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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즈오카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2일차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6. 11. 16. 12:00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거지


    그런거지~ 음음음 어허허~♬


    비오는 날 시작된 시즈오카 여행기 2일차 시작합니다.









    전날 미리 확인해 둔 바에 의하면 2일차 오전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라고 김국환 아저씨가 노래했다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싫다.


    물론 비가 와서 관광하기 더 좋은 곳이 있지만, 비가 오면 관광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 훨씬 많이 있기 때문이다. 


    2일차 일정은 후지산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날이 맑을 때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구름낀 날 후지산 근처에 갔다가 아무것도 못보고 오면 그렇게 억울한 일도 없을 터. 


    과감하게 2일차 일정과 3일차 일정을 교체했다. 





    <원래 2일차 일정>





    <원래 3일차 일정->2일차 일정으로 결정>




    여행지에선 이동시간 뿐만 아니라 입장시간을 잘 고려해야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아침 8시에 시미즈항에서 스루가만 페리를 탑승해서 슈젠지를 넉넉하게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 시각에 기차를 타러 숙소를 나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시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람 없는 거리를 거닐고 있자니


    시즈오카가 얼마나 조용한 곳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오죽하면 시즈오카(정강靜岡)의 한자 풀이가 '고요한 언덕'일까.





    <비오는 새벽의 카케가와 역>





    <카케가와 역>




    기차를 한 시간 정도 타고 있자니 시미즈역에 도착해 있었다.


    의외로 아침에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학교에 가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인파를 뚫고 내리는데 애도 좀 먹었다.


    고요하던 카케가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인 것이 아무래도 시즈오카현 가생이에 붙어있는 카케가와보다는 중심지쪽에 사람이 많은게 당연한 듯도 싶다. 


    스루가만 드림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는 7시 30분에 있어서 한 30분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사단이 났다.


    내 예상보다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다.


    전날 덥다고 얇은 린넨 셔츠를 팔까지 걷어붙이고 다녔던 것만 생각했는데 2일차 아침의 날씨는 사뭇 달랐다.


    30분이나 오들오들 떨고 있느니 차라리 근처에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시켜먹자는 생각으로 역 앞의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왠 아저씨 한 분이 아침부터 엄청난 양의 세트메뉴를 시킨 나머지 대기시간이 15분이나 걸렸다는 점이었다.


    30분까지 버스를 타러 가야하는데 벌써 15분이나 지나버려서 내가 주문한 모닝세트를 먹을 시간이 빠듯했다.


    뜨끈한 커피를 생각하고 갔다가 여유있게 마실 시간은 안될 것 같아서 음료도 결국 원샷 가능한 차가운 쥬스를 사고 말았다. 


    2층으로 올라가서 걸신들린듯이(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급해서) 머핀 세트를 입에 구겨넣고 다시 역 반대편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바람은 차고 뱃속도 차고 음식은 요동치고 순식간에 긴박한 아침이 되고 말았다.





    <시미즈역>





    <페리 셔틀 버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셔틀버스에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배도 나 혼자 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 (혹은 기대감) 같은 것도 생겼다.


    시미즈항을 살짝 돌아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선착장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매표소에서 후지산-시즈오카 관광티켓을 제시하니 별 다른 절차 없이 바로 탑승권을 준다.


    탑승권이래봤자 둥글넙적한 플라스틱에 번호를 새겨놓은 회수권이 다였다.


    '생각보다 허술하군'이란 생각을 하며 배를 타러 가려 하니 셔틀버스를 운전해주신 아저씨가 조금 있다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차가 먼저 들어간 다음에 사람이 입장하는 모양이었다.


    차 없이 온 사람은 나 혼자였던 모양이고 말이다.




    잠시 뒤에 배에 탑승하니 사람이 이미 10여명 정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배가 제법 넓은데 밖이 잘 보이는 자리는 한정적이라서 그곳을 선점당한 것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졌다. 


    뚜벅이의 조망권도 보장하라! 보장하라!





    <페리 선착장 대기실>





    <페리 선착장 매표소>





    <시즈오카현 캐릭터 후지삐>





    <드림 페리 후지호 - 셔틀버스>




    바다가 잔잔해서인지 배가 넉넉해서인지 흔들림 없는 항해가 계속 되었다.


    500엔을 추가로 내면 전망 좋은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데 어차피 실내에서 가만히 있을 성격이 못되어 표를 구매하지는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으면 사진을 원하는대로 찍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다.




    배 뒤켠으로 나가보니 타코야키 아저씨가 열심히 장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승객도 별로 없는 이 시점에 판매를 할 생각은 못하시는지 내가 지나다녀도 연신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아니면 내가 뭘 사먹을 것 처럼 보이는 행색이 아니었는지도.)


    뒤쪽 갑판을 통해 위로 올라가니 배의 엔진 배기실이 양쪽으로 솟아있어 귀청을 때려댔다.


    그래도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바닷바람도 귀를 때려대고 파도가 부서져 안개비처럼 내리는 그 속에서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흥이 솟구쳤다.


    마구 웃으며 환호를 질러도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 없는 그 곳에서 나는 잠시 미쳐있었던 것 같다.


    디카프리오와 닮은 구석은 없지만 그가 타이타닉에서 소리지르던 마음은 이해가 간다. 


    가끔 먼 곳에서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보진 못한 채로 배는 도이항에 들어섰다. 





    <시미즈항 풍경>





    <스루가만>





    <스루가만>





    <스루가만 드림페리>





    <스루가만 기러기>





    <스루가만 기러기>





    <후지시 공업지대>




    사실 배를 타고 가면서 10여명밖에 안되는 승객을 보며 '이래도 배가 운영이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까 보았던 타코야키 아저씨와 배 안 매점의 언니들의 생계도 포함된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 걱정은 목적지인 도이항에 도착할 때 즈음 해서 모두 해소되었다.


    도이항에서 시미즈로 가려는 관광버스와 차들이 입구까지 빼곡히 들어서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생계 걱정할 시간에 내 생계를 걱정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즈반도 도이항>




    도이항은 항구라고 하기에도 아주 소박한 작달막한 곳이었다.


    배가 닿을 접안시설도 내가 본 바로는 하나밖에 없었고, 대기실의 크기도 시미즈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전형적인 바닷가 시골마을의 풍경으로 하늘에서 매 한마리가 날아다니는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매사냥을 즐겨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주변에 매가 많은 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도 시즈오카에서는 매를 여러번 보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근데 자꾸 내 머리위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지방이 많아서 맛이 없단다...





    <도이항 매>





    <도이항 자주달개비 꽃>




    시즈오카현 동쪽에 자리잡은 이즈반도는 구글 지도로 보아도 거의 산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풍광은 좋지만 무언가 발전하기는 쉽지 않아보이는 곳인데, 의외로 이곳이 한때 상업적으로 흥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를 따라가 보면 금광 이야기가 나온다. 




    1370년경부터 도이금광의 채굴이 시작되었는데, 당시엔 기술이나 규모가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 들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즈반도의 금광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금화(오반(접시만한 금화), 코반(동전만한 금화))를 유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채굴자들이 모여들고, 금화 유통을 위한 상인들이 모여들며 도이항 주변에 유곽과 상업지구가 형성되었다.


    당시엔 점포가 천개도 넘어 '도이천간-도이에 있는 천개의 상점'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광업으로 발전일로에 있던 도이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맞닥들이게 된다.


    지층에서 온천이 스며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깊게 파내려갈수록 산소부족 현상도 점차 심해져 광부가 죽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점차 생산성이 떨어져갔다.


    자연스럽게 주변 상권도 말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1906년 들어 새로운 기술로 다시 채산성을 검토해본 결과 이용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1917년 다시 채광에 들어간 도이금광은 1965년까지 50여년간 다시 현역 금광이 되었다.


    도이금광에서 생산된 금의 양은 40톤, 은은 400톤 정도로 추정된다. (2015년 기준 한국 금 보유량이 104톤이다.)


    엄청난 양의 금을 뽑아낸 도이금광은 65년에 다시 한번 사망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이 도이금광은 참 명줄도 끈질긴 것이, 1972년에 도이 마린 관광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갱도 정비 후 관광코스로 재개장하게 되었다.


    운명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산은 딱히 구경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 도이금광에서 사금채취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하여 한 번 들러보았다.


    아, 광산 코스에 250kg짜리 세계 최대 금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좀 보고 싶긴 했다.


    기네스에 올라있다는 그 금괴의 현재 가치는 약 100억원 정도라고 하니, 나같은 사람은 심장 떨려서 보관도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거 하나 보자고 입장료를 또 지불하기가 억울해서 사금만 뽑아가기로 했다. 





    <도이긴잔-도이금광>





    <도이킨잔>





    <도이금광 토산물 판매점 간판>





    <도이금광 토산물 판매점 간판>





    <금광 너구리>




    금광 건물 앞에는 너구리 한 마리가 두 팔 벌려 손님을 환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동물로 고양이, 여우, 그리고 너구리를 든다고 한다.


    여우가 주로 여자로 변신하는것에 반해 너구리는 남자로 변신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그런데 본래 너구리는 금의 정령으로 인식되기도 했다고 하여 이 금광에서도 마스코트로 삼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손에는 금주머니, 다른 한 손에는 사금을 채취할 바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금괴>




    넓은 주차장을 지나 2층 건물에 들어서니 각종 토산품과 기념품들이 즐비했다.


    특히 금광의 특징을 살려서 금괴모양으로 만든 초콜릿과 양갱이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한 점원이 양갱을 먹어보라며 이쑤시개에 꽃아 건넸다.


    노랗고 투명한 양갱을 입에 넣으니 향긋하고 새콤한 유자향이 달달하게 입안에서 퍼져갔다.


    '오 맛이 제법 괜찮은데?'하며 지나가려던 찰나 어느새 녹차까지 한 잔 따라서 쟁반에 올려 건네는 것이 아닌가.


    녹차 안에는 금가루가 반짝이고 있어 영양소의 문제를 떠나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맛은 뭐 흔한 녹차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금가루 들어간 음식을 두개나 먹고도 그냥 지나치기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도 할 겸 물건도 팔아줄 겸 해서 250g짜리 금괴모양 유자양갱 하나를 샀다.


    사고보니 상술에 넘어간 셈이지만, 그래도 기분나쁘지 않은 상술이라 참 괜찮았다.


    이 금괴양갱은 나중에 한 번 더 언급할 일이 있지만 여기선 우선 넘어가도록 해야겠다.





    <금가루 녹차>




    도이항에서 도이금광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한 10분~15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귀찮을 수 있는 이 거리를 꾸역꾸역 걸어온 것은 바로 사금체험을 해보고싶어서였다. 


    보통 금광이 있는 지역 주변의 개천에서는 사금이 나오게 마련이므로,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입장을 했다. 




    매점 뒤쪽에 위치한 사금체험장에 들어서니 다섯줄로 길게 테이블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 가운데로 물이 차 있고, 바닥에는 모래가 가라앉아 있었다.


    벌써 도착한 몇몇 사람들은 연신 물 속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티켓을 구입하자 한 분이 나를 이끌고 자리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바가지를 이리저리 흔드는 시범을 보여주며 30분간 사금을 채취할 수 있다고 했다.




    사금을 캐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투명하고 길쭉한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가 주어지는데, 그 곳에 물을 채워넣고 옆에 둔다.


    바가지에 모래를 퍼담은 뒤 운전대를 돌리듯 좌우로 빙글빙글 돌려준다.


    바가지를 바깥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원을 그려주며 윗 모래를 흘려보낸다.


    그리고 남은 모래를 다시 운전대 돌리듯 좌우로 빙글빙글 돌려준다.


    그 과정을 반복하여 모래가 얼마 남지 않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바가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금가루가 보이면 마른 손가락을 갖다 대 부착시키고, 앞서 물을 담아놓은 통의 물에 다시 갖다 대면 금가루가 또로록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손가락이 젖어있다면 테이블의 말라있는 곳에 쓱쓱 문대 물기를 없애면 된다.)




    결국 금과 다른 돌덩이들과의 비중 차이를 이용하여 밀도가 높은 금가루를 바닥쪽으로 이동시키고 가벼운 돌덩이를 계속 제거하는 방법이다.


    금은 진짜 사금은 아니고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만들어진 금을 뿌려놓는 듯 했다.


    자리를 옮기면 안된다고 신신 당부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번 쓸고 지나간 자리는 다시 채취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제한시간을 30분이 아니라 1시간을 주더라도 있는 금을 다 껀지면 더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금의 마력이란 참 무서운 것이, 처음에는 사금 채취하는 경험 자체에 관심을 두었었는데, 점차 더 많은 사금을 얻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있었다.


    머리를 마구 굴려가며 최대한 사금이 잘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모래는 한 곳만 퍼담는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넓은 면적의 모래를 다 걸러내보아야 한다는 둥, 


    금의 비중이 커서 모래 중에서도 바닥층에 금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곳의 모래를 퍼담아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의 끝에 스무개 정도의 금 알갱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30개를 찾으면 인증서를 준다고 하는데 그건 좀 아쉬웠지만, 능력보다는 운이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사금체험>





    <사금체험장>





    <사금체험장>





    <사금체험 완료>





    <도이항 주변>




    도이에서의 해보고 싶었던 것은 사금체험이 전부였기 때문에 곧바로 슈젠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금체험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되지 않아서 슈젠지행 버스 시간을 두 개 뽑아놨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나서 앞쪽 버스를 탑승할 수 있었다.


    슈젠지에서 구경할 시간이 넉넉하게 한 시간 정도 늘어난 것이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가진 패스를 이용해서 슈젠지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도이항-슈젠지역 버스를 이용한 뒤에 슈젠지역-슈젠지온천 버스를 타야 했다.


    첫 코스는 괜찮았는데 두 번째 코스에서 기사분이 내가 가진 패스를 못알아보시는게 아닌가?


    안내문을 보여드려도 도통 딴 소리만 하시는 것 같아서 차비를 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같이 타고 계시던 영어를 잘 하시던


    한 일본 어르신께서 도움을 주셔서 해결할 수 있었다. 


    패스가 JR에서 발매한 것이라는 점이 포인트였던 것 같으니 혹여 이 글을 보고 놀러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부분을 어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제이아루!!)




    슈젠지는 이즈반도 중앙에 위치한 절로 그 유래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홍법대사(고보대사)가 이 곳을 지나다가 병든 아버지의 몸을 씻기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찬물에서 고생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안쓰럽기도 하고 감동도 받아서 지팡이로 바위를 내려쳐 온천수가 솟아나오게 했다고 한다.


    슈젠지 앞 개울의 중앙의 온천수가 바로 이 석장(돗코)으로 내려쳐 나오게 되었다고 하여 '돗코노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이후 이 부근에 절을 세우고 부처를 모시게 된 것이 슈젠지의 유래라고 한다.




    슈젠지는 '슈젠지 모노가타리'라는 가부키극의 배경이기도 하다. 


    '오카모토 키도'의 작품인 이 이야기는 가마쿠라막부 2대 쇼군인 미나모토 요리이에가 이 슈젠지에 유폐 후 암살되었던 것을 소재로 삼고있다.




    쇼군 요리이에는 외척인 호조씨에 의해 축출되어 슈젠지에 유폐되어있었는데, 이 곳에는 가면만드는 장인 '야사오'가 있었다.


    요리이에는 야사오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어달라 부탁했으나 야사오가 만드는 가면은 족족 죽은이의 얼굴형상만을 하고 있었다고.


    요리이에는 기다리다 못해 야사오를 직접 찾아가 가면을 본 후 크게 만족했다고 하는데, 야사오는 아직 미완성이라며 기다려달라고 거듭 당부한다.


    야사오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작은 딸인 카에데는 평범한 삶을 꿈꾸는 사람으로 야사오의 제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지만


    큰 딸인 카츠라는 자존심이 세고 신분 상승의 야심이 있던 터라, 미완성의 가면을 들고 요리이에에게 가져다 바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요리이에의 눈에 들어 그의 측실이 된다.


    그러던 중 호조가에서 보낸 암살자가 나타나자 카츠라는 요리이에의 가면을 쓰고 요리이에인 척 암살자를 막아선다.


    결국 부질없이 요리이에도 사망하게 되고, 카츠라도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입게 되어 아버지가 있는 본가에 돌아온다.


    가면에 미쳐있던 야사오는 자신이 가면을 잘못 만든 것이 아니라 요리이에의 죽음을 예견한 것이라 즐거워하며, 


    죽어가는 딸의 표정을 가면으로 남기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요리이에가 유폐되었던 것과 슈젠지에 있던 가면을 소재로 삼은 가부키극으로, 슈젠지 옆의 조그만 박물관에 실제 그 가면이 전시되어있다.


    나는 사진으로만 가면을 보았는데 과연 죽음을 떠올릴만한 섬뜩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슈젠지 온천 주변에는 요리이에의 무덤 뿐 아니라 요리이에를 끝까지 따르다 죽은 13 무사의 무덤도 있다. 


    그리고 개천을 건너는 두개의 붉은 아치형 다리에는 야사오의 두 딸인 카츠라, 카에데의 이름이 붙어있다고 한다. 


    곳곳에 슈젠지 모노가타리의 잔향이 묻어나오는 듯 하다. 




    소설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춤소녀'라는 작품도 이 슈젠지와 관련이 있다고 하며


    또 다른 일본의 유명 문학가 '나츠메 소세키'는 이 슈젠지 온천에서 요양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문학과 많은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느낌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나도 많은 영감을 받아가 보기로 했다.





    <슈젠지>





    <슈젠지>




    슈젠지에서는 오미쿠지(운세종이)를 하나 뽑아보기로 미리부터 계획해두었었는데, 이유인 즉슨 간단하다.


    이곳 오미쿠지 중에는 마네키네코(일본 복고양이)가 나오는 것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갖고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점괘에 흉이나 대흉이 나온다면 여행 내내 찜찜할 것 같다는 점이 유일한 불안감이었는데, 다행이도 소길이 나왔다.


    남들은 한 번씩은 나온다는 대길을 한 번도 뽑아본 적이 없어 참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흉 아닌게 어딘가.






    <슈젠지 견공>





    <슈젠지 청등>





    <슈젠지 계곡>





    <슈젠지 온천 - 돗코노유>




    슈젠지는 '작은 교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일본의 옛 정취가 잘 남아있는 곳이다.


    일본 특유의 열심히 꾸며진 정원같은 길목들을 걷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내려온 것 같은 단풍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지 않았던 점도 참 좋았다.


    아마 본격적인 단풍시즌이 되는 11월 중순에서 말께에 이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가로이 산책을 하며 죽림도 보고 가게에 들어가 기념품을 살까말까 고민도 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미시마로 가기 위해 다시 슈젠지역으로 가서 이즈하코네철도를 탔다. 





    <슈젠지 하나코미치>





    <슈젠지 산책로>





    <슈젠지 단풍>





    <슈젠지 죽림(치쿠린노 코미치)>





    <슈젠지 단풍>





    <이즈-하코네 철도>




    이즈 하코네 철도는 이즈반도와 하코네를 연결하는 JR의 철도이다.


    운행을 시작한지는 좀 된 것 같다는 느낌인 것이, 철도가 어찌나 흔들리던지 그냥 앉아있을 뿐인데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흔들 거렸다.


    심리학의 인지부조화 이론에서 웃으면 즐거워진다고 하더니, 엉덩이가 흔들흔들거리자 춤을 춘 것처럼 신명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친 듯, 미시마 타마치역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깜빡 졸다가 종점인 미시마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에겐 절대패스인 후지산-시즈오카 관광패스가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방향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왔다.




    굳이 두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온 이유는 사실 가챠폰(동전 넣고 돌려서 뽑는 장난감 뽑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즈오카에서 유일하게 실망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건프라의 도시라고 해서 크게 기대했거늘, 장난감 판매점이나 가챠폰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미시마 타마치역 부근의 이토요카도라고 하는 쇼핑몰에 가챠폰이 모여있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었는데, 그 곳에도 종류가 별로 없어서 참 섭섭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것들은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4,000엔이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뽑기를 뽑아댔다.


    밥먹으면서 100엔 200엔을 아끼다가 이런데서 4,000엔씩 되는 돈을 몰빵하는 걸 보면 나도 참 나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찌 아니 뽑을 수 있단 말인가. 가챠폰>




    쇼핑몰에서 잠시 광란의 뽑기를 한 뒤 곧바로 미시마 타이샤를 향해 걸어갔다.


    이날은 JR이 다니는 굵직굵직한 도시가 아닌 작은 소도시들의 풍경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확실히 노령인구가 많았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는 것이 의식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솔직한 말로 활력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사회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그 풍경이 우리 미래의 모습인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싶은 나라가 되어야 할텐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갈길이 멀구나 하는 한숨도 내쉬어보면서. 





    <미시마 신호등>




    천천히 걷다 보니 미시마타이샤에 도착했다. 


    '타이샤'는 커다란 신사를 의미한다.


    예전에 교토에서 만났던 '후시미이나리타이샤'가 커다란 신사였던 것을 떠올렸다. 


    이 미시마 신사는 코토시로누시 라는 신을 모신다고 하는데, 이 신의 또 다른 이름은 '에비스'이다.


    나는 '바라카몬'이라는 만화에서 이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낚시를 할 때 참돔을 잡게 해달라는 주문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어업과 번영의 신이라고 한다.


    복을 주는 일본의 칠복신 중 하나로 한 손엔 낚시대를, 한 손엔 커다란 참돔을 안고 있는 것이 특징.


    맥주 좀 드셨다는 분이라면 에비스 맥주를 알고 계실텐데, 거기에 마스코트가 위에 언급한 에비스다.





    <미시마 타이샤>




    전체적으로는 공간이 넓은 편이고 사슴우리와 박물관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곳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역 주민들이 설날에 바글거리며 찾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 보았던 센겐신사처럼 금박 장식이 많이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아무래도 도쿠가와 쇼군의 근거지에 있었던 만큼 이런저런 지원을 많이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선 매년 11월 15일에 시치고산(7.5.3)이라고 하여 여자 아이가 3세, 7세, 남자아이가 3세 5세가 되는 해에 


    이때까지의 생존을 기념하며 신사나 절을 찾아 조상에 감사인사를 올리고 축복을 받는 행사를 한다.


    중세시대엔 유아사망률이 높아서 이런 나이에 도달할때까지 살아있는 것이 조상의 은덕이라 여기곤 했다고.


    커다란 행사인 만큼 보름이나 남은 시점에도 곳곳에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때는 아이들에게 기모노나 정장을 입히는 것이 풍습이라고 하는데 내가 갔던 날에 벌써 기모노를 입은 아이들이 종종 보였던 것을 보면


    미리 행사를 치르는 가정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서 기모노를 입은 매우 귀여운 아이를 보게 되어 그 부모님께 사진 촬영의 허락을 얻어볼까 했는데


    아버지의 올빽머리와 굵은 콧수염에서 알 수 없는 야쿠자의 향기를 느껴서 참아보았다.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리라. 


    남의 사진 찍다가 내 영정사진을 찍을 순 없지 않은가.





    <미시마 타이샤>





    <미시마 타이샤>





    <미시마 타이샤>





    <미시마 시청>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구경한 곳은 라쿠쥬엔이라는 곳이었다.


    미시마역 바로 앞에 있는 곳인데, 나는 벌써 기차로 두 정거장 전부터 계속 걸어다니고 있는 중으로, 


    발바닥에 불이났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것 같았다. 


    카메라가 들어있는 백팩 무게만도 10kg에 가깝기 때문에 오랜 걸음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라쿠쥬엔이야 어차피 가는 길목에 있고, 공원을 가로지르면 목적지인 미시마역에 도착하게 되니까 겸사겸사 보자는 생각이었다.


    5시에 관람 종료인데 4시가 넘어서 도착했기 때문에 잰 걸음으로 구경을 했지만, 사실 열심히 볼 만한 것이 없기도 했다.


    울창한 숲과 소소한 동물원, 공원 내부를 도는 아동용 열차가 전부였다.


    하나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공원 내의 코하마 연못과 그 옆에 있는 라쿠쥬칸이라는 옛 별장건물이었는데


    예상보다 물이 많이 빠져있어서 볼품이 없었던 것이 치명타였다.




    코하마 연못은 후지산에서 흘러내려와 이곳에서 용출되는데 계절에 따라 유량이 달라 연못의 수위가 달라진다고 한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10월경에 수위가 괜찮은 편이라 물에 반사된 별장을 볼 수 있을터였는데 실제로 도착하고 보니 많이 황량해 아쉬움이 남았다.


    주변 시가지 개발로 지하수의 흐름이 달라져 유량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최근에 후쿠오카 하카타역 앞의 싱크홀 사건이 머리속에 슬쩍 떠올랐다.


    그래도 지반 자체가 약 1만년 전의 미시마 용암 분출로 생긴 것이라 특이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어 이정도 구경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라쿠쥬칸이라는 별장건물은 코마츠노미야 아키히토 친왕이라는 왕자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그의 사후에 이 건물을 받은 사람이 '의민태자'다.


    의민태자가 누군고 하면 바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다.


    그가 이 곳에 머무는 동안의 이름은 '창덕궁'이었다고 전해진다.


    나라를 잃은 왕족의 시름을 이 곳에서 달랬을 생각을 하면 일견 가슴이 아파오면서도 망국에의 책임을 물어보고 싶은 씁쓸한 마음도 생긴다. 





    <라쿠쥬엔>





    <라쿠쥬엔 치비마루코>




    락쿠쥬엔의 관람을 마치고 반대쪽 문으로 나오니 곧이어 미시마역이 보였다.


    오후 5시 정도 되어서 미시마 스카이워크 정도는 구경할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흐린 하늘에 어둠까지 내리기 시작하고 있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날도 열심히 걸어다닌 관계로 스마트폰의 헬스모드에선 27,000걸음 정도를 걸었다고도 알려오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 뜨끈한 대욕장에서 몸을 녹이고 우유 한 병을 마시는 것도 관광의 일환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신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시즈오카에 잠시 들러 한국에 가져갈 먹거리나 소소하게 쇼핑해두자고 생각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다들 핸드폰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띵똥거리는 보행자 신호음 속에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을 따라서 하늘을 보니 왠 새가 떼로 날아다니며 덩어리져 있었다.


    두개로 분리되었다가 합쳐졌다가 하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부딫치는 새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직 참여하지 않은 엄청난 수의 새들이 나무에도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예전에 1박2일이라는 TV프로에서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여준 적이 있어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오리는 아니고 참새같은 새들이었지만 말이다. 





    <미시마역 새떼>



    신기한 구경을 뒤로 하고 시즈오카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3일차의 일정은 늦은 시간까지 빡빡한 상태였고, 4일차에는 귀국하느라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여유가 있는 이날 미리 쇼핑을 좀 해놓을 요량이었다.


    가장 먼저는 팬시들이 가득한 도큐한즈라는 곳에 가서 선물을 좀 주섬주섬 챙겼다.


    한국에서 도움받은 분들이 있어 뭘 좀 보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이라 저렴하면서도 있어보이는 것을 찾느라 다리가 점점 아파오긴 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마지막 날 조금만 더 챙겨서 보내드리면 딱 흡족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마지막 날 재미난 일이 생겨서 쇼핑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4일차 여행기에서 말해보겠다.




    다음엔 도큐한즈를 나와 돈키호테로 갔다.


    온갖 잡화와 식료품이 가득한, 원룸인인 내게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쇼핑이래봤자 내가 좋아하는 닛신 컵라면이나 곤약젤리(콘냐쿠바타케), 호로요이 몇 캔을 산게 다였다.


    그래도 양 손 무겁게 비닐봉다리를 들고 호텔로 향하고 있자니 겨울나기를 위해 식량을 쌓아놓는 개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시즈오카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의 복장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마녀 복장을 한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걷고 있었고, 얼굴에 피칠갑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했으며


    고양이 분장을 한 이쁘장한 아가씨가 꼬리를 흔들흔들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본은 그 특유의 문화 흡수력으로 어느새 할로윈을 받아들인 자기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두 손 무거운 쇼핑봉투가 내 삶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던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빼니 노곤노곤한것이 참 좋았다.


    앞으로 숙소는 대욕장이 있거나, 최소한 욕조라도 있는 곳을 찾아야 할 모양이다.


    이리 좋은것을 왜 전엔 몰랐던가 싶다.


    여행이 짧긴 했던 것 같다.


    벌써 계획의 반이 지나버리다니.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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