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5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7. 11. 11:02
본 여행기는 2018년 히로시마와 그 주변지역을 여행한 여행기입니다.일본에 다녀온 모든 여행기를 올렸는데 히로시마는 마무리를 짓지 못해 미적거리다가 최근에서야 간신히 마무리를 하게 되어 뒤늦게나마 올려봅니다.
교통정보는 상당히 변한 것이 많아 정보성은 부족해졌지만 그 외에 볼만한 지역들의 유래나 소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서 아직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히로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4박 5일 정도의 일정은 너무나 짧게 지나간다. 쏜살로는 부족하고 쏜로켓 정도의 속도는 되는 것 같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왜 돌아가는 날은 벌써 다가와있는 건지 모르겠다. 비행기시간이 정오에 가깝다는 점을 이용해서 오전에 짧게 한 곳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짐도 많아서 들고 다니기엔 부담이었는데 다행히도 공항 바로 근처에 멋진 정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일본의 정원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 더 보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무거운 짐을 챙겨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공항의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맡기고 정원으로 걸어갔다.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정원의 이름은 산케이엔(삼경원)이었다. 세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히로시마의 산과 계곡, 마을, 바다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인터넷에서 산케이엔을 검색하면 요코하마의 산케이엔이 나오는데 가운데 한자가 경치 경 자가 아닌 시내 계 자를 쓰는 것이 다르다. 요코하마의 산케이엔이 먼저 나올 법도 한 게 나름 역사가 100년 이상 된 정원이고 문화재도 다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히로시마의 산케이엔은 히로시마공항을 개항한 것을 기념하며 만들어졌다고 하니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의외로 엄청난 넓이에 수많은 꽃나무들과 호수가 멋져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의 오픈시간에 맞춰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 정원의 절반도 채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을 정도다.
내가 히로시마에 갔던 6월에 산케이엔에는 수국이 잔뜩 피어있었다. 그 외에 이름을 잘 모르는 꽃들도 잔뜩이었다. 꽃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멋진 정원에 둥글둥글하게 뭉쳐 피어오르는 하얗고 파란 수국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점점 나이들어가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더니 믿을 수 없었지만 직접 체험하는 중인 듯하다. 비행기 시간이 점차 다가오는데 멀찌감치 멋들어진 다리가 보였다. 가보고 싶지만 갈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기에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히로시마에도 다시 올 이유 하나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그때 그거 못 봤잖아, 그니까 가야지. 하면서.
야속한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비행기에 앉아있자 몸이 두둥실 하고 떠올랐다. 발 아래 까마득히 올 때 펼쳐졌던 풍경이 역재생되고 있었다. 히로시마에 오기 전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도시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다녀온 후에는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 활기찬 도심에는 노면전차 히로덴이 돌아다니고 있다. 일본삼경이라는 이츠쿠시마 신사의 풍경 속에는 바다에 잠긴 도리이가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토끼가 아주 많고 사람을 겁내지 않아 하는 섬이 있다. 독가스를 생산하던 시설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노미치에는 쇼와시대(6~70년대)의 정취가 남아있었다. 조선시대 통신사가 묵었던 시설과 그 흔적이 남아있는 토모노우라라는 곳도 있었다. 교토의 분위기에 필적할 만큼 옛 거리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직접 마주한 풍경들로 말미암아 비로소 히로시마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인기가 좀 떨어지는 도시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참 인기 있는 희한한 도시다.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용기 내어 다녀온 덕분에 재미난 곳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가라고 권유하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2018년에 여행을 다녀오고 이상하게 여행기가 쓰기 싫어 질질 끌던 것이 2024년 5월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고 있다. 앞의 3일 차 정도는 제때 써서 여행의 디테일이 살아있지만 후의 2일 정도를 계속 미루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이 생각나지 않아 자료를 찾으며 상세한 부분을 떠올리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다행히 여행을 다녀오고 간이로 써둔 사진 소개 게시물이 있어서 어떤 곳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다시금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여행기가 있으면 언제든 그 도시가 그리울 때 다시 여행을 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앞으로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빠르게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반성을 해본다. 이상 2018년 히로시마 여행기를 마친다. 히로시마를 갑자기 방문하고 싶을 때 이 글을 다시 읽으러 돌아와야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