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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큐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6일차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8. 5. 12. 21:58






    전날 저녁에 워낙에 빡빡한 일정을 거쳐서 그랬는지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가 깼다. 사실 잠깐만 자고 일어나서 다음 일정을 체크해볼 예정이었는데 그대로 논스톱으로 잠들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알람의 힘 덕분에 제 시간에는 일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에서 미리 사둔 대용량 커피를 두 컵이나 연속으로 벌컥였다. 어차피 가고시마에는 이틀 쯤 있을 것이니 저 커피를 다 마시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부지런히 씻고 짐을 챙겨서 가고시마 추오 역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후 5~6시만 되어도 대부분의 관광지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날도 이부스키(指宿)로 가기 위해서 아침 6시 54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예약해 둔 참이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이부스키행 일반 열차를 기다리고 있자니 다른 곳에서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역에 우르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남큐슈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이름 답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출근을 위해 모여드는 것 같다. 사람들 사이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는데 멀리서 공부하러 다니려면 꽤나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시절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왕복 3시간 30분에 달하는 통학시간을 보내던 생각도 나면서 말이다. (그때는 그렇게 사람에 치이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서있고 해서 살이 덜 쪘던건가 싶기도 하다.) 열차가 오기까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문득 목이 말랐는데, 오늘 쓰려고 사둔 물을 그대로 냉장고에 두고 나왔다는 것이 생각나버렸다. 어쩔 수 없이 자판기에서 주머니의 동전 사정을 고려한 적당한 음료를 샀다. '산토리 모닝 티'라는 이름의 그 음료수는 색이 투명한데 맛은 홍차맛이 나는 아주 신묘한 음료였다. 맹물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였기에 즐겁게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잠시 뒤 열차가 와서 그대로 탑승했다.


    아침에 가고시마 중앙 역으로 오는 사람은 많았는데, 다행히도 가고시마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후에는 반대 방향이 많아지겠지 싶었다.) 열차는 텅텅 비어서 아주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열차에 차양막을 내리는 방식이며,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며 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90년대 지하철이 생각났다. 안정성만 잘 관리 되고, 경제성만 있다고 하면 굳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너무나 빨리 사라지는 우리나라가 가끔은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추억 끄트머리의 한 자락을 일본에서 찾게 될 줄이야.







    <이부스키행 일반열차>






    이부스키에 도착을 하니 남국의 시골동네가 눈 앞에 펼쳐졌다. 역 자체는 깔끔한 편이었는데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시골스런 정취가 느껴졌던 것 같다. 밖으로 나갔을 때 지글거리는 열기와 함께 나를 맞아준 것은 용궁 모양의 설치물이었다. 이부스키가 일본 전래동화인 우라시마타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그 이야기인 즉슨 이러하다.


    옛날 바닷가 마을에 우라시마 타로(浦島太郞)라는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 아이들이 거북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에게서 거북을 구해서 바다로 돌려보내주자 거북은 자신이 용궁에서 왔다며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거북의 등에 올라탄 타로는 용궁에서 오토히메(乙姫)를 만나게 되어 재미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타로는 오토히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뭍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오토히메는 타로에게 타마테바코(玉手箱-옥수상)라는 이름의 상자를 건네며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그를 육지로 돌려보낸다. 바닷마을에 돌아온 타로는 용궁에서 며칠을 지냈을 뿐인데 육지에서 300년이 지났음을 알게되고 슬퍼하다 상자를 열어버린다. 그리고 타로는 폭삭 늙어버렸다.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아내를 구해 돌아오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깼다가 아내를 잃은 사연이 생각나는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도 '우렁각시'이야기나 '선녀와 나무꾼'에 이런 금기를 깨고 나중에 후회하는 이야기가 많다. 금기라는 것이 있으면 깨지 말라는 어떤 교훈적 메시지를 주기 위함인가 싶기도 하다. 만화 '원피스'에서는 위의 타로 이야기를 차용한 어인섬 에피소드가 있다. 만화를 볼 때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타로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나니 관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이 용궁일 뿐더러 등장인물도 오토히메고, 옥갑이라는 보물상자를 열어 약물을 취하고 나중에 늙어버리게 되었다는 점 등에서 연관성이 명확히 느껴졌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자기 역사와 문화를 지금까지도 잘 활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부스키에는 실제로 오토히메를 모시는 용궁신사(龍宮神社)가 있어서 가보고 싶었지만 오후에는 사쿠라지마(桜島-앵도) 근처를 돌아보기로 계획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모래찜질회관 사락'(쓰나무시카이칸 샤라쿠-砂むし会館砂楽)에 가는 것이었다. 버스를 기다리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갈 것 같아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래도 괜히 반대방향으로 탑승했다 쓸데없이 미터기를 올리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방향을 따져보고 길을 건너갔는데, 그 곳에 모래찜질회관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심지어 한 10분 안에 버스가 이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택시비를 아끼면 더 많은 가챠를 뽑을 수 있다. 신나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금새 도착한 버스를 냉큼 잡아탔다. 버스비가 140엔이라 기분이 좋았다. 







    <이부스키역 앞 용궁문>







    <이부스키역 옆 족욕온천>







    <이부스키역 옆 족욕온천>







    <천연모래찜질온천 가는 길>







    <모래찜질회관 사락>






    모래찜질회관은 외관만 두고 보았을 때 마을에 있는 문화센터같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안에 들어갔을 때 받은 느낌은 찜질방이었다. 예전에 내가 존경하는 생물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구조는 기능을 결정한다.' 같은 구조를 한 생물이라면 같은 기능을 한다는 의미이다. 잠자리의 날개와 박쥐의 날개, 새의 날개는 모두 다른 기원을 갖지만 구조적으로 같아지면서 '난다'라는 같은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찜질방같이 생긴 건물이라면 응당 찜질방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고 일본의 찜질방같이 생긴 건물은 역시나 찜질방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건물 안의 한쪽 구석에는 카운터가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다른 구석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는 점은 좀 달랐다. 로비에는 테이블이 여럿 있어서 목욕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었고, 그 옆의 자판기는 '일본에선 목욕 후에 우유를 마신다네'라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워낙에 일찍 도착한 탓에 사람은 나 이외엔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수속을 밟고 모래찜질을 하러 갔다. 







    <모래찜질 회관 내부>






    찜질용 유카타를 받아들고 지하(가 아니라 로비가 2층이니 사실은 1층)의 탈의실로 내려갔다. 사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목욕탕처럼 수건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에서 사거나 대여해야 하는데, 대여료가 200엔이었다. 쿠로카와 온천에서는 200엔이면 수건을 살 수 있고, 하다못해 묵고 있는 숙소에서 하나 들고가면 200엔을 아낄 수 있는 셈이라 다들 수건 한 장쯤 챙겨가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 주었다. 나도 쿠로카와 온천에서 산 수건 한 장을 챙겨갔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급하게 챙겨오느라 수건이 전혀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챙겨간 수건을 들고 나가야하는데 찜질할 때 머리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때문에 수건에 모래가 덕지덕지 뭍은 상태로 몸까지 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수건은 두 장쯤 준비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챙겨간 이유는 모래찜질을 하기 전에 부탁을 하면 모래에 묻힌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건물 밖으로 해서 계단을 내려가니 검은색 모래밭이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지붕을 얹은 구조물에 사람들이 삽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걸어가 사진을 부탁드리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몸을 뉘였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찜질을 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머리를 바다쪽으로 하는 바람에 그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었다. 앞에 한 명만 더 있었으면 반대방향으로 누울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등판부터 따땃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곧바로 삽으로 옆 모래를 퍼다 내 다리에 슬며시 뿌리기 시작했다. '모래가 무거워봤자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자가 굵은 모래가 몸 위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두꺼운 솜이불 두 개쯤 덮은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온도가 따듯함을 넘어서 약간 뜨거운 수준이라 곧바로 땀이 스멀스멀 배어나왔다. 입고 있는 유카타가 젖어드는 느낌이 들면서 순간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부스키에 와서 모래찜질을 할텐데, 그러면 이 따끈한 모래에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온천수를 이용해 열소독을 한다고 하니 그렇게 찝찝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삽으로 몸 위를 빈틈없이 메워주신 그 분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주머니에서 비닐을 하나 꺼내 그 속에 핸드폰을 넣고 옆에 놓아주었다. 그냥 근처 바닥에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역시 디테일의 일본 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은 기둥에 달린 시계를 가리키며 10분 정도 뒤에 몸을 꺼내면 된다고 하셨다. 예비군 훈련 이후로 오랜만에 시계 초침이 느리게 흘러가는 경험을 했다. 처음엔 '따끈하다' 정도였던 모래가 나중에는 불지옥 비슷하게 느껴져서 정신이 온통 시계에만 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0분이 지나 몸을 일으켰을 때 몸이 개운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 한잔, 배가 아프다 간신히 찾은 화장실과 같이 뜨거운 모래 속에 파묻혀있다 일어나 느끼는 (상대적으로)시원한 공기는 최고의 쾌감이었다. 







    <회관에서 나와 모래밭으로 가는 길>







    <나보다 빨랐던 두 찜질객>







    <사람 파뭍는 삽>






    시원하게 땀을 빼고 다시 목욕탕으로 돌아왔다. 모래가 잔뜩 묻어 묵직해진 유카타를 회수통에 던져놓고 샤워를 하며 모래를 떨어내는데 느껴지는 배덕감이란 옷입고 흙장난을 한 뒤 그대로 샤워를 하는 아주 기묘한 느낌이었다. 욕탕에 잠시 앉아보았는데 너무 뜨거워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후다닥 나와 탈의실로 도망쳤다. 모래밭에서 머리에 배어놨던 눅눅한 수건으로 대충 몸을 훑고 옷을 입어버렸다. 처음엔 좀 찝찝했지만 로비에서 에어컨을 쐬고 있자니 다행히 조금씩 뽀송해졌다. 자판기에서 커피우유 한 팩을 뽑아 마시고 있자니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어쨌든 이래저래 개운하게 찜질을 마치고 츠나무시카이칸을 나섰다. 


    이부스키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버스비를 미리 준비해두려는데 동전 하나가 바닥에 떼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버스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앞 빈자리에 가방과 카메라를 대충 올려놓고 뒤로 돌아 굴러간 동전을 찾으려는데 카메라가 스르륵 떨어지는 것이 슬로우비디오로 보였다. 옆 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도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놀란 토끼눈을 하셨는데, 천만 다행으로 끈이 가방에 걸려서 바닥 5cm 위에서 멈췄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메라를 다시 제대로 놓으며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이군요'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웃음을 내게 지어보이시는 그 모습에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눈인사로 답례했다.  







    <데일리 커피우유>







    <이부스키역 전경>







    <이부스키역 내부에 있는 모래찜질 복장을 한 대형 목각인형>






    이부스키에 모래찜질만 하러 왔다고 하면 좀 아쉬운 감이 있어서 돌아갈때는 관광열차 '이부스키 타마테바코'를 예약해두었다. 아직도 꽤 이른 시간이었고, 이부스키에 오는 열차도 아니고 가고시마로 돌아가는 열차에 사람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는 생각이었는데, 크지 않은 이부스키역에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더니 나중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과연 인기 관광열차라는 것이 거짓은 아닌 듯 싶었다. 이부스키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만 본 내 인상은 '낙후된 시골 관광지'라는 느낌이었는데, 나름 부흥을 위해 이래저래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만이 이용했다는 타마테바코도 그렇고, 이케다호수에서 잇시라는 괴생명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도 그렇다. 이부스키역사 안에서 묘하게 남국의 느낌이 나는 음악에 맞추어 살랑대는 춤을 추는 홍보영상이 반복재생되어있는 것도 부흥의 일환인 듯 싶었고. 


    한참을 기다려 탑승한 이부타마호는 객실 내부가 나무장식으로 고풍스러웠고, 일부는 아예 열차 한 쪽을 관람하면서 갈 수 있도록 측면으로 좌석 배치가 되어있었다. 욕심을 부려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카메라를 들고 경치를 감상했다. 육지쪽으로 깊게 패인 가고시마만의 바다를 바짝 붙어 둘러가는 관광열차 덕분에 잔잔한 바다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나무나 전선에 많이 가린다는 느낌이라 생각만큼 엄청난 풍경은 아니었다. 내가 열차관광이 체질에 맞지 않는건가 하는 생각은 좀 들었다. 예전 도쿄여행때 하코네를 방문하면서 '일본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그 자체도 하나의 여행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었는데, 이번 열차 여행에서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열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큰 즐거움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어차피 가고시마에 돌아가는 길에 탑승한 것이라 손해볼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부타마호에서는 특산품인 푸딩을 꼭 먹어보라고 했는데, 판매하러 사람도 오지 않았는데 이미 품절이라고 해서 아쉬웠다. 나중에 열차 구경을 하면서 사람들이 뭘 먹고 있나 얼핏 보았는데 푸딩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허니버터칩같이 소량으로만 판매해서 희귀성을 무기로 한 상술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먹은게 심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이부스키역으로 들어오는 이부타마호>







    <창가를 꾸미고 있는 물고기 장식 - 마구로>






    이부타마가 가고시마츄오역에 근접하자 멀찌기 사쿠라지마(桜島)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는 날씨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어서 섬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선명한 느낌은 아니었다. 구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야가 희뿌옇다. 사진이 잘 나올지 걱정이 되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긴 했다. 열차는 이윽고 종착역에 도착하고 나는 서둘러 2층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웰컴큐트패스'를 샀다. 이 패스권이 있으면 사쿠라지마 페리를 타는 선착장까지 갈 수 있는 가고시마 시티뷰 버스, 사쿠라지마로 가는 페리, 사쿠라지마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아일랜드뷰 버스 등등을 이용할 수 있고, 이외에도 가고시마 내의 여러 관광지에 닿을 수 있기 때문에 1,000엔이라는 가격대비 상당히 쉽게 뽕을 뽑을 수 있다. 


    패스권을 사고 시티뷰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서 점심을 대충 때우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일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하달까, 무섭달까 하는 마음이 있다. 그건 내 완벽주의적 성격때문에 오는 문제같은건데, 내가 완벽하게 상황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완벽해지려는 노력을 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라는게 함정...) 결국 아예 그런 상황을 회피해버리고 주문 실수나 그런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패스트푸드, 편의점 음식으로 한끼를 때우는 것을 편하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 같다. 지금도 이 성격을 고치기 보다는 '일본어를 좀 더 공부해서 문제가 없게 해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한 동안 더 밥을 먹는데 고생을 할 모양이다.  이날도 KFC에서 점심을 먹으며 바보같은 나를 반성했다.







    <굳이 일본까지 가서 먹지 않아도 될 KFC>






    푸른 돌고래가 넘실거리는 가고시마 시티뷰 버스를 타면 지역에서 유명한 아케이드인 텐몬칸(天文館-천문관)을 지나 맛있는 음식점 등이 많은 돌핀 포트를 스쳐지나간다. 아직 노면전차가 운행중인 가고시마는 도로 가운데에 선로와 전선기둥이 있는데, 그곳에 잔디가 자라 있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잔디가 솟아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봐도 일부러 키워서 잘 정돈해둔 그런 모습이었다. 여기에도 가고시마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있다. 이 지역에선 사쿠라지마 화산이 자주 분화하고, 이때문에 화산재가 온 도시에 흩날린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화산재를 빗자루로 잘 그러모아 노란색 전용 봉지에 넣어 전용 수거함에 넣어둔다. 그러면 이것을 수거해가서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처리하여 선로 잔디를 키우는데 쓴다. 화산재는 물이 잘 빠지는 특성이 있어 비가 고이거나 하지 않고 잔디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한다. 빨래를 널어놓았다가 화산재를 맞고 새까매지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가끔은 대분화로 대피령이 뜨는 귀찮은 환경이지만 이 사람들은 이 곳에 살아가며 적응해 온 것이다. 


    수족관 정류소에 내려 시원해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배를 타는 곳을 향해 가는데 한번도 표를 체크하지 않았다. 배를 탈때까지도 표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서 '어디서 내가 모르고 지나쳐왔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커다란 배 안에는 사람이 스무명도 채 되어보이지 않아서 한번 더 놀랐다. 6대의 배가 1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15분이면 건너갈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분산되어있지 싶다. 24시간 운영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밤에 누가 배를 탄다고 24시간 운영을 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다만 사쿠라지마가 단순한 섬이 아니라 가고시마 반대편으로 육지와 연결되어있고, 그 쪽을 통해 움직이는 차들을 실어나르기 때문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해 보았다. 어련히 알아서 경제성 평가를 다 끝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배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 걱정하고 있는 와중에 사쿠라지마 섬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비로소 표를 확인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마음을 놓았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사쿠라지마 페리가 24시간 운영되는 이유는 사쿠라지마 분화시 주민 대피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돌고래모양 시티뷰 버스 (이것 이외에도 다른 모양을 한 시티뷰 버스도 있다.>







    <가고시마 노면전차 선로>







    <가고시마에 놀러온 사람들이 많이 들른다는 텐몬칸>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많았던 돌핀포트>







    <사쿠라지마 페리 탑승하러 가는 길>







    <가고시마만을 건너가는 사쿠라지마 페리에서 돌아오는 배를 바라보며>







    <사쿠라지마에서 대기중인 페리들>






    사쿠라지마 섬에 도착해서 바라본 가고시마는 꽤 큰 대도시였다. 엄청난 고층건물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이 바다건너에서는 보였다. 조사해 본 바로는 큐슈에서 인구수로 4위에 해당하는 대도시라고 한다. 가고시마시의 인구는 약 60만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안양시 인구에 맞먹는 셈이다. 큐슈의 중심지 후쿠오카가 압도적 1위이고 2위인 기타큐슈는 후쿠오카와 같은 권역으로 묶인다고 생각해보면 3위인 구마모토와 경쟁하는 입장인데, 가고시마 사람들은 이걸 꽤나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지역의 사람들이 갖는 생각에 더 근접하게 되어 재미있다. 


    배에서 선착장으로 건너가는 다리 옆에는 관광객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다른 블로그에서도 많이 언급된 그 현수막이 보였다. '허벌나게 반갑소잉'이라는 사투리로 적혀있는 환영인사였다. 전라북도와 가고시마가 결연을 맺어 교류를 하고 있는데 이런데서 그 흔적을 보게 될 줄이야. 식상한 '어서오세요'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선착장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면 사쿠라지마 아일랜드 뷰 버스정류장이 있다. 혹시나 한 발 늦어서 버스를 못탈까봐 부리나케 내려가 보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전형적인 '길을 잃고 헤메는 관광객'모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로에서 길을 안내하시는 한 할머니께서 '관광을 하러 오셨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관광버스를 타고 싶다고 말했더니 10분 전에 막 출발해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15분쯤 걸어가면 비지터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구경하면서 버스를 기다리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선착장에 앉아서 세월을 보내기 보다는 그렇게 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감사의 인사로 꾸벅 절하고 걷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느끼는 남큐슈의 열기가 이제는 익숙해질때도 되었건만, 이날은 그 더위가 최고조였다.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로 가는 길은 나무가 많지 않고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도로가 전부인 꽤나 황량한 도로였다. 나는 여름이라 더운 것이 아니라 화산이라 더운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쿠라지마에서 바라본 가고시마 시>







    <페리 선착장의 한글 환영인사>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






    사쿠라지마 비지터센터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선착장에서 버스를 탔더라도 이 곳에서 한 시간 정도는 보내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쿠라지마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만든 조형도, 사쿠라지마 화산의 생성과정 등에 대한 정보가 잘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상영관이 있어서 사쿠라지마 화산이 분화했을때의 모습이나 기타 관련 정보드를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자막을 부탁하면(다른 사람보다 먼저 말해야 하긴 하지만) 한국어로 된 자막으로도 영상을 시청할 수 있어 아주 유익했다. 시원한 에어컨은 덤으로 좋았다. 센터 뒤쪽으로는 넓은 풀밭에 전망대가 있어서 앞으로는 사쿠라지마를 볼 수 있고 뒤로는 가고시마만 건너편의 가고시마를 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관광에 좋은 곳이었다. 시간을 잘 보내고 있자니 버스 시간이 다가왔고, 버스는 순식간에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들어찼다.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







    <사쿠라지마 조형>







    <비지터센터 뒤쪽 전망대>







    <또 다른 사쿠라지마 전망대>






    아일랜드뷰 버스를 타면 사쿠라지마 내 몇몇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하차한다. 사람들을 내려주고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멈춘 곳에서 약 5~10분 정도 기다려줬다. 그래서 전망대에 차가 멈추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려서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지정된 좌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빨리 돌아와 먼저 자리에 앉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도 여행 6일차의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어서, 관람보다는 자리에 앉는 것에 조금 더 주력하기로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전망대에 올라가서 스포츠 기자마냥 사진을 연사로 찍어대고 누구보다 빠르게 다시 내려와 버스 자리에 앉았다. 눈에 담을 시간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서 더위와 다리아픔에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전망대 중 한 곳에는 하늘을 노려보며 고함을 치는 듯한 모습의 거대한 석상이 있었다. '나가부치 쯔요시'라는 일본의 국민급 유명 락 가수가 자신의 고향인 사쿠라지마에서 2004년 콘서트를 열었다고 한다. 8월 21일에 연 콘서트에 전국에서 7만5천명의 사람이 모여들었고 '올 나이트 콘서트'라는 이름처럼 9시간동안 42곡의 노래를 열창했다고. 이 더위에 사쿠라지마에 모여들었을 사람들의 열정이 화산만큼은 뜨거웠을 것 같다. 그 열광의 콘서트를 기념하기 위해 사쿠라지마 화산석으로 열창하는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잘 보면 옆에 기타 넥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배경지식이 없이 이 석상을 딱 보았을 때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석상을 보고 '화산폭발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괴로운 표정'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배경지식이라는게 이래서 중요하구나 싶다. 







    <나가부치 쯔요시 석상>






    아일랜드뷰 버스의 하일라이트는 '유노히라 전망대'다. 버스는 이곳에서 가장 긴 시간인 15분의 관람시간을 준다. 사쿠라지마 분화구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이기도 하고, 높이도 높아서 눈에 걸리는 것 없이 시원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화산이 꾸준히 터지면서 화산재가 쌓이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밀려내려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주변에 물이 흐른 듯한 자국이 보이기도 하고, 깎여내려간 단면이 상당히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산사태의 우려도 있기 때문에 거대한 드럼통 같은 것으로 정비하고 포크레인이 흙을 퍼내리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자연적이지 못한 모습에 아쉽기도 하지만, 이 섬에도 6천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섬이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노히라 전망대>







    <유노히라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가고시마만>







    <정비중인 포크레인과 철제 구조물>







    <정비된 모습>






    유노히라 전망대까지는 버스가 섬 주변을 크게 돌면서 여러 전망대에 들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선착장을 향해 곧바로 내려왔다. 해변가의 전망대에서는 사람이 사는 흔적을 느끼기가 어려웠는데 내려오는 길에서야 이 곳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지터센터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 곳에 사는 어린이는 통학할 때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다니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갑작스런 분화에 대비해서 생명을 보호하는 대비책 같은 것이다. 꽤 신기하고 귀여운 모습에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곤 하는데, 얼굴까지 노출되게 사진을 찍어서 곤혹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얼굴까지 노출되는 사진은 지양해야 할 듯 싶었다. 그래도 혹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했었지만, 하교시간과는 거리가 좀 있었던 관계로 직접 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관람이 끝난 후 페리와 시티뷰 버스로 가고시마역에 돌아왔다. 페리에서 남은 시간 동안 가고시마의 어떤 곳을 갈 수 있는지, 동선과 시간을 미친듯이 계산했다. 웰컴큐트패스는 이미 그 가격에 맡은 소임을 다 해주었지만, 나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시로야마(白山)공원 전망대'라는 곳과 센간엔(仙巌園-선암원)이라는 곳이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버스를 탔던 곳에서 같은 시티뷰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달렸다.


    가고시마는 에도막부시절에 사쓰마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곳으로 시마즈 가문이 번주로 다스렸다. 사쓰마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상대로 벌인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처음엔 도쿠가와의 반대편에 섰을 정도로 반막부 성격이 강한 동네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에도막부가 하지 말라는 대외무역을 몰래 하기도 하고, 류쿠왕국(지금의 오키나와)를 허락도 없이 복속시키는 등의 일을 벌이는 등 꽤나 중앙에 밉보일만한 일들을 벌였다. 쇄국을 기본으로 하던 막부 방침이 있었지만, 19인의 젊은이들을 영국으로 몰래 유학보낸 일도 있었는데, 이들은 '젊은 사쓰마의 군상'이라는 이름의 동상으로 가고시마 중앙 역 광장에 자리잡고 있다. 출국 사실이 알려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도전했던 이들을 칭송하는 의미가 있다고. (출국은 19명이 했는데 2명은 인솔자라 유학생은 17인이다.)


    아무튼 이런 풍토에서는 사상이 기존과 다른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가고시마에서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 利通)와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와 사쓰마의 시스템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고, 결국 메이지유신을 이끈 주인공이 된다. 다만 일본에 걸출한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위인이 되란 법은 없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한국을 정벌해야 한다.'의 대표주자로 우리나라의 원수같은 존재이다. 그랬던 사이고지만 정한론을 기치로 내세운 정쟁에서 패배하여 고향인 가고시마로 낙향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쟁에서 승리한 오쿠보 도시미치쪽이 정한론을 반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뉘앙스의 차이가 좀 있다고 해야하겠다.) 메이지 정부는 중앙권력 강화를 위해 사무라이제도를 약화시키는 등의 정책을 펴는데, 이에따라 각 지방의 무사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이들이 사이고를 대장으로 모시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게 되고 정부는 대대적인 토벌군을 보내는데 이것이 일본의 마지막 내전인 '서남전쟁'이다. 여기서 패배한 사이고는 시로야마에 300여명의 부하를 데리고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결국 패배하여 근처의 동굴에서 부하에 손에 할복자살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때 사이고의 나이는 29세였다고 한다.







    <가고시마츄오 역 광장의 '젊은 사쓰마의 군상' 동상>






    가고시마 수족관을 지나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로야마 전망대였다. 고도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고시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서 멀리 사쿠라지마와 함께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고 했다. 버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고 짤막한 터널도 지나가고 하는데 중간에 슬쩍 '사이고 다카모리 자살동굴'이 보였다. 내려서 가보고 싶지만 버스가 딱 두타임 남아있어서 마지막 목적지인 센간엔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볼만한게 있는 대단한 유적지는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동굴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로야마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광객이 꽤 많이 찾는 곳인 듯, 주차장이 널찍하니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기서부터 안내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도 기념품점이나 토산품 상점이 길게 뻗어있어서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위에서 보게 될 풍경을 더욱 더 기대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자니 슬며시 땀이 배어왔지만, 나무가 빽빽한 곳이라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금방 도착할 거라는 생각보다는 조금 더 걸어야 했지만 전망대에 도착하니 울창한 나무가 걷히고 사쿠라지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멀찍이 조금 옆에서 시내와 함께 내려다 보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저 화산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을 주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지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도 깨닿게 한다. 







    <시로야마 전망대에서 본 사쿠라지마>






    더위를 좀 식히고 넉넉히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녹록치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시티뷰버스는 두 번이었는데, 한 번으로 센간엔에 가고 마지막 한 번으로 숙소에 귀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대라도 놓치면 꽤 먼 거리에서 택시를 타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택시를 타게 되면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버스를 제때 타는 것이 첫번째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볼 만큼은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에 미련은 없었다. 마음이 급해서 발이 급히 달렸는지 아직 버스가 오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다가 목을 축이니 그제서야 숨이 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해서 냉큼 탑승했다. 







    <가고시마 마치메구리 버스 - 민영 관광버스로 웰컴큐트패스로는 탈 수 없다.>






    센간엔은 사쓰마번의 번주인 시마즈가문의 별장같은 곳이다. 1658년에 지어지면서 기암괴석들을 갖다 놓았는데, 이것이 중국 용호산의 '선암'과 비슷하다고 하여 선암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시마즈가문의 문장은 원 안에 십자문양이 들어있어서 얼핏 보면 '안전제일'마크하고도 비슷하다. 이런 마크가 센간엔 이곳저곳에 있어서 '크리스찬 가문인가?'하는 의문이 생겼던 기억이 난다. 


    도착시간이 거의 다섯시에 근접해 있어서 관람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매표소에 가니 다행히도 입장은 아직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정원과 박물관 입장권을 같이 묶어서 판매중인데 박물관은 이미 폐관시간인데 괜찮겠냐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박물관도 봤겠지만, 지금은 정원이라도 보면 감지덕지라는 생각이었다. 관람시간이 다섯시 반까지라고 해서 정원도 잰걸음으로 구경해야 할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웰컴큐트패스를 제시하면 센간엔에서 기념품을 준다고 되어있어서 제시하고 받았다. 사쿠라지마를 배경으로 하는 정원의 모습이 찍힌 엽서였는데 의미있는 기념품이어서 내심 좋았다. 


    입구에 들어가면 사쓰마에서 제작했다는 거대한 철대포가 그 무게감을 자랑한다. 옆으로는 쇠를 녹여 대포나 조총을 만들던 반사로(용광로)의 미니어쳐(라고 하지만 여전히 크다.)도 있다. 사쓰마는 본인들이 유신의 시발점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보였다. 정부가 쇄국을 방침으로 하는 와중에 일개 번주가 밀무역과 유학생 파견, 그리고 유신을 진행했다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센간엔은 지역 주민들에게 그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센간엔은 전체적으로는 일본식 조경이었다. 바닥에 잔 자갈을 깔아 길을 내고, 잘 깎은 풀밭이 베이스로 덮이면 그 외에 여러 식물을 심고 나무같은 경우엔 둥글둥글하게 깎아낸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을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일본 정원은 아름답지만 자연스럽진 못하다. 항시 우리나라의 정원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살짝 얹는 것과 비교되지만, 어느쪽이 더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선호의 문제인 것이다.







    <센간엔에도 있는 화산재 함>







    <시마즈 가문 문양>







    <센간엔 정문 - 입구와 다른 곳에 있다.>







    <센간엔 풍경>







    <사쿠라지마와 가고시마만을 차경으로 하는 센간엔 정원>







    <센간엔에서 만난 꽃>







    <일본 빗물받이 - 쿠사리토이(鎖樋、くさりとい)>






    관람객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상태라 꽤 호젓하게 정원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다만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30분만에 그 넓은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직원분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퇴근해야 되는데 자네는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신가?'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달까? 하지만 나는 거금 천엔을 주고 들어온 몸. 다섯시 반까지는 나에게 이 정원을 구경할 권리가 있다며 당당하게 돌아다녔다. 볼 수 있을만큼 봐 놓아야 박물관도 보지 못하면서 입장료를 낸 설움을 걷어낼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말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 센간엔의 뒤쪽 산자락 방향의 계곡 구경을 못했다는 것이다. 꽃이 필 시기에는 풍경이 꽤나 아름다운 것 같으니 언젠가 봄에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아쉬운 곳을 남겨놓게 되면 다음에 다시 찾는 계기가 된다고 하던데 나로서는 꼭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명승 센간엔>







    <센간엔 옆 박물관>







    <센간엔 앞 우체통>






    폐관시간을 거의 딱 맞추어 밖으로 나오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두세명 정도밖에 없었다. 이걸로 가고시마에서의 관광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좀 아쉽다. 7박8일의 일정을 잡고 그렇게 빡빡하게 움직이는데도 보고싶은 곳이 참 많은 나인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유신후루사토관도 보고싶었고 그 외에도 가보고싶은 곳이 많았지만, 일본 관광지는 오후 다섯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일 밖에는 남은 게 없는 셈이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가고시마의 풍경을 눈에 꾹꾹 눌러담았다. 남겨놓은 풍경을 보러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말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의문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가고시마 시내를 달려 버스는 중앙역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전날 숙소를 찾으면서 봐두었던 가챠폰을 파는 곳을 찾아갔다.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기가 힘들어 어제는 미뤄뒀던 곳이지만, 오늘은 단단히 지르기로 마음먹어둔 차였다. 넘치는 지폐로 여행객의 스웨그를 보여주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동전 교환기가 고장이 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참 떨어진 매장 중앙의 계산대로 가서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4천엔 정도를 교환하여 여기저기 가챠를 돌리고 나니 금새 동전이 동이났다. 더 뽑고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나이를 먹고서 뽑기 좀 뽑아보겠다고 카운터에 돌아가 또 동전을 교환하자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민망하려면 처음에 들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때는 일단 뽑아야 한다는 열망이 강했고, 이제는 좀 뽑아서 욕구가 수그러든 상태였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대신 내일 구마모토로 가는 열차를 타러 나와서 다시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쯤이면 동전교환기도 고쳐져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숙소에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들러 도시락을 샀다. 가라아케 반찬에다 밥 위에는 무슨 나물 무침같은 것이 올려있는 것이었는데, 닭튀김이야 항상 맛있는 것이고 나물은 조금 입에 맞지 않았지만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틀전인가 먹었던 오뎅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이번에도 같이 질렀다. 오뎅 속 무가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려 무도 두조각이나 시키고, 오독오독한 맛이 있는 소힘줄도 시켰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 비로소 하루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다. 식사를 마치고 반신욕까지 하면 완전히 본래의 게으른 나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여행중에 바삐 돌아다니는 것은 내 본성을 어긋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6일째 밤이 기분좋게 저물었다.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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