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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로시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2일차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9. 1. 28. 23:05

    여행지에서의 나는 대단히 이른 아침을 맞는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 갑작스레 불편해진 잠자리때문에 깊은 잠에 들 수 없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도미토리에 묵는 경우라면 더더욱. 조금만 더 잠을 잤을 때 뒤의 일정이 거듭 꼬여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긴장상태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화장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잠시 꿈의 세계로 떠났던 정신이 기상과 함께 돌아오면 잊고 있던 감각들(예를 들면 배변의 강한 감각)이 돌아오게 마련인데, 이것은 인류 공통의 증상인지라 숙소에 있는 인원들이 공용 화장실로 한꺼번에 몰려든다. 10분의 밍기적거림은 화장실과의 만남을 1시간 늦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아침에 샤워를 해야하는 나의 습성상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시간에 여유롭게 욕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밖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면 쫓기는 기분이 든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만큼 큰 부분은 못되지만 일본의 아침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온다는 사실도 한 요소일 법 하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나는 아침 5시정도가 지나면 눈을 뜨는 편이다.  


    새벽에 부스럭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기 싫어 전날 밤에 미리 옷가지나 준비물들을 꺼내놓았는데도 결국은 잊은게 있어 조용조용 꺼내느라 온몸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말았다. 준비가 다 되어 아래층으로 내려와보니 카운터는 물론이고 로비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전날 밤엔 사람이 북적거려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었던 로비 겸 식당을 둘러보니 재미난것이 많았다. 이곳에 장기간 머무른다면 나는 책장에 있는 히로시마 소개 책자도 읽어봤을테고 DVD도 구경해봤을 것이다. 내 여행에 여유가 없는것은 이럴 때 항상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것은 체력이 떨어져 숙소 위주의 생활을 하게 될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날도 미련을 걷어 발을 재촉했다. 







    <로비>







    <닫힌 카운터>






    이틀차의 목적지는 우선 오노미치(尾道)로 결정했다. 히로시마에서 동쪽으로 한시간 반 정도를 달려야 나오는 작은 동네인데 소도시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근대보다는 나중이지만 현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그 중간 어딘가의 시간에 묶여버린 듯한 느낌이다. 거리를 거닐면서 나는 왠지 회색빛의 동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예전에는 해상교통의 요지 중 한 곳이었고 공업이 꽤나 발달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영광의 역사를 뒤로하고 천천히 나이를 먹고 있는 듯 했다. 인구 15만의 도시인 오노미치는 산자락을 배경으로 두고 세토내해의 한 줄기를 전경으로 삼은 나름 배산임수(바다는 임수라고 안하던가?)라 풍경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고 하는데 마침 만화 하나가 이곳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빌려다 보았다. '파스텔'이라는 만화였는데 나는 몰랐던 제목이라서 별로 인기가 없는 작품인가보다 하고 지레짐작했다. 확인해보니 44권이나 나온 대작(?!)이라서 꽤나 인기가 있었겠구나 싶었다. 읽으면서는 '여난에 시달리는 음흉하면서 순진한 남자주인공의 순애보 이야기' 정도의 로맨틱코미디(혹은 에로물)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는 없어도 술술 넘어가는 만화긴 했다. 


    교통센터까지 히로덴을 타고 이동해서 버스를 타며 한참을 달리니 오노미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근길의 복장을 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철길 아래로 뚫린 터널에 전망대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 치고는 안내가 참 소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터널을 통과하니 좁다란 골목길이 나왔고 비틀거리듯 꺾인 골목길 끝에 신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신사 옆에 전망대로 올라가는 로프웨이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복잡하고 아리송한 구조였다. 


    우시토라신사(艮神社)라는 이름의 그 신사는 원래 있던 자리가 로프웨이용 건물 덕분에 옆으로 슬쩍 밀려난 듯한 느낌이었다. 도리이는 일찌감치 나타났는데 집 사이로 긴 골목을 타고 들어가야 간신히 신사 건물이 보였다. (물론 이런 곳은 다른 곳에도 많다.) 신사 위로 로프웨이가 지나가는 길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성모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법 관대한(?!)신이 깃들어있는 모양이다. 층층이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제법 널따란 공간이 펼쳐졌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신사 본당 건물 좌우로 높다랗게 자라있는 나무 두 그루였다. 예전에 큐슈의 다케오신사에서 3000년된 녹나무를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곳의 나무도 그 크기로는 만만치 않았다. 입이 떡 벌어져 하늘을 올려다보다 로프웨이 시간이 되어 발걸음을 옮겼다. 







    <우시토라 신사>







    <우시토라신사>






    로프웨이의 이름은 '센코지야마로프웨이(千光寺山 ropeway)'였다. 천광사가 있는 산에 있는 로프웨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듯 했다. 워낙에 1등으로 도착했던 관계로 로프웨이에 가장 먼저 탑승해서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여기서 좋은 자리란 사진을 찍기 좋은 자리를 말한다. 아래방향이 보이는 쪽 창문이 딱 달라붙어서 사진촬영도 하고 감상도 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명당이다. 출발 시간이 되자 곧바로 문이 닫히고 삭도가 두둥실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고만고만해 보였던 건물들이 멀리 달아나 손톱만해지고 그 너머에 있던 세토내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풍광의 멋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꽤나 흥했던 물류의 요지였다는 이야기 답게 건너편의 대형 크레인들이 대게처럼 발을 뻗치고 있었다. 일본의 높은 곳 풍경이 꽤나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아파트같은 것들이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아기자기하게 놓인 건물들이 있어 그들이 주는 매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아파트가 잔뜩 쌓인 가지런한 풍경도 물론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런 모습을 매일 보는 나에겐 그저 일상일 뿐이다. 아마도 루브르 박물관을 매일 청소하는 아저씨에겐 모나리자가 더이상 아름답진 않을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니 고양이 모양 도자기(?!)인형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고양이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하는 오노미치의 상징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겠거니 싶었다.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니 각각 '센코지야마로프웨이 역장 코이에몬'과 '센코지야마로프웨이 가이드 사쿠라'라고 쓰여있었다. 일본의 몇몇 곳에서 고양이에게 역장이라는 별명을 붙여 관광객을 모으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가 아니었을지. 어쨌든 고양이라는 것은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아이템이긴 한 것 같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15%가 고양이었다는 이야기도 잇지 않은가. 인형 아래에는 '용과 함께'라는 게임 타이틀이 붙어있었는데 사전조사에 따르면 최근 발매된 오노미치 배경의 게임임이었다. 오노미치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풍광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 이게 야쿠자 게임이라는게 좀 애매하게 생각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야쿠자가 싸움을 하며 다닙니다.'고 홍보를 하는 느낌 아닌가







    <센코지야마로프웨이>







    <오노미치 정상 고양이 도자기>






    오노미치 정상에 도착해서 가챠머신을 만나 잠시 가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고양이 동네라서 그런가 헬로키티를 주제로 하는 상품이 있었다. 동전을 주섬주섬 그러모아 몇개를 뽑고 전망대로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 발자국을 동판에 새긴 것을 다시 비석에 심어놓은 설치물들을 볼 수 있었다. 오노미치의 정상에서만 본 것이 아니라 시내에서도 종종 목격했기 때문에 무엇인지 궁금해했었는데 결국 현지에서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조사해보니 비젠야키(備前焼)라는 도자기를 굽는 명인 사토 다이스케(佐藤苔助)씨가 오노미치의 부흥을 위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유명신사들의 발자국을 찍어 곳곳에 전시해둔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발자국이 누군지 알았다면, 그리고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알았다면 더 재미있을 법한 설치물들이었다.


    로프웨이를 내린 곳에서 조금 더 걸어들어가니 원기둥 모양으로 된 전망대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커다란 하트 설치물이 있었다. 하트 가운데는 하얀 고양이 두 마리가 서있는데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 앞의 비석에는 '연인의 성지'라고 쓰여있고 고양이 앞에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쓰여있는데 이것은 분명 긴 솔로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나를 비웃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 설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는 이런 연인의 성지가 참 많다. 그리고 그런 곳을 홀로 지나갈때마다 대단히 뻘쭘하다. 독신가구가 많다고 하는 일본의 배려가 이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근원적인 분노가 올라오지만, 역시나 국가 생산력을 증대시켜주는 아이를 낳아주지 않는 독신가구에게 그런 호사스러운 배려따위는 없는 것인가 싶다. 고양이 한 세트를 보고도 여기까지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나도 꽤나 비뚤어져가는 모양이다. 







    <발자국 비석>







    <연인의 성지>






    전망대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타고 오르니 시원하게 트인 오노미치의 전망이 나를 반겼다. 육지와 가까운 섬 사이로 바닷물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고, 안개속에 흐릿하게 윤곽만 남은 산자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비가오기 직전이라 습습한 느낌을 주는 점도 좋았다. 비가 실제로 오고 있었어도 풍광이 꽤나 인상적이었을 것 같다. (물론 비를 싫어하는 나는 옷자락에 비를 적시 비명을 질러댔겠지만.) 원형으로 된 전망대 옥상을 빙글빙글 돌며 사진으로 담고 눈에도 담고 캠코더에도 담았다. 아주 조용한 항구도시의 풍경으로 기억될 법 했는데 여기서 생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망대 위에서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을 찍어대는 와중에 한 커플이 올라왔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었다. 전날 숙소에서 한 방을 썼던 영국인 남자와 독일인 여자였다. 행선지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았던 터라 다음날 어디로 갈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하필이면 오노미치였던 것이다. 그들이 아직 꿈나라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나와 비슷하게 이곳에 도착하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어쨌든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인물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먼저 길을 떠났다. 아무래도 커플의 오붓한 산책을 방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중에 숙소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뒤로 하고 어색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리나케 아랫동네를 향해 걸어갔다.


    로프웨이를 왕복으로 끊을 수도 있지만 편도로 끊었던 것은 바로 이 센코지야마(천광사산)에 아기자기한 골목들과 절, 고양이들이 노니는 공원 등이 있어서 걸닐며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편도로만 티켓을 끊고 걸어 내려가며 경치를 구경하는 것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정말 산자락에 있을 법한 바위 사이 구불구불한 흙길을 걸었는데 어느새 잘 닦여진 계단이 끝없이 나타났다. 얼마쯤 걸어 나타난 절의 풍광이 멋져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아주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까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진 그 커플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세상 뻘쭘한 것이 어색한 사이에 인사를 하고 다시 만나는 것이라지?)


    사실상 내려가는 코스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쉬엄쉬엄 가는 이상은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다 보니 재미나게 잘 구경하라는 작별인사를 남겨놓고도 다시 만나게 되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나만 어색한 것은 아니었고 그쪽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조금 더 쉬고 싶었지만 마치 너무 오래 쉬어서 이제 가봐야겠다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왕 갖춘 예의이기도 했고, 작별인사가 주는 강제된 헤어짐이 나를 인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다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센코지야마 정상 전망대 풍경>







    <센코지야마 제비>







    <오노미치성-현대에 관광용으로 지은 성이라고 한다. 현재는 용도 없이 비어있고 오노미치시에서 용도를 고민중이라고>







    <천광사>







    <천광사 에마>






    오노미치의 몇몇 풍경이 나에게 낯설지만은 않았던 것은 예습삼아 보고 갔던 만화 '파스텔'의 역할이 컸다. 코믹에로물(?!)이라는 점에 맞지 않게 의외로 배경을 세밀하게 잘 살린 만화라서 실제 만화에 나왔던 장소라면 '아 여기가 거기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오노미치의 풍경이 그러했고, 하산하는 길목의 골목이 그러했고, 다 내려와서 보았던 철길, 바닷가의 부두에 놓인 의자가 그러했다. 백미는 고양이가 노니는 공원이었다. 만화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이 공원에 모여 자기 주인의 어리석음을 토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곤 했는데 그 공원이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고양이들까지 함께 말이다.


    널따란 공원에는 여기저기에 고양이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사람이 오는 것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모양인지 각자 자신의 털을 정리하거나 깊은 잠에 취해있는 등 제멋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 듯, 정돈되지 않는 털에서 야생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순간 만화에 들어와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화 하나가 주는 문화적 전달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까 그 커플과 세번째 조우(?!)가 이뤄졌다. 


    또 다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느니 차라리 같이 다니는게 낫겠다 싶었다. 같이 다니느게 어떻겠느냐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아마 커플이 아니었다면 진작 물어봤을 것이다. 오붓한 데이트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싶었지만 계속 마주치는 것이 더 큰 방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공원에서 같이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으며 이 공원이 일본 유명 만화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렸더니 꽤나 관심있어 했다. 여행 전에 '파스텔 성지순례'라는 내용의 블로그에서 실제 장소와 만화 장면을 비교해 놓은 곳이 있어서 그것을 보여주었더니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들도 히로시마의 오노미치가 유명하다고 해서 일단 전망대까지 오기는 했는데 딱히 무언가 목적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길을 내려가며 풍경만 눈에 담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보여준 만화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모양이다. 뿌듯한 순간이었다.







    <우에야마 에이이치로 - 소용돌이 형태의 훈연 모기향을 개발한 사람, 천연 살충제인 제충국을 이용했는데, 센코지야마에 제충국신사가 있어 이 사람을 신으로 모신다.>







    <오노미치 고양이>






    전날 통성명으로 남자는 애덤, 여자는 마리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국남자와 독일여자가 연인이 되어 지구 반대편인 일본까지 오다니 참으로 신기하면서 부러웠다. 섬 아닌 섬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느끼는 부러움이랄까. 애덤은 흑백 필름을 쓰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오노미치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었다. 흑백의 감성을 아는 청년이라니. 하긴 그런 감수성을 갖고 있으니 지구 반바퀴를 돌아 히로시마라는 곳까지 와서 동양 문화를 느끼고 있겠지. 실제로도 그는 영국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순수하게 보이는 그의 행동과 표정들은 모두 그 따뜻한 감성에서 나오고 있는듯 했다. 그가 하는 음악도 따스한 느낌을 풍길 것 같다. 마리아는 짧은 단발이 어울리는 쾌활한 여자분이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한국인의 습성상(?!) 몇살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등등을 물어보고 싶은데 서양은(요즘엔 우리나라도) 그것이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하여 참고 자제한 것이다. 가끔 에티켓이라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쉽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나를 많이 배려해 주는 것이 느껴져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어른스러운 커플이었다. 







    <오노미치 철길>







    <만화에 나오는 골목길>







    <애덤이 찍은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







    <사이 좋은 두 커플>






    오노미치를 내려오면 곧바로 히로시마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그들과의 동행이 꽤나 즐거워서 조금 더 같이 다녀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들의 오후 일정인 구라시키에는 패스권으로 갈 수 없어서 함께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들은 신칸센 프리패스를 이용해서 일본 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내가 따라가려고 하면 예상치 못한 교통비의 타격이 있을 것이라 더더욱 함께 할 수 없었다. 내가 트램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오노미치에 그들은 신칸센을 타고 단번에 왔기 때문에 나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고도 나와 비슷하게 도착한 것이었다.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강하다. 가끔은 나도 이런 금전적인 부담 없이 원하는 발걸음을 하고 싶지만 아직 나는 젊고, 조금 더 고생하며 여행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아쉬움은 언젠가는 조금 더 넉넉한 여행으로 갚을 수 있겠지. 아무튼 산을 모두 내려와서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다에서도 만화책에 나왔던 장소들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만화를 보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연신 든다. 그런 것이 있어서 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여행은 무언가를 눈에 담고 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때 훨씬 풍성해진다. 







    <만화에 나온 바닷가 벤치>







    <만화에 나온 목욕탕 - 현재는 잡화점으로 쓰이고 있다.>






    이윽고 그들이 계획한 출발시간이 되었다. 구라시키로 가는 그들에게 한참이나 손을 흔들며 배웅한 뒤 내 버스시간표를 보니 약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조금 더 걸으며 바닷바람을 쐬고 싶었는데 한두방울씩 내리던 비가 점차 굵어지더니 급기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아침도 못먹은 차에 점심은 좀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역 옆에 있는 라면가게에 들어갔다. 비가 와서 날씨가 조금 쌀쌀해져서 따끈한 국물이 땡겼기 때문이다. 시간이 딱 점심때라서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 했지만 카운터석이 하나 비어있었다. 젖은 우산을 잘 접어 바닥에 놓고 매콤한 고추기름이 떠있는 듯한 라면을 시켰다. 잠시 뒤 숙주가 한가득 들어간 라면이 나오고 나는 정신없이 허겁지겁 들이켰다. 순식간에 몸이 후끈후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누군가가 '일본 라면은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예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일부러 조금 더 후룩거리며 먹어보았다. 그러면서 그릇을 들어 마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생각나 숫가락으로만 열심히 퍼먹었다. 언젠가는 예의를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반응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일본에 가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에 자주 가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오노미치에서 버스를 타고 빗속을 달려 다시 히로시마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비가 거의 그치다시피 해서 우산 없이 돌아다니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터미널에서 조금 걸어가면 히로시마 성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히로시마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광고를 보았는데, 히로시마 성을 관람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고양이가 잔뜩, 고양이 아트 전'이라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에겐 시간이 너무나 야속할 뿐이었다. 실제로 히로시마성을 관람하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아이고 고양이나 보러 갈 걸'이었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리라. 







    <고양이가 잔뜩, 고양이아트展>






    히로시마성은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없는 제법 큰 성이었다. 원래 성을 축성할 당시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위한 후방기지로 사용할 목적으로 오사카성에 필적하게 만들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이후 개축을 하고 메이지유신에 해자가 메워지는데다, 원폭 투하로 인해 규모가 줄어들어 지금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수각에 올라서 보이는 성 주변이 꽤나 광활하다. 히로시마 천수각은 전후에 다시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인데 내가 방문하던 시점에는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본 문화재를 구경다니다 보면 상당히 장기간의 텀을 잡아 보수공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그들의 장인정신에 감탄을 하면서도 동시에 관광객으로서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참고로 히로시마성은 천수각 바로 앞에서 찍은 사진보다도 아예 해자 밖에서 대각선으로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이 멋들어진다. 마지막날 집에 가기 위해 히로시마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나는 히로시마성의 멋진 모습을 눈에만 담고 카메라로는 담지 못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이 부분을 꼭 알고 가셨으면 하는 소망이다. 


    천수각 전망대층에서는 녹음이 짙은 히로시마성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멀찌감치 둥그런 체육관 건물이 보이는데 이 곳이 만화책 슬램덩크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 전국대회를 위해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개회식을 여는 곳이라고 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눈여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나 주의할 점은 성 안에 있는 고코쿠신사(護國神社)의 존재다. 보통 일본의 성 안에는 해당 성주의 씨족을 모시는 신사가 있게 마련인데, 히로시마의 고코쿠신사는 그런 종류의 신사가 아니다. 원폭으로 희생된 92000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신사라고 하니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신사인 셈이다. 신사의 의의는 알겠지만, 이 신사는 전범들도 함께 기리고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참배를 하거나 인증샷을 잘못 찍었다간 매국노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쪼록 잘 알고 가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히로시마성>







    <고코쿠신사 - 護國神社 - 원폭 희생자 92000명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신사, 전범도 같이 기린다고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히로시마성 천수각>







    <히로시마성 천수각 전망대 풍경>






    가볍게 히로시마 성을 구경하고 이 날의 최종 목적지인 원폭 돔에 도착했다. 이 원폭돔의 존재가 참으로 얄궂은 것이, 일본에게는 무조건 항복을 외치게 되는 계기라는 점, 그러면서도 원폭의 위험성을 알리고 세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남겨두었다는 점, 그로 인해 일본이 전범국이 아닌 피해자 행세를 하기 좋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국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일본인을 불쌍해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 하지만 그 원폭으로 인해 식민수탈을 당하던 조선인의 광복이 더 빠르고 완벽하게 다가왔다는 점 등 수많은 상황과 감정이 복잡하게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건물 자체만 보면 철원에 있는 조선 노동당 당사의 잔해와 별 다를바가 없다. 유리창 없이 뼈대만 남아있는 벽돌 건물에서는 세월의 향기가 느껴질 뿐인데, 사람들은 이 건물에 많은 감정을 담아 투영한다. 


    1915년 물산장려관으로 개관한 이 건물은 이후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되면서 반파되고 만다. 남아있던 창틀 등도 불이 붙어 없어지고 지금의 뼈대만 남은 것인데, 처음에는 흉물스러운 외관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하여 없애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평화운동가 가와모토 이치로를 중심으로 하는 보존 움직임이 일어났고, 66년 시의회의 보존 결정, 95년 히로시마시 사적 지정, 그리고 96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다. 계속된 보존 수선을 하고는 있지만 풍화작용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지진에 의해 무너질 우려도 있기 때문에, 지금 본 모습이 나중에도 유지되리라고 보기가 꽤나 어려운 건물 중 하나인 듯 하다. 







    <원폭돔>







    <원폭추모공원>







    <카페 포르테>






    원폭 돔 주변의 평화공원에는 많은 추모시설과, 원폭 피해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박물관이 있다. 이 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서양인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이다. 일본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 중에서도 특히 서양인들의 발걸음이 많이 닿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원자폭탄은 전쟁의 참혹함을 대표하는 아이템이고, 원폭투하의 잔해로 남은 원폭돔은 반성의 대상일 뿐이다. 각종 전쟁에 대신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던 일제 식민지의 사람들이 원폭투하로 광복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은 그들에게는 인식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일본이 피해자라고 꾸준하게 홍보해 온 일본정부의 힘 때문이다. 또한 최근 관광산업에 열을 올리는 일본이 세계인에게 더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우리나라에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각종 예산을 관광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과 통일을 하면 인스타 인증샷을 찍고 싶은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관광산업의 부흥이 일어날 것도 같은데 이건 너무 앞서간 생각이려나...







    <원폭 추모공원>







    <평화박물관 - 더이상의 히로시마는 안된다. 그리고 더이상의 침략야욕도 안된다.>







    <박물관에 가득한 서양인들>







    <잘 꾸며진 평화공원>






    히로시마 원폭돔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추모공원이 널따랗게 구성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 추모공원에서 희생자를 기리지만 원폭투하로 일본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는 공원 한 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화장실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나마 나가사키의 그것보다는 크다며 마음의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이 속상함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1분여의 묵념을 올리는 사이에 이 비석이 무언가 궁금해서 와준 두 명의 외국인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 어두운 역사가 실재함을 널리 알릴 국력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나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다. 







    <히로시마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위령비의 유래>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원폭돔, 그 뒤로는 유리즈루타워>






    마음속의 복잡함과는 별개로 추모공원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추모라는 특유의 속성이 열기를 가라앉히는 것은 아닐런지. 산책을 나온 동네 아저씨가 데려온 개는 물에 발을 담구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은 점차 사라져 쪽을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이 되어갔다. 비가 내렸던 내음이 점차 옅어져 갔고 나는 편안해진 마음을 양껏 즐겼다. 오기 전의 일이나 돌아간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걱정해야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항상 지금이다. 여행을 하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평화로운 강변풍경>







    <푸르른 히로시마>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역시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들어갔다. 일본여행동호회에서 맛없기로 유명한(?!) 코카콜라 클리어도 구입했다. '투명한 콜라라니 신기하군' 이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사먹어보지만 콜라도 아니고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맛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역시나 먹어보기 전에는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법이다. 가볍게 먹어보았지만 역시나 맛이 없었다. 콜라 제로나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으로 돌아가니 1층 사람이 체크아웃을 한 상태였다. 전날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2층침대에서 오르내리며 불편했던 기억이 나서 부리나케 카운터로 가 층을 바꿀 수 없는지 물어봤다. 예약할 때 침대가 배정되는게 아니니까 당연히 될 것이라 생각했고, 카운터에서도 흔쾌히 허락했다. 1층의 새 이불과 시트커버를 2층에 올려놓고, 2층에서 쓰던 짐들을 다 갖고 내려오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다리도 짧은 애가 2층에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꽤나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침대에 누워서 인터넷을 하며 빈들거리고 있자니 구라시키에 갔던 커플이 도착했다. 서로 남은 여행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또 다른 외국인 둘이 체크인을 하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점점 빨라지는 영어에 나는 다시금 영어공부에 대한 욕구를 불태우며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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