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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즈오카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3일차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6. 11. 25. 00:17

    파란하늘 파란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3일차 여정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푸릇푸릇했다.


    역시 2일차와 3일차 일정을 바꿔서 진행한 것이 주효한 것 같았다. 


    숙소였던 카케가와 도미인을 예약할 때 옵션에 '최대한 고층으로'라고 남겨놨더니 13층 건물에서 11층에 방을 받을 수 있었다.


    13층에 있는 대욕장으로 가기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풍경이다.


    침대에서 커텐을 걷으면 창 밖으로 펼쳐지는 카케가와의 풍경이 펼쳐지고, 그 중에서도 볼록 솟아오른 카케가와성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아침저녁으로 여행의 시작과 도착을 반겨주는 듯도 하다.




    사실 이 일정을 짜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부분은, 후지산에 올라가는 길에 시라이토 폭포라는 곳을 보고 싶은데


    도무지 버스 시간이 맞아 떨어지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고민고민 끝에 시라이토 폭포를 포기하고 남는 오전 시간에 하마마쓰쪽을 관람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2일차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정을 정리하면서 아무래도 폭포가 포기가 되지 않았다.


    폭포 좋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몸인데 비싼 일본 택시를 타서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전엔 숙소 근처에 있는 카케가와 성만 살짝 둘러본 후 곧바로 폭포로 출발하기로 했다. 





    <2일차에서 넘어온 3일차 일정>





    <숙소 내 방에서 본 카케가와 시내>





    <카케가와 성>




    카케가와성은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닿는 곳에 있었다.


    이 성의 유래를 살펴보면 역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15세기 말, 이마가와 요시타다(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부)의 부하인 아사히나 야스히로에 의해 축성된 이 성은 시즈오카시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교토로 상경하려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오다 노부나가가 격침시킨 뒤, 이마가와의 영역은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눠갖게 된다. 


    이때 카케가와 성은 도쿠가와에 잠시 소속되지만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후 그의 부하에 넘어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지면서 다시 도쿠가와 세력에 돌아오게 되는 전국 시대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카케가와 성>




    이른 아침의 성은 아직 직원들도 출근하지 않은 한적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적지나 절 등을 이른 시간에 돌아보기를 즐겨 하는 편인데, 그 특유의 고즈넉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넓은 유적과 공원이 모두 나를 위해 정갈하게 준비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있다고나 할까.





    <카케가와 성>





    <카케가와 성>





    <니노마루 미술관, 스테인드 글라스 미술관>





    <카케가와 성 모형도>




    해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연못을 지나면 카케가와 성으로 오르는 계단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계단은 제법 높은 편이었는데 다 올라가고 보니 주변이 훤히 내다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오사카성과 같은 커다란 성에는 비할바 못하지만 아기자기한 맛과 고즈넉한 맛으로는 최고였다고 하고 싶다. 




    오전 9시부터 성 관람이 가능했는데 주변을 돌고 있자니 입장시간까지 기다려 건물에 올라가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들어가 보고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폭포를 향한 나의 마음은 무조건 무조건이었으니까.


    약간의 아쉬움은 다음번의 여행을 기약하는 것이라고도 했지 않은가.




    역으로 가는 길에 카케가와성의 정문(오오테몬)이 있어 잠시 들러보았다.


    성에서 거리가 좀 되는 곳에 있는걸로 보아서 예전의 전체 성의 크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기둥 하나가 사람을 압도하는 모습은 일본 성 특유의 모습들이다.


    벽 옆에 아침부터 늘어져 있는 고양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후지산을 보러 역으로 향했다.





    <카카게와 성 정문>




    카케가와역에서 JR을 탑승하고 출발한 뒤 약 한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오키츠라는 곳이었다.


    목적지는 아니고 후지역에 가기 위해서 탄 열차의 종점이었다.


    우리나라 1호선으로 치면 종점은 소요산이지만 청량리행 열차가 더 많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잠시 열차를 기다리려 플랫폼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피어올랐다.


    '쨍한 후지산 보는게 쉬운게 아니라고 하던데, 이 정도 날씨면 아주 UHD로 보고 오겠는데?'하는 생각이었다.


    이래보여도 화창한 독도도 다녀와봤고 한라산 백록담도 쨍하게 봤던 사람이다.


    날씨운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오키츠역>





    <오키츠역>




    다행히 후지역으로 가는 기차가 금방 도착해서 또 얼마간 달리고 나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 곳에서 후지노미야역으로 가는 미노부선으로 갈아탔다.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동네 주민들로 보였다.


    남들 일할 때 노는게 가장 꿀맛이라는 악마같은 신조가 있는 나로써는 아주 좋은 현상이었다.


    물론 남들 놀 때 일하는게 죽을맛이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창 밖으로 언듯언듯 후지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턱이 두툼한 구름에 가려있어 눈 덮힌 희끗희끗한 정상만 보이다 말다 하는 상황이었다.


    구름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아서는 금새 걷힐 것 같기도 한데, 날씨는 또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속으로 후지산의 여신이라던 고노하나노 사쿠야히메한테 부탁했다.


    '얼굴 좀 봬 주라.'




    후지노미야에서 최종 목적지인 카와구치 호수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네번 뿐.


    그것도 오후 2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마지막 버스였다.


    내가 후지노미야에 도착한 시각이 약 11시 정도였는데 12시 20분 차를 타고 올라가 시라이토 폭포를 2시간 정도 구경하고


    14시 20분 차를 타고 가와구치 호수로 올라가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행히 택시까지 탈 일은 아닌 듯 하여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당시 예상 택시비 약 3,000엔)




    역 밖으로 나가보니 마침 후지노미야역에는 관광 안내소가 있어서 버스 시간표를 물어볼 수 있었다.


    12시 20분에 여기서 출발하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는지 여쭤보고, 마지막으로 혹시 지금 바로 가는 버스는 없는지도 물어봤는데


    3분 뒤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후지노미야 동네에서 이용하는 후지큐코 버스였는데 2번 플랫폼에 지금 정차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가방을 들춰메고 냅다 뛰기 시작하는데 안내원분이 밖으로 나와서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길을 가르쳐주며 '간바레'를 외쳤다.


    여행의 묘미는 가끔 멋진 풍광보다도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40여분을 달려 시라이토 폭포 정류장에 하차했다.


    방송을 잘 못듣기는 했는데 뭔가 동네 주민들과는 복색부터 다른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예전부터의 지론이다. 


    사람들이 왕창 내리는 곳은 관광객인 내 목적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시라이토 폭포 입구>




    나는 버킷리스트에 '세계 3대 폭포 보기', '앙헬폭포 보기' 등을 써 놓은 이른바 폭포 매니아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스쿠터투어를 하던 시절에는 덮어놓고 폭포만 구경하러 다녔던 기억도 있다.


    그런 내가 시라이토 폭포를 포기하려 했을 때는 정말 내장을 끊어내는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을 결국 이렇게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니 물 흐르는 속도가 심상치 않은 계곡이 나타났다.


    넓은 주차장을 옆으로 끼고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걷고 있자니 어디선가 철철철 소리가 난다.


    물이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계곡쪽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 폭포가 있었다.





    <오토도메 폭포 상류>




    사실 폭포라고 하는 것이 유량의 영향을 받는 곳들도 있고 해서 비가 안오면 쫄쫄쫄 흐르기도 한다.


    전날 오전에 내렸던 비와 그 전날 비행기에서 내릴 때 젖어있던 바닥에 기대를 걸었다.


    기왕 보는 폭포면 잔뜩 쏟아져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무판자로 만든 허술한 계단에 오르니 수풀 사이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있었다.


    오토도메 폭포였다.


    한 줄기 두툼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있자니 속이 뻥 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나 아쉬웠던 점은 탁 트인 곳에서 물이 떨어진 곳을 볼 수 있는 설비는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 이 곳의 메인이 오토도메 폭포가 아니라 시라이토 폭포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토도메 폭포>





    <오토도메 폭포>





    <오토도메폭포 동영상>




    한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치니 다시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벌써 시라이토 폭포는 그 장대한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줄기 굵직한 폭포를 시작으로 절벽을 따라 실처럼 쏟아져내리는 작은 폭포들이 만드는 광경은 참으로 신기했다.


    솔직한 말로 내가 본 많은 한국과 일본의 폭포를 통틀어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 보지 못한 폭포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 동영상>




    가까이 갈수록 입을 떡 벌리고 폭포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물이 단순히 흘러오는 것이 아니라 바위 틈에서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안내판에 의하면 상단의 바위가 부서진 틈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이라고 했다.


    때마침 하늘의 구름이 걷히면서 짙은 파랑의 향연이 펼쳐졌다.


    자리를 뜨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커다란 감동이었다.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





    <시라이토 폭포 동영상-2>




    예전에 제주도 천지연 폭포에 갔을 때도 물에 떠다니는 오리들을 신기하게 쳐다본 적이 있었다.


    상류에서 떠밀려 내려온 물고기가 기절해서 먹이가 풍부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오리들도 풍류가 있어 나처럼 폭포가 좋아 눌러 앉은 것일까?


    시라이토 폭포에서도 둥실 떠다니는 오리들이 있어 한일간 재미난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노라며 즐거워했다.





    <시라이토 폭포 오리>




    폭포 구경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올라 가게의 이것저것들을 살펴보았다.


    시즈오카의 명물 중 하나는 사쿠라에비(벚꽃새우)로 가게 곳곳에서 팔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맑은 물에서 자란다는 와사비, 나는 이름도 알 수 없었던 각종 토산품들을 구경했다.


    꼬치에 꿰어 구운 생선에서 나는 내음이 침샘을 자극했지만,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그냥 넘어간 것은 좀 아쉬웠다.


    대신 어떤 블로그에서 귤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내곤 귤 한 봉지를 사 들었다. 


    큼지막한 귤이 15개가 들어있었는데 겨우 300엔밖에 안하는 아주 훌륭한 귤이었다.


    저녁때까지 자판기 음료수 없이 갈증을 해결해준 고마운 귤이기도 했고.




    그렇게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자니 가게 앞에 한 마리 고양이가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고양이 확대범의 소행인듯한 넉넉한 살집의 고양이는 털도 가지런하니 아주 귀하게 자란 느낌이 있었다.


    강아지를 견공이라고 높여 부르듯, 이 고양이는 묘공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은 그런 포스도 느껴졌다.


    내가 사진을 찍겠다고 허둥댔던 것이 귀찮았는지 눈을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는 '별 하찮은 것을 다 보았네.'하는 표정으로 다시 졸기 시작했다.


    목에 매달린 리본과 방울, 그리고 천만냥이 새겨진 목걸이가 인상깊은, 마네키네코같은 고양이었다. 





    <시라이토 폭포 고양이>





    <시라이토 폭포 고양이>





    <시라이토 폭포 와사비>




    폭포에 도착한지 한 시간만에 다시 카와구치호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언듯언듯 후지산이 비치는데 구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늘 풍경의 최대 관건은 후지산이 잘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후지산 같이 높은 산은 공기가 타고 넘어가면서 고도에 따라 기온이 하강하다가 응결과정을 통해 구름이 생성될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편서풍이 지나가다 태백산맥을 타고 넘으며 단열팽창으로 온도 저하 현상이 발생하여 비를 뿌린 뒤


    산맥 동쪽에서는 단열 압축으로 온도가 상승하여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푄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후지산은 애초에 건조한 공기로 가득한 겨울이 아니고서는 화창한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이론의 재미난 점은 바람이 타고 넘어간 방향에서는 구름 없는 화창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론상으로 후지산 정상을 기준으로 동남쪽에서는 구름이 없어야 하는데 마침 카와구치 호수는 후지산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무슨 산 하나 보는데 이런 것까지 계산하나 싶지만 할때는 확실히 집요하게 하는 사나이니까 나는.


    (그래봤자 이게 다 비가 안내리거나 그냥 흐린날이면 아무 소용 없는 말짱 헛된 이론이라는게 문제...)





    <카와구치 호수 가는 길 - 구름에 가린 후지산>





    <카와구치 호수 가는 길 - 구름이 사라져가는 후지산>





    <구름이 벗겨진 후지산>




    말도 안되는 이론이 주효했던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산을 끼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점차 구름이 없는 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 창가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산을 보고 있자니 더이상 궁금한게 없어질 정도로 후지산은 그 모든 것을 내보여왔다. 


    역시 라면은 배고플 때 먹는 게 최고로 맛있고, 물은 목마를 때 먹는 것이 가장 시원하다.


    산은 못보나 싶게 하다가 보여줬을 때 감동도 있고 멋도 있나보다. 





    <카와구치 호수>




    카와구치 호수는 후지 5대 호수중에 2번째로 큰 호수인데 호수 변의 길이로는 가장 길다고 한다.


    해발고도는 약 800m 정도로 나머지 4개 호수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


    물이 있는 곳이 으레 그러하듯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추운 편이라고.


    후지산 등반은 7월과 8월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되는데 그 등산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 이 가와구치 호수라 시즌에는 등산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재미난 점은 이 호수에 자연 출수구가 없어서 주변 정착지에 홍수가 나는 등의 문제가 빈번했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1914년에 완공된 커널이 사가미 강으로 이어져 있어 물이 빠져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와구치 호수 출수구>




    카와구치 호수는 일찌감치 관광 인프라를 갖추고 관광지로써의 역할을 다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카치카치야마 로프웨이다.


    그리고 이 카치카치산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 동화 '딱딱산 이야기'다.




    옛날에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집에 심보 나쁜 너구리가 찾아와 


    흉작을 기원하며 노래를 부르고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등 고약한 짓을 일삼고 있었다.


    노인은 덫을 놓아 너구리를 잡는데 성공하고, 할머니에게 건네며 너구릿국을 끓이라고 한 후 밭일을 나갔다.


    그 사이 너구리가 할머니를 속여 포박을 푼 뒤 할머니를 죽이고 시체로 고깃국을 끓인다.


    그리고 너구리 자신은 할머니로 변해 할아버지에게 고깃국을 먹인 후 정체를 드러내고 할아버지를 비웃는다.



    마침 노부부와 친분이 있던 토끼가 이를 듣고 원수를 갚아주겠다 했고, 그 길로 너구리에게 가 땔감으로 돈을 벌자고 꼬신다.


    토끼는 너구리가 짊어진 장작에 부싯돌을 딱딱(카치카치)거리며 불을 붙여 큰 부상을 입히는데 성공한다.


    딱딱 소리는 뭐냐며 너구리가 물었을 때는 '딱딱산(카치카치야마)의 딱딱새가 우는 소리다.'고 속여 넘기면서 말이다.


    이후 병문안을 가 화상약이라며 겨자를 건네주며 다방면으로 처절한 복수를 하던 토끼는 마지막으로 너구리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너구리를 꼬셔 배를 만드는데, 진흙으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배를 타고 나간 뒤 토끼가 자신이 탄 나무배를 툭툭 건드리자 너구리도 흉내를 냈고,


    침몰하는 진흙배의 너구리가 떠오르려 하는 것을 토끼가 노로 강타하여 수장시키며 복수는 완성된다. 




    이런 잔혹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카치카치야마라서 로프웨이를 타고 오르는데 토끼와 너구리 캐릭터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너구리는 등에 불이 붙은 장작을 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러니함도 보였다.





    <카치카치야마 로프웨이 입구>




    카치카치야마 전망대는 1075m에 위치하고 있어 호수로부터 약 270m가량을 오르는 로프웨이가 필수다.


    왕복으로 800엔 정도인데 편도 티켓이 있는것을 보면 걸어서 다니는 길도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3분정도 타고 있으면 정상에 오르는데 넓게 펼쳐지는 카와구치 호수의 풍경을 즐기기에 적합했다.


    의외로 전망대쪽으로 넘어가면 호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므로 로프웨이에서 열심히 봐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카치카치야마 로프웨이>




    로프웨이를 종점에 도착했지만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약간 더 걸어 올라가야 했다.


    높은 곳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힘들지만 보람이 있는 일이다.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참 멋들어지기 때문이다.


    카치카치야마 전망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탁 트인 벌판에 우뚝 솟은 후지산의 모습이었다.


    일본을 상징하는 산으로 한민족에게 반감이 들게 하는 산이기도 하지만, 자연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시 경이로운 광경이긴 하다. 


    높이는 3776m, 화산으로 솟은 그 거대함, 정상에 쌓여있는 만년설 모두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후지산 실루엣>





    <후지산>





    <후지큐 하이랜드>




    전망대에는 천상의 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인들의 주술 선호적 성격을 대변하는 듯 하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세번의 종을 울려야 하는데, 한 번은 남자가, 한 번은 여자가, 마지막으로 둘이 함께 울리면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나같은(?!) 솔로를 위해서 건강기원의 종도 설정되어있는데, 자기 자신을 씻으며 한 번, 후지산을 보고 건강을 기원하며 한 번 울리면 건강해진다고.


    그런데 내가 올라가 있는 동안 저 종을 울리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아마 모두모두 솔로인가보다.





    <천상의 종 - 후지산>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카치카치야마를 내려왔을 때 시간이 애매한 상황이었다.


    4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곧 떠날 것이고 다음 버스는 6시인데 남은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것이다.


    뭔가 더 볼게 없나 싶어 구글지도를 열어보니 카와구치호수 건너편에서 후지산을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잔한 호수에 후지산이 비치는 반영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다리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는데


    생각보다 다리는 가까워지지 않고 심지어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둘레가 20km정도 되는 호수를 걸어서 돌아가겠다고 하고 있으니 쉽지 않은게 당연했다.


    그때 자전거 렌탈샵 하나가 보였다.


    그제서야 카와구치 호수를 돌아보는 자전거를 렌탈하는 곳들이 있다던 블로그의 글들이 생각났다.


    자전거를 빌려볼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여행지에선 일탈한다.'는 여행 신조에 따라 무작정 빌려보기로 했다.




    렌탈샵의 청년은 구릿빛 피부에 수염이 거칠게 난 천상 로드매니아였는데 5시에는 문을 닫는다며 그때까지라도 빌려보겠냐고 했다.


    내가 왕복 1시간 정도로 후지산을 찍을만한 포토스팟이 있냐고 물었더니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알 수 있을거라며 쿨하게 말했다.


    그 쿨함을 믿고 자전거를 빌려 달리기 시작했다.


    전동자전거가 모두 렌탈되어 인력으로 달려야 하는 점이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어릴적부터 자전거 하난 잘 타던 몸이니 괜찮았다.




    제법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흥이 났다.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 미리 세팅해둔 이니셜D 음악이 울려퍼지고, 나는 폭주하는 한 대의 86이었다. 


    Gonna get you like a space boy~ wah wah wah wah!





    <카와구치 호수 -  후지산>




    2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다리 건너편은 쿨한 청년이 말해준 대로 제법 좋은 촬영 스팟이었다.


    다리를 돌아 바로 옆을 통해 길을 내려오니 호수변에 바로 접할 수 있었다.


    좋은 장소인 줄 어찌들 알았는지 홍콩인 아줌마 단체 관광객분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친구분들과 여행을 다니면 저렇게 호호거리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쌓으시겠구나 생각했더니 괜히 정감도 갔다.


    근처에서 알짱거리고 있자니 역시나 사진을 찍어달라며 부탁을 해왔다.


    관광지에서는 큰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을 해서 사진 부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어줍잖게 아는 중국어 몇개를 주워섬기자 즐거워하며 포즈를 잡아주셨다.




    관광객들이 떠나고 홀로 남아 천천히 호수와 후지산을 프레임에 담기 시작했다. 


    넓은 호수 위로 후지산이 있어 좋은 반영을 찍을 법 했다.


    다만 생각만큼 물이 잔잔하지 않았고 광량이 많아 ND필터가 없었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중간에 낚시대를 들고 와준 청년 덕분에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나머지 멋진 풍경들은 사진으로는 남기지 못한 대신 눈 속에 가득가득 남기고 돌아왔다.





    <후지산-렌탈 자전거>





    <카와구치 호수>





    <카와구치 호수 - 후지산>





    <후지산 - 카와구치 호수 유람선>





    <후지산 - 낚시꾼>





    <후지산 반영>





    <자전거 렌탈샵>




    다시 자전거를 타고 렌탈샵에 반납을 하니 쿨한 청년이 쿨하게 받아준다.


    서류 수결이나 그런것도 없고 그냥 자전거를 밖에 세워두고 가시면 된단다.


    대한민국에서 자전거를 두 대나 도둑맞아본 사람으로써 이런 걱정없는 마인드와, 그렇게 해도 괜찮은 프리한 분위기가 조금은 부러웠다.


    나도 쿨하게 사요나라를 외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후지산역>




    후지산역으로 돌아와 후지노미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온갖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네팔 계통의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


    역사 내의 휴게실과 매점에 한가득 할 정도로 인원이 많았다.


    내가 갔던 날 특히 그쪽 관광객이 많이 몰려든 것일 수도 있는데, 현장에 있던 나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하고 


    '네팔에서 혹시 후지산도 신성시하게 여기나? 성지순례같은건가?'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매점에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지갑을 노리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이 가득했다.


    후지산모양의 사케를 들고 한참을 살까말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 들고가기 무겁고 귀찮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가 되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가 도착할때가 되었는데 도무지 버스가 오는 낌새가 없었다.


    여태까지의 여행에서 버스가 예정시각을 어긋나는 법이 한 번도 없어서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 한분도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듯 해서 약간은 덜 초조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어머님께서 많이 초조하셨던 듯 '여기가 후지노미야로 가는 버스가 오는 곳이 맞지요?'하면서 말을 걸어오셨다.


    나도 '그런 것 같은데 버스가 참 안오네요.'라며 동질감을 표시했다.


    그분은 그러다가 '후지역으로 가려면 버스를 어디서 내려야 하나요?' 하면서 나에게 길까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길을 가르쳐드리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안내로 설명을 드렸다는 점에서 내가 어느새 시즈오카를 이정도로 익숙해져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제법 긴 시간이 걸리고서야 나는 숙소가 있는 카케가와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 중 8시간 정도는 교통편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집처럼 느껴지는 숙소의 침대가 이날따라 너무나 아늑했다.


    그래도 잠들기 전에 해둬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짐정리였다.


    내일 새벽에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가려면 캐리어를 미리 정리해 두어야 체크아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캐리어에 들어갈 것과 배낭에 들어갈 것들을 구분하고 있자니 어디서 금괴 하나가 툭 떨어졌다.


    전날 도이금광에서 사둔 유자양갱이었다.


    순간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금괴를 캐리어에 넣었다간 엑스레이에 찍혀서 정체를 확인하게 되고, 짐검사에 호출되고, 비행기에 못타게 되고, 귀국이 늦어지겠지?'


    '차라리 배낭에 넣어두었다가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뜯어서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배낭에 금괴를 집어넣었다.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망상이었고, 하루종일 들고다녔던 배낭의 무게만 늘이는 결과가 되었지만 말이다.





    <도이금광 유자양갱>





    <이불 '박근' 위험'혜' '순'이 '시리'잖아> 




    짐을 정리하며 심심한 마음에 TV를 틀었는데 일본에서도 온통 최순실게이트 이야기 뿐이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맥주 한 캔을 비웠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사랑하는 내 나라.


    한 명의 관광객에 불과한 나는 외국인들이 나를 보고 대한민국을 판단할 수도 있다며 행동가짐 하나하나에 조심하기를 거듭하고 있는데,


    위에 있는 누군가들은 너무나 쉬운 생각들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었다.


    3일차의 밤은 답답한 마음으로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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