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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한자와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그외에 함께하는 이야기 2019. 12. 14. 09:33

     

     

     

     

    "버스에 타고 책을 펼쳤다가 덮었더니 부산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고속버스로 4시간 20분이 걸립니다. 저렴한 가격에 부산에 갈 수 있는 고속버스지만 KTX나 비행기 같은 탈것에 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게 아쉽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할 만한 무언가를 잘 챙기는 것이 여정을 조금이나마 짧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 예능 등을 시청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한자와나오키 3권을 준비해 갔습니다. 버스에 타고 책을 펼친 다음 469페이지의 내용을 전부 읽고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들어보니 사상 터미널이었습니다. 휴게소에 들렀는지도 몰랐습니다. 

     

     

     

    "Previous(이전의) 한자와나오키"

     

     

    한자와나오키는 '이케이도 준'의 소설로 '한자와나오키'라는 이름의 은행원의 회사생활 이야기입니다. 뭐 그런 재미없어보이는 내용이냐 싶겠지만 이 회사생활은 보통의 회사생활이 아닙니다. 1권에서 한자와는 부정대출 후 재산을 빼돌리는 기업인과 그에 협조한 은행 상사를 박살내고 정의를 구현합니다. 특히 은행 상사는 자신의 부정을 부하직원인 한자와에게 덮어씌우려고까지 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1권이 오사카지점에서의 활약상이었다면 2권은 도쿄를 배경으로 그려집니다. 1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본사에 영전한 한자와나오키에게 부여된 임무는 감사청 감사를 무난히 통과하고 이세시마 호텔의 재건계획을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은행이 거액을 대출해준 이세시마호텔은 거액의 금융손실(주식투자에 실패해서)을 발생시키고 감사청은 이세시마호텔의 파산 등에 대비한 충당금(미래에 발생한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미리 쟁여두는 금액)을 준비시키려 합니다. 은행이 충당금을 준비하면 비용으로 잡히기 때문에 당기 손실이 크게 잡혀 은행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에 꼬여있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책의 재미를 해칠 것 같아 말씀드릴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한자와나오키 1권,2권,3권(좌로부터)

     

     

     

    "드디어 나온 3권"

     

     

    앞선 1권과 2권은 '한자와나오키'라는 이름으로 드라마화되었습니다. 일드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드라마 시청률 역대 3위이고 2000년 이후 드라마에서는 독보적인 1위입니다. (최종회 시청률이 42%, 순간 시청률은 46%가 나왔다고 합니다.) 드라마의 엔딩에선 은행장이 "도쿄센트럴증권으로 출향을 명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나 열린 엔딩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즌2를 기다렸지만 주연인 '사카이 마사토(堺 雅人)'가 이미지 고착을 우려하여 출연을 사양하면서 소식이 감감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카이 마사토가 시즌2의 출연을 확정 지으면서 2020년 4월 방영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있기 전까지 한국의 독자들은 한자와나오키의 원작 소설 3권과 4권을 읽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판권을 가진 출판사의 폐업과 여러 가지 문제로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이 책을 본격적으로 출간하였고 드디어 드라마 뒷부분인 3권까지 번역이 완료되어 출판되었습니다. (4권도 조만간 발행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자와나오키 3권은?"

     

     

    도쿄센트럴증권은 원래 한자와나오키가 몸담고 있던 도쿄중앙은행의 자회사입니다. 그리고 도쿄중앙은행은 도쿄제일은행과 산업중앙은행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거대은행입니다. 은행 안에서는 구 도쿄은행 출신과 구 산업은행 출신의 알력싸움으로 보이지 않는 경계가 팽팽한 상황입니다. 이전의 1,2권에서도 이 알력싸움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도쿄센트럴증권으로 좌천에 가깝게 파견된 한자와나오키는 유수의 IT기업인 전뇌잡기집단으로부터 또다른 IT기업인 도쿄스파이럴을 M&A하고 싶으니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전뇌잡기집단이 갑작스레 M&A주관사를 도쿄중앙은행으로 변경하면서 한자와 책임론이 부상하는 와중에 이 안에 숨어있는 각종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어 다시금 활약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잃어버린 세대"

     

    한자와나오키 3권에는 '모리시타'라는 인물이 한자와의 부하직원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속칭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2차 대전 직후의 베이비붐 세대를 '단카이(團塊) 세대'라 부릅니다.(단괴처럼 단단히 모여 활동한다는 의미)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며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끈 세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종 부정부패와 불합리, 적폐를 쌓아온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후 일본의 경제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며 풍요로움을 만끽하던 버블(Bubble)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버블 세대'가 있습니다. 이 거품이 깨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자살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버블 세대는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후 불황이 계속되면서 일본 경제에 마땅한 성장 해결책이 없는 이른바 '잃어버린' 시대가 도래했고 이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엄청난 취업난에 허덕이고 심지어는 취업을 포기하고 후리타(Free Arbeiter의 약자로 아르바이트를 중장기로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가 되기도 합니다. 소비가 위축되면 생산이 불필요해지고, 생산이 불필요해지면 공장 등에서는 고용이 축소되며, 고용이 축소되면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갑니다. 이런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잃어버린 세대'에게는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희망을 가질 겨를이 없습니다. 모리시타는 생각합니다. '취업난에 온갖 고생을 하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회사에 간신히 들어왔는데 일은커녕 버블 세대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세상을 만든 책임이 적어도 우리에겐 없을 것이고 윗 세대들에게 있을 텐데 고생은 우리가 다 하고 있단 말인가.' 하고 말이죠. 

     

     

     

    "한자와나오키"

     

    주인공 한자와나오키는 이런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바꿔봐."

     

    "세상에 불만을 터트리거나 한탄하는 건 간단해. 세상이 허무하다고 탄식하거나 불평하거나 썩었다고 개탄하거나... 하지만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시대에나 세상을 향해 불평을 토로한 자들은 길거리에 널릴 정도로 많았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 가령 자네들이 학대당한 세대라면, 어떻게 하면 다시는 그런 세대가 나오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그 대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자네들은 달라. 자네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의문이나 반감이라는, 우리 세대에는 없던 필터가 있고, 뿌리 깊은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지금부터 시작될 거야. 하지만 세상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비판만 해서는 안 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이 필요해."

     

    "비판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해. 그러니까 앞으론 자네들의 비전을 보여주게. 왜 단카이 세대가 잘못되었는지, 왜 거품 세대가 틀렸는지. 세상을 어떻게 만들면 모두 받아들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회사 조직을 포함해, 자네들은 그런 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모리야마, 싸워. 나도 싸울 테니. 그런 식으로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아 갈 만하니까. 그렇게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이 본보기가 되어 세상의 부조리와 싸웁니다. 소설 한자와나오키는 사실상 치열한 경제소설이기에 앞서 적폐 청산을 위한 도장깨기에 가까운 소설입니다. 독자들은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고 있지만 사실상 힘을 쓸 만한 부분이 없는 것에 대하 안타까워하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한자와나오키에게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소설 한자와나오키"

     

    소설 한자와나오키는 숨가쁘게 진행되는 업무 속에서 정의를 관철하는 한자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수백억엔, 한화로 수천억에 이르는 금액의 손실을 불러올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들은 역시나 살얼음판을 걷듣 아슬아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이 책에 강렬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요소입니다. 거기에 더해 '배로 갚아준다.'는 한자와나오키의 통쾌한 복수극이 더해져 강렬한 카타르시스까지 있습니다. 경제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쉽게 쓰여있어 진입장벽이 크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재미가 구현되어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감히 강력하게 추천할만 합니다. 1권,2권,3권이 각각 옴니버스식으로 되어있어 이야기가 일단락된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심지어는 이전 내용을 모르더라도 책을 읽는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근래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이 있었나 싶네요. 

     

     

     

     

    P.S 스케일이 점차 커지고 있는 한자와나오키 4권은 이제 정치인과도 싸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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