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지?'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고장난 물건을 뚝딱뚝딱 고쳐주시고, 수학문제라면 무슨 문제든 척척 풀어주시는 영웅적인 존재였다.
적당히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를 이따금씩 하시는 그런 존재로 전락했다.
그리고 더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품 속에 있지 않아서 그 존재를 떠올릴 일 조차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진가를 조금씩 느끼게 되었고
한 가정을 이끌어갈 만큼의 경제력을 보유하면서 아들의 수학문제에 참견하고 집안의 잡일들을 거뜬히 해치웠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영웅적인 존재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거대한 영웅의 시간이 내 생각만큼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어머니께만 하던 안부전화를 넘어 '옆에 계신 아버지 좀 바꿔주세요.'라고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뭘 나까지 바꿔달라고 그래.'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꽤나 행복해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나는 좀 더 일찍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가 아버지를 기억하며 쓴 책이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주민의 힘든 현실 속에서 굳건히 가족을 꾸려갔던 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어렸을 적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자신의 큰 밑거름이 되어있음을 알았다.
어떻게 살라고 말을 하기 보단,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본인의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이제는 자신이 그 아버지가 되기 위해 실천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지 않아 가볍게 읽었는데 묵직하게 다가왔던 점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