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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3일차 - 2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25. 01:28
수주팔봉을 구경하고 계속 도로를 달렸다. 자전거 전용 도로는 아니었고 일반 공도에 자전거 겸용 표시가 되어있을 뿐이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많지 않아서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정말 무서운 곳은 트럭이 쌩쌩 지나다니는 곳이다. 높이가 높은 차일수록 앞에 자전거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트럭이 다니는 곳은 정말 조심해서 다녔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도로에서는 차들이 자전거를 피해 조금 멀리 달려주시는 분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감사인사를 올렸다. 이미 지나가고 계셔서 못보실 가능성이 높지만 혹시라도 보셨다면 배려에 대한 감사인사로 기분 좋으셨기를 바랐다. 그러고보니 딱 한번 내 바로 옆으로 밀고 들어오는 택시때문에 크게 화를 낸적이 있다. 아마 택시기사 당사자는 내가 화났는지도 몰랐을 것 같지만 나는 한동안 화가 풀리지 않았다. 혼자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문득 차를 몰면 성격이 포악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군가는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행위는 목숨을 건 행위다. 교통을 방해하거나 난폭운전을 하는 행위는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와 같다. 그런 상황에서 괜찮다고 할 성인군자가 어디 있겠는가?"하고. 꽤나 납득이 가는 이야기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또 한편 누군가는 운전을 할 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화를 내봤자 상대방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일행이라도 있을라치면 잘못한 것도 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종합해본 즉슨 화가 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이야기리라.
별 특징 없는 시골길을 한참 달렸다. 이상하게 미약한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애써 무시했다.(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큰 사건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퀴를 한참 구르면 달리던 힘으로 어느정도 쭉 나가주어야 하는데 얼마 안가서 속도가 줄어드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나는 그것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오르막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있던 것이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아무튼 실제 언덕길이 나와서 헥헥대며 오르고 있을 때 폐쇄된 주유소 하나를 만났다. 간판에 "유공"이라고 적혀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본 적 없는 브랜드겠지만 예전에는 이 유공주유소가 정말 많았다. 60년대에 미국 걸프오일사와 정부가 합작하여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하여 석유의 정제와 유통을 시작했는데 이때 이 회사의 약칭이 "유공"이었다. 그러다 아예 회사의 정식 명칭이 된 경우다. (한국화약이 한화가 된 것과 같은 케이스다.) 그러다가 80년대에 걸프오일은 철수하고 선경(지금의 SK)이 유공을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유공이란 이름은 계속 사용되다가 90년대 후반이 되어 SK로 이름을 바꾸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결국 20년도 더 전에 유공 주유소는 모두 없어진 셈인데 그보다 더 전에 문을 닫은 주유소가 남아있는 것이다. 묘하게 추억을 자극하는 이름이었다.
수안보로 계속 향하는 길에 갈림길이 나왔다. 내비를 보며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가늠하고 있는데 바닥에서 주먹만한 무언가가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지나가면서 보니 두꺼비였다. 우선 도심에서는 두꺼비 보기가 정말 귀하기에 길을 가다 마주한 두꺼비가 너무나 신기했다. 색상도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색상이 아니라 민트와 초코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살면서 두꺼비를 직접 본 적이 있었던가? 진로소주에서 본 두꺼비 말고는 두꺼비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개구리처럼 점프하는 것이 아니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에서 호방함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떡두꺼비였다. 헌집을 주면 새 집을 준다는 그 영물 아니던가. 나는 "내 집을 가져가라."고 말하며 두꺼비에게 안녕을 고했다. 잠깐이었지만 반가운 만남이었다.
좌우로 황금들판이 펼쳐지기를 잠시 갑자기 대로변 옆의 길을 달리게 되었다. 다행히 잘 정비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 안심하고 달렸다. 그러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건너라고 알려왔는데 그 뒤로 만남의 광장이 있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더웠던 차라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려고 했다 막상 들어가니 커피가 땡기지는 않아서 매점의 음료수를 하나 사먹었다. 사실 전날 저녁에 미닛메이드 탄산 레모네이드라는 음료를 처음 먹어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 레모네이드를 찾아봤는데 없었다.(그 이후로도 계속 찾지 못해서 먹지 못했다.) 대신 선키스트 레모네이드가 있었는데 탄산이 없어서 그런지 단맛이 달라서 그런지 맛이 아쉬웠다.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500ml 음료 한 병을 통째로 비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카운터쪽에 사진이 여럿 붙어있어서 보니 배우 한석규님과 가게 주인장께서 같이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석규님의 단골 가게라고 한다. 서울 출생의 배우가 이곳까지는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 싶었는데 취미가 낚시고 최애 장소가 충주호라고 하니 지근거리에 있는 곳이라 이곳까지 와보셨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나와서 횡단보도로 오니 신호기가 버튼식이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기 쉽지 않은 물건이다. (의외로 서울에도 있긴 있다.)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은 곳에서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일정 시간마다 빨간등으로 멈춰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려는 사람이 버튼을 눌러야 건너가는 신호를 주는 시스템이다. 나는 사실 한국에서는 몇 번 못봤고 일본여행을 하면서는 정말 많이 보았다. 사실 지방소멸과도 관련있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차는 지나다녀도 사람은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란 의미니까. 아무튼 꽤나 멋진 작은 계곡 하나를 끼고 은근한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니 탁 트이면서 건물이 여럿 있는 동네가 나왔다. 수안보 온천이었다. 이곳에 수안보 인증센터가 있다. 저녁때쯤에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이라면 온천이 있는 호텔에서 하루 묵으며 피로를 풀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이제 겨우 1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수안보 다음 코스는 이화령 인증센터로 높은 고개를 두번 연속으로 넘어야했기에 조금 푹 쉬어주기로 했다. 인증센터 근처의 벤치에 누워 한 30여분을 널부러져 체력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