 맞부닥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왜군은 장거리에서 사격이 가능한 조총을 들고 왔다. 맞서 싸워보기도 전에 총을 맞아 쓰러지면 끝나는 게임인 것이다. 결국 신립의 조선군은 왜군에게 참패하고, 패전의 수모를 감당하지 못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바로 그 앞에 각종 고개가 있어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는데 굳이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를 한 신립장군의 선택에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이 패전으로 인해 조선의 왕은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가기에 이른다. 결국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게 되어 자력구제의 힘을 잃게 된 순간이라고 한다. 나는 우륵의 이야기보다 이 신립장군의 이야기를 거 인상깊게 들었어서 탄금대라는 지명을 들으면 왠지 "탄식을 금치 못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야금 소리도 서글프게 들릴 것 같다.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서 당연히 더이상 진행은 어려웠고 충주시내의 외곽 모텔촌에 숙소를 잡아두었다. 거기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는데 지칠대로 지친 몸이 시간을 길게 느끼게 해주었다.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흐르는 느낌이 들면 몸고생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가 충주역 앞으로 뻗은 길쪽에 있어서 역사를 스쳐지나가는데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의 역에 놀랐다. 인구 20만에 충청도 제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충청도 제1의 도시는 청주로 인구는 약 80만이니까 충주의 4배다. 그런데 충청도라고 하니까 왠지 충주가 더 크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다.) 알고보니 2023년에 기존 역은 철거하고 역사를 신축하게 되어 현재는 간이 건물을 임시로 사용중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싶었다.
최후의 한방울을 다 짜내어 숙소에 들어왔다. 모텔 앞에서 담배를 피고 계시는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같이 들어가셔서 수속을 밟아주셨다. 이번에도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에 허락을 받아 들고 올라갈 수 있었다.(근데 가격도 얼마 안하는 자전거인데 가방만 떼서 올라가면 되지 굳이 접어서 낑낑거리고 들고 올라갈 필요가 있는지 이때부터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올라가서 씻고 나와 길 건너편의 편의점에서 내일 마실 음료수며 저녁과 아침거리 등을 구입했다. 무릎을 보니 반바지 아아래부터 무릎이 꺾이는 부분까지 새빨갛게 타있었다. 손도 반장갑을 낀 곳까지만 딱 빨갰다. 사실 썬크림을 준비해갔는데도 불구하고 가을 햇살을 무시하며 그냥 달렸는데 이틀만에 확연하게 탄 자국이 보여서 놀랐다. 다음날부터는 썬크림을 꼭꼭 바르고 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