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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6)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3. 7. 26. 20:26

     

    처음에 전망대를 계획했지만 시간상 어려워서 홋카이도대학교로 변경

     

    여행의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오전 4시 정도였고 나는 그 새벽부터 일정이 있었다. 바로 쇼핑이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나는 가난한 여행자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사본 적은 없다. 다만 마지막 날엔 종합 쇼핑몰(이라고 쓰고 도떼기시장이라 읽는다)인 돈키호테를 털어(?!) 종종 일본생각이 날 즈음 먹을 간식거리나 부탁받은 소소한 물건들을 사서 들어온다. 위탁수하물 가격을 아껴보려고 한국에서 일본에 들어올 때 캐리어도 들고 오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위탁수하물을 사전예약해 두었다. 돈키호테에서 지퍼가 달린 타포린백을 구입해서 그 안에 쇼핑한 것들을 넣으면 위탁이 가능하다.(지퍼가 없이 위가 오픈형인 가방은 위탁이 불가능하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스아게 플러스 바로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메가 돈키호테라는 곳이 있어 미리 봐둔 차였다. 곧바로 내달려 이런저런 간식을 구입하고 부탁받은 파스와 약 등을 구입했다. 호로요이를 참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는 100엔 근처면 먹을 수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3천 원도 넘는 가격인지라 이번에도 한정판 위주로 꾸역 구역 챙겨 구입했다. 타포린백을 한참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좌절하다가 지하에 있는 카운터 바로 옆에 커다란 보냉팩을 팔고 있어서 같이 구입했다. 보냉팩에는 아무래도 충전재가 한번 더 들어가서 충격에 강해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그대로 들고 1층으로 올라가 면세까지 받고 뽁뽁이를 뚤뚤 감으니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이리저리 각을 재가며 꼼곰하게 포장해 주신 면세코너의 점원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보냉팩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가 되어서 어깨에 짊어지고 삿포로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호로요이 12캔이 들어있는 그 가방의 무게가 바로 내 욕심의 무게였다. 바퀴도 없이 몸빵으로 가방을 들고 있자니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체력을 모두 써도 후회는 없으리라. 

     

     

    홋카이도의 돈키호테에서 만난 뜻밖의 한류

     

     

     

    쇼핑을 하면서는 잠이 충분히 깨지 않아 조금 몽롱한 상태였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삿포로역까지 걸어서 그런지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마 내가 나만한 짐을 짊어지고 끙끙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다면 매우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삿포로역에 무사히 도착해서 코인로커를 찾아 카메라만 빼고 짐을 다 때려 넣었다. 나중에 다시 짐을 꺼내 신치토세역까지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지만 일단은 홀가분함을 즐기기로 했다. 

    홋카이도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는 홋카이도대학이었다. 삿포로역에서 북쪽으로 걸으면 금방 나오는 곳에 있어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내게 딱 적당한 여행지였다. 홋카이도대학은 1876년 설립된 삿포로농학교를 전신으로 하여 1918년에 제국대학교로 승격된 일본의 명문대학교다. 일본 대학교 랭킹에서 10위권 안에 꾸준히 드는 학교고 노벨상 수상자도 세명이나 배출했다고 한다.

    역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정문이 나오는데 의외로 심심한 분위기고 그보다 더 북쪽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위치상으로나 분위기나 더 정문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숲이 근사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농대 쪽이 구경해보고 싶어서 샛길로 샜더니 정말 공대분위기가 팍팍 나는 뒷골목 쪽 길이 나타나서 당황했다. 중간에 건물을 뚫고 지나갈 수도 없어서 계속 뒷길로 걷다 보니 비닐하우스도 나오고 농장도 나오고 해서 그 부분은 조금 재미있었다. 우선 나도 농대출신이기도 하고 해서 다른 나라의 농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증이 있었는데 별 다를 바 없었다. 대학원생들이 아마 저 밭에서 농사도 짓고 동물들 사료도 주고 하겠지 싶어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저렇게 고생을 마치고 나면 석사도 하고 박사도 하고 노벨상도 타오는 것이겠지. 

     

     

    홋카이도대학 단풍
    홋카이도대학 단풍
    후루카와 강당
    농학부 건물
    홋카이도대학 종합 박물관

     

     

     

    홋카이도 대학은 예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레트로한 분위기를 보이는 곳이 많다. 특히나 수목이 워낙에 잘 가꿔져 있고 작게는 개천도 흐르는 곳이라 얼핏 보면 숲 속에 건물들을 세워놓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캠퍼스의 넓이가 상당히 넓어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세로로 종단을 할라치면 도보로 30분은 걸린다고. 나도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넓은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했지만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도 만만치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 크기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크기와 얼추 비슷하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서 은행나무 가로수길에 도착했는데 반절 정도밖에 종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좌절했다. 포플러 가로수길(헤이세이 포플러 가로수길과 그냥 포플러 가로수길이 있다.)을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바로 포기했다. 그래도 단풍이 가득한 캠퍼스를 걷는 것은 좋았다. 특히나 종합박물관 앞의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도로에 노란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문학부 표지

     

     

    가을에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홋카이도대학을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겨울에 흰 눈이 쌓인 풍경이야 홋카이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일 것이고 초록의 나무가 무성한 풍경도 어디서든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길게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일제히 단풍이 들어 샛노란 터널을 만들어내는 것은 홋카이도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캠퍼스 이곳저곳에 알록달록하게 물든 풍경을 감상하다 노란 꽃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은행나무 터널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루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행 마지막에 큰 기대 없이 들렀던 곳에서 영원히 기억할 멋진 풍경을 눈에 새길 수 있었다. 내게 2022년의 가을은 홋카이도대학으로 기억될 것이다.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

     

     

    홋카이도대학 구경을 마치고 삿포로역으로 돌아와 코인로커에서 짐을 챙겼다. 홋카이도 JR패스권은 어제자로 효력이 다했기 때문에 신치토세까지 가는 열차표를 구입해 탑승했다. 신치토세역에서 내려 국제선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 도착한 날에도 국제선 터미널에서 역까지 이동하면서 무빙워크를 한참이나 이용해야 했는데 돌아가는 길이라 기분도 좋지 않고(?!) 짐까지 무거우니 거리가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오후 4시쯤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일러서 티켓 발권이 불가능했다. 원래 잽싸게 발권을 하면서 위탁수하물을 맡기고 홀가분한 몸으로 국내선 터미널 쪽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세상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2시쯤에는 카운터 오픈을 할까 싶어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니 홋카이도 쪽 관광공사 사람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설문조사를 좀 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한국인인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라고 했다. 애초에 국제선에서 설문조사를 부탁하는 것이라면 외국인 대상임이 당연할 텐데 괜한 것을 물어보았다 싶었다.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자리마다 돌아다니며 부탁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해드리기로 했다. 종이는 아니었고 큐알코드로 무슨 사이트에 들어가서 해주면 된다고 했는데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무슨 앱이라도 깔라고 나와서 바이러스나 개인정보를 빼가는 시스템일 수도 있으니 이런 것은 조심해서 나쁘지 않다. 다행히 별 문제없는 사이트였고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라면 차라리 종이설문지를 주는 것이 훨씬 안심될 것 같았다. (그리고 원래 종이로 하는 거 좋아하는 나라잖아...) 끝나고 나니 감사하다면서 소독티슈를 주셨다. 세상이 험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분도 믿지 못하게 되나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2시가 되어도 카운터가 열릴 생각을 하지 않기에 코인로커에 짐을 때려 넣고 국내선 터미널로 향했다. 

     

     

     

    헬로키티 공항코너
    로이스 초콜릿 월드
    로이스 초콜릿 월드
    로이스 초콜릿 판매점
    신치토세공항의 비행기 모형
    신치토세 공항역 전경
    당시 도쿄 리벤져스 홍보가 한창이었다
    도쿄 리벤져스 홍보물

     

     

    신치토세역공항역은 국내선과 가깝고 국제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로 찾는 관광지인 만큼 국내선이 엄청나게 크고 상점도 그 주변에 집중적으로 위치해 있다.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국내선 쪽으로 갔던 것인데 당시 코로나로 인한 하늘길이 갓 풀린 국제선의 휑한 모습과는 달리 국내선은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서 1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는 나는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무지 안될 것 같아서 가까운 안내원분께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물으니 국내선 카운터 쪽에 하나 있다고 했다. 배는 고파오고 출국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편의점까지는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던지. 간신히 음료 하나와 샌드위치를 샀는데 역시나 앉아서 먹을 곳도 보이지 않아서 국제선까지 가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돌아가는 길에 르타오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발견해서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그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었다는 점. 홋카이도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명물이다. 르타오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현시점까지 나의 인생 아이스크림이다. 디저트인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고 출국장에 앉아 샌드위치로 가볍게 요기를 채웠다.

     

     

    홋카이도 라멘도장
    르타오 소프트 아이스크림
    로이스 초콜릿 제조공장
    남들은 들어올 때 찍는다는 도라에몽을 돌아가는 날에서야 발견했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자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터미널쪽에선 얼마 안 되어 보였는데 다들 안에 들어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홋카이도 특유의 고요함에 조금 익숙해져 있었던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잠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비로소 한국에 돌아간다는 실감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면세점에서 어머니 특별주문인 로이스초콜릿을 사들고 혹시나 싶어서 롯카테이의 마루세이버터샌드도 하나 집어 들었다. 내 입엔 맛이 없었는데 그래도 어머니께 맛이나 보여드리지 싶어서 산 것이었는데 이걸 그렇게 맛있어하실 줄이야. 그 사실을 이때 알았더라면 더 구입했었겠지만 이때는 1 상자 사는 것도 크게 고민을 했다. 괜히 사서 남을까 봐. 이게 무슨 헛된 걱정이란 말인가.

     

     

    신치토세 공항
    신치토세 공항

     

     

    5박 6일간의 홋카이도 여행이 마무리되고 나는 신치토세공항의 활주로 위에 있었다. 오후 4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홋카이도의 풍경이었다. 미세먼지가 없어 멀리까지 선명한 실루엣을 그려내던 그 공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윽고 비행기는 두둥실 떠오르고 검게 변한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한참을 어둠을 뚫고 날아가던 비행기의 아래쪽에 섬이 하나 나타났는데 실루엣이 너무나 익숙했다. 섬 주위로 도로와 마을들이 있어 가로등으로 섬의 외곽이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형체가 울릉도 같았다. 비행기에서는 검색을 해볼 수 없어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나갔지만 나중에 항로를 확인해 보니 울릉도가 맞았다. 아마 독도도 지나갔을 것 같은데 너무 작아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10여 년 전에 여행했던 곳을 하늘길에서 만나기 참 반가웠다. 나중에 공항이 생기면 진짜 하늘길로 닿을 일도 있겠지.

     

     

    동해바다 상공
    밤이 오지 않는 불야성의 한국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집에까지 안전하게 들어간 뒤에야 '즐거운 여행이었다.'라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하물을 찾아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는 길에 세관에 신고서를 제출하니 뭐가 들어있냐고 물어보셨다. 신고서에 주류 12캔이라고 정직하게 적어놨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호로요이가 뭔지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에도 몇 번 있던 일이라 그대로 말씀드렸다.

     

    "호로요이 열두 캔이요..."

     

    세금을 내도 1~2만 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세금을 내면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보람은 없긴 하다. 근데 이 정도 저렴이 술은 세관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에도 가시면 된다며 보내주신 덕분에 한 고비를 넘겼다. 낑낑대며 들고 들어온 호로요이는 가끔 일본여행이 고플 때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방금 도착한 공항버스에 탑승하고 종점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 집 근처 언덕길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가는 5분 정도의 길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여독과 12캔의 호로요이와 집 근처에 다 와간다는 안도감이 나를 괴롭혔다. 이윽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에 들어와 배낭과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5박 6일 홋카이도 여행의 끝이었다. 

     

     

    3년 만의 일본여행이었다. 홋카이도는 가보고 싶은 데 가격이 비싸서 고민만 하던 곳이었다. 저렴하게 표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평소에 다니던 일본과 비교하면 비행기값이나 현지에서의 교통비가 배는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혼자서도 좋겠지만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유난히 들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고 연인과 함께 가고 싶다. 그저 즐거운 곳이었다면 혼자서 오는 것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경치가 정말 좋았던 곳들을 보여주고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장대한 풍경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비에이의 도카치다케의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역시나 비에이의 라벤더 밭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다. 삿포로 모이와야마의 아름다운 야경을 연인과 나누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언젠간 나 혼자의 여행이 아닌 함께하는 여행의 이야기도 채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때까지 홋카이도는 기다려주리라. 변치 않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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