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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큐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7일차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8. 5. 15. 22:44


    어김없이 찌뿌둥한 몸 덕분에 새벽에 일어난 나는 호텔숙박의 최고 장점이라 생각하는 반신욕을 하며 일정을 정리했다. 9시 30분에 가고시마츄오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예약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상당히 여유로웠는데 이상하게 정신적으로는 여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7시에 일어났는데도 2시간 30분이라는게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이틀 묵는다고 이래저래 펼쳐놓은 짐들을 다시 싸야했고 널어놓은 빨래도 걷고 해야해서 그랬던 것 같다. 전날 마시다 남은 1L짜리 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키고 곧바로 츄오역으로 향했다. 이날의 여행 컨셉은 '온갖 관광열차를 이용하여 구마모토로 돌아가는 것' 이었다. 


    이제 길이 좀 익숙해져서 츄오역 가는 길이 눈에 보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첫 날은 그렇게 빙빙 돌아서 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그지 없다. 이게 길치의 숙명이던가. 예전에 인터넷 유머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났다. 자신이 길치임을 아는 길치는 잘 가고 있으면서도 잘못 가는 것 같아서 결국 틀린 길로 찾아가게 된다고. 내가 바로 그런 길치인 것 같다. 







    <가고시마 숙소>






    전날 가챠를 뽑다가 동전 교환기가 고장나있어서 다음날을 기약했었기에 츄오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빅카메라로 향했다. 내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9시 30분에 빅카메라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가면 문이 열려있을거야.'라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튼 아침부터 커다란 아쉬움의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빅 카메라는 10시부터 문을연다.'라는 정보를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10시부터 문을 여는 빅카메라>






    일본 열차가 으레 그러하듯 시간표상의 시각에 정확하게 출발했다. 이번에 탑승한 열차는 'はやとの風(하야토노 카제 - 준인의 바람)'이었다. 2량짜리 열차인데 전체가 새카만 색으로 도색이 되어있고 군데군데 금박으로 문양을 새겨놓았다. 내부는 난연성 목재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상당히 클래식한 느낌이 들었다. 근세에 유럽 열차가 가질법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할까. 지정석에 앉아서 바다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 자리가 사쿠라지마 반대편에 위치해서 경치가 별로 좋지 못했다. 자리에는 가방만 던져두고 가고시마만 방향으로 나 있는 바 형태의 좌석에 앉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야토는 隼人(매 준, 사람 인)을 일컫는 일본어로 성씨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역시나 가고시마의 역사가 드러나는데, 예전 사쓰마 남부에 살던 사람들을 '매같은 사람들'이라 일컫던 데서 왔다고 한다. 야마토정권이 눈엣 가시처럼 여기던 이 매인간들을 정벌한 뒤에 관리직을 두었는데 그 이름을 '하야토'라고 했다고. 직업이 사람 이름이 되는 것은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스미스씨나 테일러씨 등) 아무튼 규슈 남부를 운행하는 이 열차에 지역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내게 하야토란 '신세기 사이버포뮬러'라는 만화의 주인공 '카자미 하야토'인데, 이 주인공도 카레이서니까 하야토라는 이름이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구나 싶다.







    <역으로 들어오는 하야토노카제>







    <하야토노카제 내부>







    <하야토노카제 외장>






    하야토노카제는 가고시마츄오에서 요시마쓰(吉松-길송)까지 운행되는 관광열차이다. 하루에 딱 두번 왕복운행을 하는데, 시간대가 교묘하게 다음 방향으로 가는 관광열차와 맞물려 있어서 거의 하루종일 열차관광이 가능하다. 요시마쓰역까지 도착하면 거의 바로 이어서 이사부로신페이(いさぶろう / しんぺい)를 탑승할 수 있고, 히토요시(人吉-인길)역까지 이동한 뒤 SL히토요시를 탑승하면 구마모토까지 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목적이 운수가 아닌 관광이기 때문에 열차는 느릿느릿 달려나갔다. 풍경을 제대로 즐기라는 이야기같았다. 전날 막바지에 들렀던 센간엔 옆의 철길을 지나치면서 다시 센간엔 구경을 할 수 있어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사쿠라지마에도 안녕을 고했다. 







    <센간엔 옆을 지나치는 하야토노카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사쿠라지마>






    하야토노카제가 달리는 풍경은 처음엔 가고시마만을 따라가지만, 이후에는 숲속을 달려 깊숙한 시골동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몇몇 역에서는 정차 후 사람들이 역사를 구경하거나 열차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멈춰있었다. 승무원들이 열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도와주고,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일본인들의 JR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하던데, 참으로 신기한 풍경이었다. 


    그중 어떤 역은 100년이 넘은 일본 철도역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카레이가와(嘉例川)역이나 오오스미요코카와(大隅横川)역의 경우 1903년에 지어진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특히 오오스미요코카와역의 경우 태평양전쟁 당시에 전투가 있었던 모양으로 당시의 기관총 자국이 기둥에 남아있었다. 우리나라같으면 벌써 신식으로 바꿨을 법 한데 옛 것에 대한 집착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참고로 카레이가와 역에는 냥타로(にゃん太郎)라는 이름의 고양이역장님이 있다. 검은 코가 매력적인 이 역장님은 카레이가와역 이곳저곳을 순찰하며 역에 쥐가 드나들지는 않는지,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감시하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가끔 휴일인 날도 있는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내가 간 날에는 열심히 사람들의 손을 느끼고 있었다. 참 순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가도 냥소리 한번 안하는 점잖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귀찮은데 계속 만지작 당해야 하는 안쓰러운 운명이고, 달리보면 하루에 두어차례만 귀찮고 남은 평생 걱정거리 없는 편안한 묘생이 되는 것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없으니 어떻게 느낄지는 그저 궁금해 할 따름이다. 


    하나 더, 열차 안에서는 '가고시마 명물 남국의 백곰(南国白熊-난고쿠 시로쿠마)'라는 이름의 빙수를 판다. 가고시마 텐몬칸에 있는 빙수 전문점 이름이 '시로쿠마'인데 이곳에서 만들어 납품한 특산품이 아닌가 싶다. 하얀 곰을 연상시키는 복슬복슬한 빙수는 연유를 이용하는 가고시마 특유의 빙수 제작 방식에 기인한다고 한다. 백곰이 되어야 하는 만큼 팥은 아주 조금만 들어간다. (팥이 많이 들어갔으면 최소 갈색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주먹만한 크기이지만 가격은 500엔으로 한국에서 사먹던 슈퍼마켓 팥빙수를 생각해보면 많이 비싸긴 한데 일본+특산품+관광지 라는 특성을 생각해 보면 한번 먹어볼만한 가격이기도 하다. 나도 하나 사먹어 보았는데, 원체 단단하게 얼려놓아서 숫가락이 들어갈 생각도 안했다. 자리에 두고 녹기를 한참 기다려 맛을 보았다. 더워서 그랬는지 시원하고 맛있었다. 


    창가자리에서 알짱거리다 수풀만 계속 지나치는 단조로운 풍경이 계속 되기에 자리로 돌아가 좀 쉴까 하고 갔더니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다리를 쭉 뻗고 주무시고 계셨다. 위로 넘어가기엔 너무나 시원하게 쭉 뻗고 계셨고 깨우자니 여행의 고단함이랄까 세월의 고단함이랄까 하는 것들이 느껴져서 그냥 나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 후에도 몇번 내 자리를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주무셔서 좀 당황하긴 했다. 







    <카레이가와역>







    <냥타로 고양이역장님>







    <맨 뒤칸 차창으로 보이는 선로>







    <남국백곰빙수>







    <남큐슈의 푸른 들판>







    <키리시마온센(霧島温泉)역>







    <오오스미요코카와역 기관총 자국>







    <하야토노카제 내부 모습>







    <요시마쓰역>






    1시간 30분정도를 달리고 나니 요시마쓰역에 도착했다. 요시마쓰에서 히토요시까지 가는 이사부로 신페이 열차는 그보다 30분 정도 뒤에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어서 역에서 나와 살짝 주위를 구경해보려 했으나 출구를 나서는 순간 '아 이곳은 볼거리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역에 머무르기로 했다. 나가기만 하면 시골 풍경 속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긴 하지만 더위를 무릅쓴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8월의 남큐슈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얌전히 에어컨이 나오는 대합실에 앉아있다 시간에 맞추어 이사부로 신페이에 탑승했다. 







    <요시마쓰역>







    <이사부로신페이>






    이사부로신페이는 빨간색으로 도장한 2량짜리 열차이다. 철도덕후가 들으면 천인공노할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철알못인 내게 이사부로신페이, 하야토노카제, 이부타마 등은 모두 같은 열차에 도장만 달리 한 것 같이 느껴졌다. 내장 디자인은 조금 달랐는데, 기본적으로 목재를 사용한 의자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하야토노카제와는 달리 이사부로신페이는 좌석이 따로 되어있지 않고 2인석으로 되어있어 옆사람과 조금 불편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아주 살짝이나마 뒤로 젖혀진 디자인의 하야토노카제 의자와 달리 이사부로신페이는 완전 90도로 되어있어 앉아있으면 절로 허리가 비명을 질러댔다. 


    원래 요시마쓰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이사부로'이고 히토요시방향으로 가는 열차는 '신페이'라고 부르는데 맞다고. 어차피 왕복을 하는 열차이므로 둘을 합쳐 이사부로신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사부로는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郎)'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규슈 여객철도 건설 당시 체신성의(지금의 우정국) 대신이었고 철도 건설은 체신성이 관할했다. 특히 이사부로 열차가 지나가는 '야타케 제1 터널'의 편액을 쓰는 등 지역 철도발전에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재임한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인사라는 점이 이 열차를 타는 내 속을 쓰리게 했다. 신페이는 '고토 신페이(後藤新平)'라는 이름에서 따왔는데 당시 철도원 총재로서 일본내 철도 정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이사부로신페이를 탑승했을 때의 관람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쿠리메시(밤덮밥) 에키벤, 루프선로, 스위치백선로, 마사키역 행복의 종, 오코바역 명함붙이기 등이다. 우선 쿠리메시의 경우 이사부로신페이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인데 밥 위에 밤이 얹혀져 있다고 한다. 나는 히토요시에서 도시락을 먹을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사람들이 많이 사먹는 것을 보고 좀 출출해했던 기억이 난다. 


    터널기술이 발달한 요즈음에는 열차가 경사를 극복해야 할 일이 잘 없는데, 100년 전의 재래식 선로를 사용하는 히사츠선(肥薩線)은 경사면을 오르기 위한 루프선로 시스템과 스위치백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루프선로는 고리형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높은 경사를 곧바로 오르기 힘든 열차의 특성상 낮은 경사로 산을 빙글빙글 타고 올라가도록 되어있는 것을 말한다. 스위치백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발생한 형태인데, 곧바로 경사를 오를 수 없을 때 그보다 낮은 경사의 선로를 지그재그로 설치하여 앞뒤로 번갈아 움직이며 오르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일본 철도 매니아들은 이 루프선로와 스위치백에 열광한다고 하는데, 이는 일본에서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이 특이한 철도시스템을 보고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강원도쪽에 스위치백이 있었는데 터널이 뚫린 뒤 2012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사키역은 한자로 眞(참진-간체로는真)幸(다행행)이라고 쓴다. 해석하자면 진정한 행복 정도 될 것 같다. 이곳에는 '행복의 종'이라는 이름의 사람 머리만한 종이 있는데 이것을 치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하여 역에 내린 사람들이 한 번씩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은 아니고, 이 역에서 실제로 역무원들이 사용한 신호용 종이라고 한다. '안전한 운행과 행복을 기원하던 역무원들의 마음을 담아 여러분도 종을 울려보세요'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니 스토리텔링 기법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1911년에 처음 문을 연 이 역은 미야자키현 최초의 철도역으로 이사부로신페이가 지나가는 유일한 미야자키 현내의 역이기도 하다. 재미난 점은 승강장 끝자락에 놓인 바위덩어리의 존재인데, 이것은 1972년에 산사태 발생시 산에서 굴러내려온 돌이라고 한다. 이것을 '산사태 기념석'이라고 이름붙여 보존하고 있는데 일본 신토사상의 한 자락을 엿본 것 같다. 


    마사키역을 지나 야타케(矢岳)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열차는 잠시 멈춘다. 차창 밖으로는 갑자기 펼쳐지는 넓은 평원에 앙증맞게 무리지은 집들, 푸르른 논밭들이 보인다. 열차로 꽤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 있는 터라 열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으로는 꽤나 멋진 부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3대', '100선'같이 숫자 붙이기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이 풍경을 놓칠리 없다. '일본 3대 차창'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붙여 이 장소에 의미를 부여했다. 뭐 그런 숫자같은거 없어도 목가적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긴 했다. 


    오코바(大畑)역은 역 안팎에 온갖 명함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명함을 붙이면 출세하게 된다는 소문이 있어서이다. 딱히 어떤 전설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92년도부터 명함이 하나둘씩 붙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 붙였다는 이야기가 통설인 것 같았다. 빈틈없이 붙어있는 명함들에선 신사에 소원을 빌기 위해 달아놓는 에마같은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소원빌기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자물쇠를 걸면서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도하지 않는가? 실제로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기 보다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소망을 표출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 자체가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고, 붙일 명함이 아직 없는 내 자신이 아쉬울 뿐이다. 참고로 오코바역에는 승강장 한켠에 세면대(지금은 물이 나오지는 않지만)와 급수탑(벽돌을 이용해 원기둥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증기기관차가 이곳까지 운행하던 시절에 석탄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씻을 수 있게 세면대를 설치했고, 증기기관의 특성상 물이 떨어지면 달릴 수 없기에 급수탑을 설치했다는 이야기다. 두 시설물은 이끼가 가득해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나름 역사의 산 증인들인 셈이다. 







    <마사키역>







    <마사키역 행복의 종>







    <일본 3대 차창 중 하나>







    <야타케역>







    <역 뒤로 펼쳐지는 시골길>







    <오코바역 명함들>







    <오코바역 대합실 입구>






    열차는 1시간 20여분을 달려 히토요시 역에 도착했다. 계속 열차에 앉아있었더니 엉덩이가 슬슬 뻐근해질 지경이라 종점에 도착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열차에서 내리니 옆에는 새파란 색상의 카와세미야마세미(かわせみやませみ) 열차가 도착해 있었다. 이 열차도 구마모토까지 달려가는 열차지만 내가 타려는 것은 이 다음에 가는 SL히토요시 라는 열차였다. 사실 이번 열차 여행은 모두 이 SL히토요시라는 열차를 타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열차가 아니었다면 가고시마에서 구마모토까지 훨씬 금방 더 편안하게 도착했을 것이다. 사실 7일차의 일정에서 나는 '언제 다시 퇴역할지 모르는 증기기관차'를 타느냐 아니면 '한국에서는 기회가 잘 없을 야생 돌고래 무리'를 보느냐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여행이 하루 더 남아있지 않은 것을 후회할 만큼 말이다. 거기서 돌고래를 포기하고 증기기관차를 타기로 결정한 것이다. SL히토요시는 철도 매니아가 아닌 나에게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었다. 아무튼 역에서 내린 내게 1시간 30분 정도의 대기시간이 주어졌다. 







    <카와세미야마세미와 이사부로신페이가 나란히 있는 모습>






    역에서 나오니 바로 옆에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거기 계신 분께 '제가 다음 열차까지 1시간 20분 정도가 남아있는데 어디 추천해줄만한 관광지가 없을까요?'하고 여쭤보니 '아소신사'에 가보라고 알려주셨다. 걸어서 한 15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했으니 신사를 30분쯤은 구경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곧바로 출발하려고 건물에서 나오니 히토요시역 앞 광장에 시계탑이 보였다. 여행을 가기 전에 했던 사전조사에서 매시각 인형극이 펼쳐진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1시가 좀 넘은 시각이어서 이미 인형극이 끝난 뒤였다. 먼저 신사를 구경하고 온 뒤에 보기로 했다. 어쨌든 2시 정각까지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야 겠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히토요시 카라쿠리시계탑>







    <12시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표시되어 있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도착한 아오이아소신사(青井阿蘇神社)는 국보로 지정된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건물인데 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아츠지모모야마지다이-전국시대부터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까지의 시대, 화려한 문화가 특징)의 특징도 가지고 있고, 이후 구마모토지역의 사찰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이 국보로 지정되는데 반영되었다고 한다. 정문에 커다란 문의 지붕은 볏단을 두껍게 묶어 쌓아 올린 것으로 일본 전통방식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형태다. 창건은 806년으로 알려져 있고 국보로 지정된 건물은 16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받은 넓은 사령(신사 영지)을 갖고 있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권과 함께 몰수되었고 이후 구마모토 지역에 가토기요마사(가등청정)가 영주로 부임하고 다시 영지를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오래된데다 국보까지 지정되어 그 영엄함이 널리 알려져 있는 듯 했으나 신사에 소원을 빌지 않는 나에게는 볼거리가 조금 아쉬운 관광지정도였다. 







    <국보 아오이아소신사>







    <아오이아소신사 정문>







    <히토요시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풍경>






    부지런히 신사에 다녀온 결과 시계탑에서 인형극이 시작되기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계탑의 외형은 예전에 존재했던 히토요시성의 천수각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히토요시 성주인 오토요마사가 축제날 세상을 구경하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보여준다. 정각이 되면 사방팔방으로 창과 문이 열리고 벽이 올라가며 안에 있던 인형들이 춤을 추거나 고개를 까딱이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저런 자동 인형을 일본에선 '카라쿠리(からくり)'라고 하는데 전기도 없던 오래 전에도 자동으로 활을 쏘거나 글씨를 쓰는 등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엄청난 수작업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고 가격이 비싸 부자들의 장난감이었다고. 


    창문을 열고 나와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둥글둥글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성주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주는 지역 특산품인 구마소주를 마시거나 (히토요시 온천을 홍보하기 위한 복선으로 보이는)온천을 즐기며 3분10초간 잘 놀다 들어간다. 배경 음악으로는 球磨の六調子(구마노로쿠쵸시)라는 히토요시 전통 민요가 깔리는데 일본 전통 느낌을 물씬 풍겼다. 각 방향마다 나오는 인형의 모습이 다르므로 빙글빙글 돌면서 구경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토요시 시계탑>






    이윽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느껴졌다. SL히토요시가 들어올 때가 된 것이다. SL은 Steam Locomotive의 약자로 말 그대로 증기기관차를 의미한다. 나는 기관차라는 영어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기차에 쓰인 글씨를 보고서야 locomotive가 기관차라는 것을 알았다. 멀리서 짙은 회색 연기를 굴뚝에서 뱉어내며 검은색 증기기관차가 거꾸로 들어왔다. 난생 처음 보는 증기기관차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증기기관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관차는 사실 두번이나 현역을 은퇴했던 차량이다. 1922년부터 운행해서 300만km를 달린 후 68년 퇴장하여 전시관에 전시되었다. 그러다 88년에 다시 소환하여 현역으로 복귀시켰다. 2005년에 차량 운행 중 고장이 났는데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다. 88년도부터 운행한 열차고 증기기관이 더이상 쓰이지 않는 추세이니 부품을 조달하기도 어려웠는데 무엇보다 설계도가 없어진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다들 포기하고 있었던 것인데 기적적으로 설계도가 발견되어 수리가 가능해지면서 2009년 현업으로 복귀했다. 우리가 해리포터 호그와트 익스프레스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던 증기기관차를 직접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철도매니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기름이 잘 배어든 것 같은 검은색 반짝이는 몸체, 연통에서는 연신 짙은 회색의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따금씩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꼭 말이 투레질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압권은 증기를 내뿜으면서 나는 기적소리. 이것이야말로 증기기관차의 로망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열차 조작실에는 멋쟁이 아저씨가 삽을 들고 석탄을 퍼나르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데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라 아저씨가 좀 걱정되었다. 검댕이 여기저기 묻은 구릿빛 피부에 반팔티셔츠를 어깨까지 걷어올린 아저씨는 근육이 울룩불룩했고 전신에 땀이 한가득이라 무언가 '일하는 상남자 노동자'의 표본같은 느낌이었다. 







    <증기기관차 SL히토요시>







    <기적소리>







    <거울에 비친 SL히토요시>






    열차에 탑승하니 내 지정석은 2량의 맨 뒷자리였다. 이상하게 뜨거운 자리라 오래 앉아있지를 못하고 계속 왔다갔다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앞자리만 해도 훨씬 시원하던데 왜 그랬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열차가 달리니 엔진에서 발생한 연기가 차량쪽으로 조금씩 스며들어왔는데 연탄불고기집에서 맡아봤던 그 내음이 객차안에 퍼졌다. 소리도 우리가 기차소리라고 할 때 말하는 '칙칙폭폭'으로 들렸다. 디젤차가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전철은 '철컹철컹'소리만 들린다면 증기기관차는 진짜로 '칙칙폭폭'이 들린다. 이런 경험은 다른 곳에서는 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의 세대는 열차가 왜 '칙칙폭폭'하며 달리는지 이해를 못할 것이다. 지금의 젊은세대가 저장마크에 왜 플로피디스켓 모형을 쓰는지 모르는 것 처럼. 


    SL히토요시를 타고 재미있었던 점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처음에 열차가 출발하면서 역에 있던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송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싶었는데 이후에 열차가 지나가는 길에서 달리는 열차를 발견한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철도 건널목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량 속의 아저씨부터 논에서 잡초를 고르고 있는 농부, 지나치는 역에 서있던 여성분들 모두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열차가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 안에 타고 있는 나도 덩달아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만약 이 열차가 지나는 곳 주변에 사는 주민이었다면 하루에 두번씩 매연을 풀풀 날리는 이 열차를 사랑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들의 마음은 훨씬 관대했던 것 같다. 이런 관대함을 보고 있자면 나도 마음이 좀 여유로워진다. 열차는 느리지만 꾸준히 달려갔다. 칙칙폭폭거리며.







    <패드로 SL히토요시를 찍는 아저씨를 찍은 사진>







    <우리나라에도 백석역이 있는데 반가워서 찍은 사진>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SL히토요시에서 판매한다는 도시락을 못먹어본 것이다. 점심을 여기서 해결하려고 다른 군것질도 하지 않고 버텼었다. 열차를 탑승하자마자 바로 매점으로 달려가서 도시락을 사려고 했더니 '열차가 출발해야 판매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자리에 돌아가서 이래저래 사진을 찍고 하다가 열차가 출발하고 매점이 준비할 시간을 넉넉히 준 뒤에 돌아갔더니 '다 팔렸습니다.'고 한다. 그새 다 팔릴줄이야. 음식인만큼 많이 만들었다가 안팔리면 보관도 안되고 폐기해야 하는 사정은 알겠지만 너무 소량을 준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야속했다. 결국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전날 사두었다가 못먹어서 캐리어에 넣어둔 과자 한 봉지를 주섬주섬 꺼내어 먹었다. 배부른 한 끼를 기대하다가 과자봉지로 전락해버린 것은 너무 슬펐다. 


    이부타마를 탑승했을 때 알게 된 것인데 이런 관광특급열차에는 기념품 개념으로 열차가 인쇄된 엽서같은 것이 있다. 엽서 뒷면에는 스탬프를 찍는 칸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스탬프가 있어서 둘을 조합하면 꽤 괜찮은 기념품이 된다. 앞서 하야토노카제와 이사부로신페이에 탑승했을때도 엽서에 스탬프를 찍어 하나씩 챙겨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SL히토요시에는 그것이 없었다. 사실 4개의 관광열차중에 가장 갖고 싶은 엽서가 있다고 하면 역시 증기기관차인 SL히토요시의 엽서 아닌가! 너무나 높은 인기에 사람들이 다 쓸어갔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승무원분께 여쭤보는 것을 엿들었다. 


    "히토요시 엽서가 없는데 다 나간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나중에 승무원분이 돌아다니면서 직접 주실거에요."


    아무래도 인기엽서라 뭉탱이로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석 검사 겸 하나씩 나눠주는 듯 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서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엽서를 줄 생각을 안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없는 사이에 엽서를 줄 사람이 지나갈까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자니 마침내 내게도 따스한 손길이 미쳤다. 엽서를 받아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스탬프가 있는 뒤칸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흐뭇했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표정으로 뒤칸을 향해 따라갔다. 






    <구마모토에 다가오면서 슬슬 정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덧 열차가 계곡 옆을 달리고 건너고 하더니 건물이 서서히 빽빽해지기 시작했다. 구마모토에 다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마침내 구마모토역에 도착한 열차는 우연히 그 시간에 열차를 타러 왔다가 증기기관차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이 찍히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질질 끌며 차에서 내려 승강장을 지나치는데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본 A열차가 있었다. 이걸로 규슈의 관광열차 중 A열차, 이부타마, 하야토노카제, 이사부로신페이, SL히토요시, 카와세미야마세미를 이번 남큐슈여행중 보게 되었고, 이전 북큐슈 여행때 보았던 유후인모노리, 유후, 나나츠보시까지 하면 총 9대를 구경한 셈이다. 철도 매니아들이 들으면 매우 부러워할 경지가 아닌가 싶다. 잽싸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지하로 내려오니 구마모토역의 유명한 거대 쿠마몬 두상이 있었다. 전에 남큐슈레일패스를 교환하러 왔을 때 찍고 싶었는데 개찰구 안에 있어서 나중을 기약해야 했었다. 이번엔 역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그곳에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서 독사진의 기회를 계속 놓쳤지만 순간의 타이밍을 맞추어 원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구마모토역의 A열차>







    <구마모토역의 쿠마몬두상>






    구마모토역을 나와 노면전차에 탑승했다. 퇴근시간에 근접한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많았는데 캐리어까지 들고 타려니 너무 죄송했다. 자리에라도 앉아있으면 캐리어를 벽에 고정시키겠는데 이미 사람이 워낙 많아서 가운데 둥실둥실 떠있는 셈이라 바퀴는 계속 구르려고 하고 아무튼 진퇴양난이었다. 다음에 올때는 택시를 마구 탈 수 있을 정도의 금전적 능력이 있었으면 싶었다. 아무튼 노면전차를 타고 구마모토교통센터에서 한 정거장 더 가서 하차했다. 처음 남큐슈에 도착했을 때는 토요코인 교통센터앞점을 이용했었다. 당시엔 구마모토를 베이스캠프로 하고 버스를 이용해 여기저기 돌아다닐 계획이라서 그렇게 했던 것인데, 마지막날인 만큼 좀 색다른 풍경에 취해보고 싶었다. 구마모토성이 지진의 피해를 입어서 복구중에 있긴 하지만 그 성을 배경으로 하는 호텔에 묵기로 했다. 보수중이라도 느낌이 좀 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호텔이 금방 나타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멀었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라 올라가면서 산소가 희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숨이 찬게 아니라 고도가 올라가면서 산소가 부족해진다고 우기면서 헥헥대며 기어올라갔다. 그렇게 땀에 범벅이 되고서야 KRR호텔에 도착했다. 예약할 때 꽤 저렴한 가격에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꽤 크고 고급스러운 호텔이라 놀라웠다. 아마도 성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높은 금액을 주고 사람들이 묵던 곳이었을텐데 지진으로 보수공사중이니 그만큼 매력이 떨어졌다고 봐야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엘레베이터를 타면 투명창을 통해 구마모토성을 위아래로 훑어볼 수 있게 되어있는데 공사가림막에 가려져 실루엣만 보여 나로써도 실망이 꽤 컸다. 이럴꺼면 캐리어 들고 낑낑거리며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싶었다. 







    <구마모토역>







    <구마모토성 옆>







    <조금씩 무너져 있는 구마모토성>







    <구마모토성 옆 KRR호텔>







    <보수중인 구마모토성>






    막바지에 큰 고생을 해서 그런지 다리가 이상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골반쪽이 욱신거리면서 똑바로 걷는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쩔뚝거리면 덜아픈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게 싫어서 통증을 참고 똑바로 걸어다녔다. 아마 표정이 볼만했을거다. 아픈데 아닌척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을테니. 근데 문제는 호텔에 오는 길에 편의점이고뭐고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흔하던 편의점도 KRR호텔 주변에는 보이지 않아서 저녁거리를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올라가 냉수로 샤워를 하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곧바로 장을 보러 길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교통센터 앞쪽에서 총 길이 1km에 이르는 아케이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쪽에서 초밥이나 먹어볼 겸 설렁설렁 걸어나갔다. 관광이 아니라서 카메라를 두고 나왔더니 몸이 한참은 홀가분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그 무거운 것을 이고지고 낑낑거렸나 싶다. 물론 집에가서 사진을 보면서 흐뭇할 것은 이럴때는 생각하지 못한다. 제법 걸어 아케이드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많이 늦어버린건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그 흔한 초밥집을 결국 찾지 못하고 '에이 편의점이나 가자'하고 들어간 곳에서 초밥을 발견했다. 나는 편의점 초밥도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상하게 만나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 날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욕심부려 두팩이나 사들고 신나는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려 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돈키호테를 발견했다. 


    선물용으로 드릴 퍼펙트휩과 샤론파스 등을 주워담고, 집에 가져갈 호로요이도 욕심껏 담은 뒤에 내 핸드폰으로 계산을 해보니 지갑에 있는 엔화를 훌쩍 넘어섰다. 쇼핑을 할 것이라 생각을 못하고 가방에 돈을 두고 나온 것이 낭패였다. 심지어 여권도 두고 나온 상태라 면세도 받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열심히 담은 물품들을 모두 제위치에 돌려놓고 저녁에 같이 할 파인애플 맛 호로요이 한 캔만 들고 털레털레 나왔다. 내일은 비행기 시간 맞추려면 오전중에 관광을 다 끝내야 하는데 쇼핑까지 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의 KRR호텔로 돌아왔다. 


    지난밤들처럼 나는 비밀의 숲에 푹 빠져 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해결했다. 초밥 10개짜리 2판이 얼마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부른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낑낑거려야 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밤이다. 이 밤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나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간 곳에서는 몇개월간은 여행같은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울만큼 바빠질 예정이었다. 남은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이 즐거운 기억을 곱씹으며 지내야 했다. 일단 지난 7일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남은 하루만 잘 하면 될 것 같았다. 7일차의 여행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맛있는걸 혼자 먹어? 라는 표정으로 초밥을 노려보는 비밀의 숲 이준혁(서동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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