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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큐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5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8. 2. 18. 20:19
기찻길 바로 옆이라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꿀잠을 잤다. 역시 피곤함은 꿀잠을 보장하는 최고의 방법 아닌가 싶다. 여행 5일차, 전체 계획의 반을 지나가는 이 시점에 몸이 슬슬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기차시간이 정해져있어서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참을 정신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억지로 잠을 깰 겸 미로같은 통로를 지나 대욕장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이런 시간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 이외에 손님이 있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뜨끈한 물에 몸을 좀 지지고서야 피로가 살짝 풀리고 잠도 깨는 것 같았다. 마냥 온탕에 들어가 있을 수는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꽤 이른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날 접객을 했던 주인 아주머니가 복작거리는 소리에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겐로쿠엔은 꽤 낡고 구조도 희한한 숙소였지만 아주머니의 친절한 미소로 기억이 남을 것 같다.
사실 노베오카에서도 뒤쪽 산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야밤에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가는 택시는 있어도 오는 택시는 잡기 힘들다는 상황 때문에도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노베오카는 기차역과 숙소 이외에는 구경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스쳐지나가는 곳이 되었다. 굳이 노베오카까지 와서 1박을 한 이유는 그동안 내 발이 되어준 산큐패스의 효력이 전날로 다 했기 때문이다. 1일차에는 교통패스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후 3일간 여러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동선과 시간을 고려하다보니 5일차부터는 레일패스가 더 효율적이었다. 그 레일패스를 사용하면서 다시 동선을 고려하다 보니 남은 선택지가 노베오카 1박이었던 것이다. 이날의 주요 관광지는 노베오카 남쪽의 미야자키(宮崎)였다.
일본 큐슈에서도 동남부에 위치한 미야자키에서 내가 보기로 한 것은 아오시마, 선멧세니치난(모아이공원), 오비마을 정도였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지인이 미야자키의 사이토바루 고분군(西都原古墳群)을 추천해서 가보고싶은 마음이 컸는데, 거리가 꽤 멀고 버스 배차가 거의 없어서 아쉽게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처음에 보기로 한 곳들이 유명 관광지라 그나마 배차가 많았다는 점 정도였다. 그마저도 꽤나 시간이 빠듯한 일정이 될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노베오카역>
<큐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787계 열차>
<미야자키로 가는 길에 만난 토토로역>
<빛내림>
<수로같은 설비가 계속 되는데 뭐하는 곳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미야자키역>
노베오카에서 열차 니치린(にちりん)을 타고 미야자키에 도착하고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더운 여름에 따뜻한 남쪽으로 향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가는 길목에서도 곳곳에 야자수가 심겨 있는 것이 보였다. 공기가 뜨끈하고 습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이번 여행의 최고 난이도는 역시 일본 남쪽의 큐슈, 그 곳에서도 또 남쪽인 남큐슈의 더위와 싸워야하는 점이었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은 혹독한 겨울이라 더위라는건 꽤 그리운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였다. 사진에는 뜨거운 장소의 이미지만 남을 뿐, 그 열기가 촉각으론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도착해서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역에서 나와 우측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역사 내부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더 늦은 시간에 문을 열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문을 연다는 곳을 찾은 것이다. 관광안내소에서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비지트 미야자키 패스'였다. 산큐패스를 이용했더라면 이곳에서 따로 패스를 구입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아쉽게도 남큐슈 레일패스로는 버스까지 이용할 수는 없었다. 미야자키에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버스를 여러번 타야 하는데 계산상 패스권을 구입하는 것이 유리했다. 냉큼 구매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오시마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전날 사둔 고로케를 챙겨온 덕분에 문연 가게를 찾기 힘든 미야자키역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 주었다. 다만 예전부터 내가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부분인데, 이번에도 편하게 앉아서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커다란 역 앞에도 벤치 하나가 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역 내부에 있는 의자에서는 음식을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는데, 더운 와중에 의자도 찾기 힘들어서 짜증이 바글바글 나기 시작했다. 역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벤치 하나를 찾아 그 곳에 앉아 고로케를 먹었다. 어제 먹다가 남긴 것이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좀 사그라들었다.
<미야자키 역 앞 야자수>
<니치난으로 가는 버스>
아오시마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탑승했다. 다행히도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보니 힘들게 서서 갈 필요는 없었다. 다만 역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더니 결국 출근길 서울의 버스마냥 가득가득 들어찼다. 미야자키 공항을 지나갈 때 최고치를 찍었던 것 같다. 미야자키 공항이 중국 공항하고 직통으로 연결되어있는지 버스 안은 물론 관광지 곳곳에서 중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귀에 날카롭게 들려오는 억양이 점차 신경이 쓰일 무렵 아오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오시마 가는 길에 만난 토우>
일본에서 아오시마라는 이름이 유명한 곳은 두 곳인데, 하나는 시코쿠에 위치한 에히메현 아오시마이고 내가 이번에 간 곳은 미야자키현의 아오시마였다. 전자는 섬에 고양이가 바글거리는 냥덕의 천국으로 불리는 섬이고 나도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하지만 미야자키현의 아오시마도 그 특이함에 있어서는 밀리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도깨비 빨래판(鬼の洗濯板)이라 불리는 지형의 존재 때문이다. 지각변동에 의해 해저지층이 융기된 후 파도에 의해 파식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층마다의 경도가 달라 파식 정도가 달라져서 심하게 깎이는 부분과 덜 깎이는 부분이 나뉘게 된다. 이런 기형파식흔(奇型波蝕痕)의 결과로 마치 거대한 빨래판과 같이 생긴 지형이 나타나는데, 일본의 옛 사람들은 이것이 도깨비가 빨래를 하던 빨래판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멀리서 찍은 사진들만 잔뜩 본 상태라서 가까이서 보는 것에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의외로 직접 만나게 된 지형은 훨씬 스펙타클했다.
아오시마로 가는 길은 꽤나 낙후된 일본 도심 변두리의 느낌을 충만하게 주고 있었고, 아오시마 자체도 그 주변 풍경은 꽤나 오래 방치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각종 안내판이나 이정표같은 것들이 페인트가 낡아 갈라지고 떨어지는데도 딱히 손보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오시마 입구부터는 꽤 잘 정비된 모습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의 아오시마야라는 가게는 쌩뚱맞게 의류매장까지 입점한 복합쇼핑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사잇길을 지나가고 있자니 바다가 펼쳐지고, 섬까지 돌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아오시마 정류장 부근의 상가>
<아오시마에 있는 키티 매장>
<아오시마 관광 기념품>
신사가 있는 곳이라 조금 경건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해변은 해수욕장으로 성황이었다. 백사장쪽에는 푸드트레일러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었고,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도 맨땅에서 손으로 노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짐을 맡아주는 곳만 있으면 나도 바닷물에 풍덩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정이 바쁜 여행자에게 그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돌다리를 건너자니 슬슬 도깨비빨래판이라 불리는 지형의 실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속으로 상상했던 빨래판의 구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해저에서 지층이 쌓인다. 이때 지층을 구성하는 물질 중 단단한 것과 단단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각변동에 의해 해저융기가 일어나면 이 지층이 육지에 노출되는데, 풍화와 해식작용을 거치면 단단한 부분은 남지만 무른 부분은 깎여나가게 된다. 이러면 줄무늬 형태의 지층 단면이 해수면에 남게 되는 것이다. 원리는 내가 생각한대로였는데 지층의 모습이 상당히 이상했다. 그저 층층이 놓인 지층의 옆면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깎여나간 단면의 모양이 대단히 기형적이었던 것이다. 마치 에이리언에 나오는 외계인 척추뼈같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자연적이지 않고 인공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오시마 야오이다리(弥生橋)>
<이름 모를 꽃>
아오시마 섬 전체는 아오시마신사의 소유로 전체가 성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섬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라서 관리인을 배치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했는데 음력 3월에 썰물로 길이 열리는 때에만 특별히 허락되었다. 그러던 것이 1737년에 완전히 개방이 되어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오시마 신사가 정확하게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간접적으로는 820년 정도에 세워졌다고 하니 역사도 상당히 오래된 셈이다. 일본 신사에는 특별히 모시는 신이 있게 마련인데, 아오시마 신사는 야마노사치(山幸彦-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 라고도 부름)와 도요타마히메(豊玉姬)를 모시고 있다.
야마노사치는 우미노사치(海幸彦)의 동생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시피 산에서 수렵활동을 하며 살아갔는데, 어느날 형인 우미노사치에게 낚시도구를 빌려 낚시를 갔다가 형이 귀중히 여기는 낚시바늘을 물고기에게 빼앗기고 만다. 형의 불같은 분노를 마주한 야마노사치는 어쩔 수 없이 낚시바늘을 찾아 해신궁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해신의 딸인 도요타마히메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금새 사랑에 빠졌고 도요타마히메의 도움을 받아 낚시바늘을 찾았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해신의 구슬을 이용해 형 우미노사치까지 굴복시키게 된다. 둘의 사랑은 계속되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도요타마히메의 모습이 의아했던 야마노사치가 방문을 열어보자 악어와 갓난아이가 기어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해신의 딸의 실체가 악어였다는 것이다. (어차피 신화이긴 하지만 첨언하자면 바다악어가 있기는 하다.) 도요타마히메는 그길로 아이를 버려두고 해신궁으로 돌아갔고, 대신 자신의 여동생을 보내 아이를 양육하게 했다. 그 여동생이 자기가 키운 언니의 아들과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일본 초대 천황인 진무라고 한다. (족보가 어디까지 꼬이는 것인가.)
야마노사치와 우미노사치의 분쟁은 큐슈의 산속 부족과 숲속 부족의 싸움을 의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신화가 곰족과 단군족의 결합으로 호랑이족을 몰아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를 낳고 도망갔다는 도요타마히메의 이야기는 왠지 선녀와 나무꾼의 내음이 느껴지는 듯도 하고, 악어가 아기를 낳았다는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탄생설화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건국설화라는 것은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신비로운 상황 속에서 나타난 것인가를 찬양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용상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오시마 붉은 도리이>
바닷가를 따라 난 모래밭 길을 저벅저벅 걷고 있노라면 붉은색 도리이가 태평양을 담는 액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한쪽은 무성한 숲이고 한쪽은 기괴한 바위가 깔려있는 바닷가, 그리고 정면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다. 평소에 한 가지도 보기 쉽지 않은데 한 곳에서 몰아보는 느낌이 사뭇 색다르다. 내 생각에 저 정도로 희귀한 파식지형이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전혀 제한이 없었다. 워낙에 주변에 많이 있는 지형이라 그런가 싶었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해서 머리가 태양으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데도 바닥을 보고 있는 것이 싫증나지 않았다.
<도깨비 빨래판의 모습>
<도깨비빨래판>
<아오시마 신사>
섬을 약 1/4바퀴 정도 돌아가니 아오시마 신사의 입구가 눈에 띄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지인 만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 중에 또 상당히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다. 남큐슈에는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신사는 엄청나게 크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섬에 있기에는 꽤나 큰 규모였다. 특히 신사 옆구리로 빠져나가는 샛길은 에마(소원 등을 써서 매달아놓는 나무판)가 줄줄이 매달린 터널을 통과하게 되어있었는데, 그 너머에 마치 열대 식물원같이 펼쳐지는 식물 군락까지 치면 이래저래 구경할 곳이 제법 많은 장소였다.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원궁(초기 신사가 자리잡은 곳)이 있는데 이곳에 아메노히라카(天の平瓮-하늘의 평평한 토기)를 던져 소원을 비는 곳이 있다. 바닥에 잔뜩 쌓여있는 접시들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소원이 자리잡고 있겠구나 싶었다.
<아오시마 신사>
<아오시마 신사 - 에마 터널>
<접시깨기 소원빌기>
신사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새하얀 조개껍질을 베이스로 알록달록한 조개들을 엮은 모빌이었는데 모양이 꽤나 이국적이었다. 하나 가져가고 싶지만 살고 있는 원룸이 워낙에 비좁은 곳이라 더이상 물건을 들이면 안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방만 좀 넓었어도 사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옆에도 강아지와 고양이 인형이 있었는데 역시나 탐나기는 매한가지였다. '역시 일본인들은 이런 상품 참 잘 만들어.'라고 생각하며 살지말지 수십번 고민했지만, 역시나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도 저 인형이 종종 생각이 난다는 점이었다. 만원도 안하는 장난감으로 왜 그리 고민을 했을까 하며 후회를 하고 있던 와중에 무심코 중국 쇼핑몰에서 강아지 인형을 검색하자 똑같은 인형이 나왔다. 역시 세계의 공장 중국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가격도 4000원 미만. 그동안 후회한 값을 돌려내라고 울부짖고 싶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인형을 사고 싶은 욕망이 사그라들었다.)
<아오시마 조개모빌 기념품>
<아오시마 멍냥 인형>
<도깨비 빨래판>
<아오시마 꽃>
사람들은 신사까지만 구경하고 온 길을 향해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섬 한바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사실 도는데 크게 무리가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길도 깔끔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섬의 뒤편에도 호리키리(도깨비 빨래판)은 계속 되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하얀 등대도 하나 세워져 있었다. 조금씩 찰랑이며 들어오는 파도가 섬의 뒤편에서는 잘 보였다. 조용한 길을 호젓하게 걷는 재미가 있었다. 먼저 섬을 돌고 있는 부부는 아이를 가운데 세워 손으로 그네를 태워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풍경이었다. 있는 힘껏 여유를 부리며 둘레길을 걷던 내 눈에 자그마한 하얀 물체가 보인 것은 그때였다. 주워보니 빛이 바랜 조개껍질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개오지조개 껍질이었는데(이건 한국에 와서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아오시마를 기념할 수 있는 기념품이 될 것 같아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섬을 3/4쯤 돌았을 때 갑자기 맥주파는 푸드트럭이 튀어나왔다. 그 옆에는 선베드가 서너개쯤 있고 외국인 두명이 맥주를 홀짝이며 드러누워 있었다. 이렇게 한가로워서야 어디 먹고나 살겠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나중에는 성공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로운 삶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행지에서 누군가의 장사까지 걱정할 정도로 경제관념에 치이고 살고 있는건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개인의 행복을 내 잣대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오시마 조개껍질 기념품>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돌다리를 건너 아오시마 정류장쪽으로 돌아왔다. 버스 시간은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는데 도무지 앉아서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우선 목을 좀 축일겸 노점에서 파는 파인애플 한 조각을 사먹었다. 즙이 줄줄 흐르는 새콤달콤한 파인애플을 그자리에서 먹어치우고도 미세하게 남은 갈증이 있어서 다시 파인애플 하나를 더 청했다. 바로 두개째 먹는 내가 고마웠는지 두 번째 파인애플은 제법 큼직한 것을 줘서 배도 채우고 갈증도 해소할 수 있었다. 다만 더위는 해소할 수 없었는데 정류장엔 그늘막 하나 없고 벤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부근의 커다란 상가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에어컨은 신이 내린 장치라는 생각을 하며 찬 공기를 마음껏 만끽했다. 다만 그곳에도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쭉 서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탄 버스에도 사람이 한가득이라 어쩔 수 없이 40여분을 서서 가야만 했다.
구불구불한 해안절벽 옆을 한참 달려 도착한 선멧세니치난(Sun messe 日南 - 태양의 메시지를 받는 일남 이라는 의미) 정류장은 예상외로 심플했다. 모아이 하나가 서 있고 자동차가 지나갈 왕복 2차선 도로가 전부였다. 공원이 바로 보일 줄 알았는데 숲에 가려져있어서 얼마나 가야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내린 두세명의 사람들도(나는 거의 다 내릴 줄 알았는데)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몰라 쭈뼛거릴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관광지에선 다른 사람이 가는 방향이 내 목적지'라는 믿음이 있는데, 이번에는 도통 누굴 믿고 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방향은 하나였기 때문에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안그래도 후덜대는 다리는 물론이거니와 뙤악볕에 그늘 하나 없이 구불구불한 도로를 걷고 있자니 정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차를 위한 도로가 언덕을 크게 S자를 그리며 오르게 되어있는데 굳이 사람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나는 수로를 이용해 가로질러 올라갔다. 처음에 내가 수로를 타고 오르니 뒤에 오는 사람도 수로를 타고 올라왔다. 이것이 프론티어 정신이라는 것인가. 아무튼 헥헥대며 생각보다 한참을 올라가자 주차장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차를 이용해 찾는 관광지인 것 같다. 대중교통도 자주 있지 않고, 정류장에서도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반 도보 여행자에 대한 배려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겠다. 입구에 가득한 차와 함께 카트를 대여해주는 모습도 보였는데 미리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보험상의 문제로 외국인 여행자에겐 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뭐 못빌리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공원에서 다시 언덕을 기어오르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표를 끊고 들어가니 탁 트인 태평양과 함께 너른 풀밭이 보였다. 그야말로 단정하게 정리된 골프장같은 풀밭이었다. 우선 눈이 시원해지니 몸과 마음도 조금은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조금 걸어가니 대망의 모아이가 보였다.
<선멧세니치난 입구>
<모아이상 아래서>
칠레 이스터섬에 있다는 모아이는 그 제작방법과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추정키로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하나씩 세웠고 후에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 900여기의 모아이상이 존재하는데 일종의 부족간 힘의 과시같은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스터섬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야자수가 멸종되고 인구가 급감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탐험대가 처음 이 섬을 발견했을 때가 부활절이라서 이스터섬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이름은 '라파누이'이다. 현재 살고 있는 원주민은 대략 5천명 정도이며 대다수가 라파누이족이라고. 나는 막연하게 이스터섬 모아이 정도 되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있지 않을까 새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다. 또 하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모아이상이 바다를 쳐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점이었는데, 실제로는 모두 섬 중앙을 향해 서있다고 한다.
뜬금없이 일본 남큐슈에 왠 모아이냐고 하면 그건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1960년 칠레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무너진 모아이상의 복원에 일본팀이 참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복제본을 만들어도 좋다는 이스터섬 장로회의 허가를 받아 만든 것이라고. 복제본이긴 하지만 라이센스가 있는 복제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 키의 몇배나 되는 거대한 얼굴이 바다를 등지고 주루룩 서있는 모습은 꽤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모아이에도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서(혹은 믿는 사람들을 오게 만들고 싶어서) 7개의 모아이에 왼쪽부터 일, 건강, 연애, 총운, 결혼, 재물, 학력을 도와준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재물이 있으면 나머지는 거의 따라온다... 아니면 총운이 좋으면 재물이 따라서 나머지가 해결된다...) 신도사상에 모아이가 추가된 셈이라고 할까.
선멧세니치난 공원 입구에서 모아이까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데, 공원의 진면모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태평양과 풀밭의 향연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올라가는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이 있어서 눈이 심심하지는 않은데, 역시나 카트가 부러워지는 것은 이 순간이다. 시간적 제약도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헥헥대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빌어본다.>
<푸르른 풀밭에서 한가로운 한때>
<멀리 보이는 도깨비 빨래판들>
언덕을 1/3 정도 올라왔을 즈음에 무지개빛 마네킹 일곱명이 다리를 꼬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어로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보와이안상이다. 처음에는 무슨 팀으로 움직이는 연예인을 마네킹으로 만든 것인가 했는데 7명의 얼굴이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일본에서는 호기심으로만 남겨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열심히 조사를 해 보았다. 시가현 성안대학교의 구상표현의 대가인 이마이 노리오(今井祝雄)교수가 만든 공공조형물이라고 한다. 선멧세니치난 공원에만 만든 것은 아니고 공공 조형물로 만든 수십여개의 보와이안 중 몇개가 이 곳에 와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에서도 종종 설치되어 전시한다고) 컬러가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고 빨/주/노/연초/초/파/하늘 색으로 되어있는 점도 특이하다. 혹시 일본은 무지개를 다른 색으로 보는가 해서 알아보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빨주노초파남보 7색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뭐 미술교수님이 어련히 알아서 의미 있게 색 배열을 하셨겠지 싶긴 하다. 보와이안 상은 니치난 공원 중턱 뿐 아니라 정상 부근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보와이안상-VOYANT-ヴォワイアン像>
<보와이안상 - 무지개 라고 하기엔 색 구성이 조금 다르다.>
생각해보면 출발 전 사전조사에서 선멧세니치난 공원의 모아이상 앞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데 내가 간 날이 장날이었는지(?!) 모아이상 앞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못해 나중에는 수학여행을 온 듯한 고등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들 정도였다. 덕분에 모아이상만 나오는 깔끔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공공조형물인 이상 전세내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보와이안상도 사람이 없을때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눈치작전을 펴야했다. 사람들이 줄줄이 와서 같이 앉아 마네킹인척 하고 사진을 찍는 곳이라서 자리가 비는 타이밍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서성거리느라 땀을 한바가지는 흘렸지만, 그렇게 해서 좋은 사진을 찍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집에 와서 사진을 보았을 때의 깔끔한 기분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게 된다.
<선멧세니치난의 구조물>
<언덕 너머는 태평양이다.>
<너른 풀밭 보기가 쉽지 않은 요즘 눈이 호강하는 중이다.>
<자갈과 시멘트로 표현한 나비>
정상까지 오르내리느라 바닥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입구 근처의 매점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늦었는데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어와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에어컨 나오는 곳에서 앉아있고 싶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켜놓고 먹었는데 콘까지 다 먹고나니 아무것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오렌지쥬스를 급하게 하나 더 시켰다.
앉아서 다음 목적지인 오비(飫肥)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보았다. 미리 조사해둔 시간표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선멧세니치난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아닌 미야자키역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해서 다급히 진짜 시간을 알아보니 7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고 되어있었다. 7분이면 아래있는 정류장까지 가기에는 조금 빠듯한 시간이라서 튀어나가려면 당장 나갔어야 했는데 고민을 하다보니 또 1분이 휙 지나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마을 구경은 관두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라도 보자며 다음 버스시간을 알아보았는데, 그 버스로는 미야자키로 돌아오는 교통편이 애매했다. 큐슈레일패스로 몇몇 구간을 예매하면서 오비-미야자키 편을 예매해 두었는데, 버스가 오비마을에 도착하는 것은 열차가 출발한 뒤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비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미야자키에 도착하면 곧바로 거기서 예매한 열차를 타고 가고시마츄오(鹿児島中央駅)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하나를 놓치면 줄줄이 일정이 꼬일 우려가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왔던 길을 돌아가 미야자키로 가기로 결정했다. 작은 교토라고 불리우는 오비 성하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사이토바루고분군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이 곳은 한번 더 찾게 될 모양이다.
오렌지쥬스를 홀짝이며 좀 쉬다가 돌아가는 버스 시간즈음에 일어나 정류장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올때와는 달리 제법 많이 줄을 서 있어서 '또 한 시간 쯤 서있어야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많아서 앉아갈 수 있었다. 뽑아놓은 버스 정리권이 18번이었는데 내가 더위에 지쳐 밖으로 뱉고 싶은 말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더위를 피해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그리고도 모자라 오렌지 쥬스를 벌컥 벌컥>
<물마시는 나비>
늦게 출발한 덕분에 미야자키역에 딱 맞게 도착한 나는 코인락커에 넣어두었던 캐리어를 챙겨들고 열차를 탑승하러 갔다. 저녁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뭘로 요기를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미야자키 소고기 도시락을 파는 곳을 발견해서 과소비를 해보기로 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Top3나 Top100 같은 것을 좋아하는 나라라서 소고기도 '일본 3대 소고기'라고 순위를 매겨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소고기 하면 횡성,홍성 등을 고급으로 쳐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긴 할 것이다. 일본 3대 소고기는 고베규, 사가규, 미야자키규라고 하는데(근데 이것도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도 고베규는 여기저기 다 들어가 있으니 확실한 듯) 마침 미야자키역에서 만난 소고기는 그 동안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해 온 나에게 최고의 사치였다. 거의 2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도시락을 들고 열차를 탔는데, 다른 사람들이 뭘 먹기 시작할때까지 기다리다가 먹었더니 식어서 맛이 좀 떨어지더라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역시 고기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일본 3대 소고기로 유명한 미야자키규를 빼놓고 갈 수 없다.>
<샀으면 식기전에 빨리 먹어야지...>
<가고시마 츄오 역에 도착>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가고시마 중앙 역이었다. 가고시마와 사쿠라지마 관광을 위한 전초기지로 2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숙소에 가기 위해 지도를 펴고 최단거리를 계산하여 출구를 찾았는데, 뜬금없이 이상한 곳으로 나가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더운데 길을 잃어 쓸데없이 서너배의 거리를 더 걸으면 화가 난다기 보다는 내 팔자를 탓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그동안 취미생활을 위해 애타게 찾아온 가챠샵을 긿을 일어 헤멘 덕분에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착한 길 잃음'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어 다행이다.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쇼핑은 내일 하기로 하고 이날은 우선 숙소에 널부러지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니 저녁에 우동 한 그릇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알려왔다. 도시락을 먹은지 두시간 정도 되었기 때문에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해서 냉큼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고른 숙소들은 이렇게 식사가 제공되는 곳이 많아서 참 좋았다. 근처의 편의점에서 가볍게 간식거리를 사 먹으며 비로소 긴 하루 일과가 끝났음이 느껴졌다. 일찍 나가서 늦께까지 구경하고 다니는 내 여행방식상 하루짜리 숙소는 정말 잠만 자는 스쳐가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그래도 이틀 이상 묵는 곳은 집과 같이 느껴진다. 활화산이 옆에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가고시마에서 나는 내일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컸다. 5일차 여행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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