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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1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7. 5. 14:52
본 여행기는 2018년 히로시마와 그 주변지역을 여행한 여행기입니다.일본에 다녀온 모든 여행기를 올렸는데 히로시마는 마무리를 짓지 못해 미적거리다가 최근에서야 간신히 마무리를 하게 되어 뒤늦게나마 올려봅니다.
교통정보는 상당히 변한 것이 많아 정보성은 부족해졌지만 그 외에 볼만한 지역들의 유래나 소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서 아직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행(旅行)에서 여(旅)는 나그네를 의미하는 한자라고 한다. 나그네의 뜻을 살펴보면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이라고 하니 여행자를 일컫는 말로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기 집을 놔두고 굳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회피,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의 탐구, 새로운 장소에서 배우는 새로운 지식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앞서 언급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히로시마로 떠나는 길에는 '현실에서의 도피'라는 이유도 있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도 멀어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때로 여행은 이렇게 잠시 힘겨움에서 멀어질 시간을 주기도 한다.
사실 여행을 할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보통 이럴 때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가격이 저렴한 표가 나왔다는 것. 히로시마(広島)를 왕복하는데 62,800원이라는 그 매력적인 단위에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발권이 끝난 다음이었다. 특가상품이라 위탁수화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게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뭘 사 올만한 경제력이 없었던 상황이라 상관없겠지 싶었다. 집에는 작은 캐리어가 있었는데 수하물 규정보다 조금 커서 들고 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백팩에 최소한의 짐만 준비하여 욱여넣었다. 4박 5일의 일정에 옷 두 벌, 속옷 두 개, 양말 두 짝, 수건 하나, 세면도구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모두 카메라와 렌즈들, 각종 배터리들이었다.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이미 가방의 무게는 10kg에 육박해서 중량제한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쇼핑을 부탁하는 몇몇 지인들을 위해 돌아오는 비행 편에만 위탁수화물을 사전 신청하고 가방에 부직포 가방 하나를 더 접어 넣었다. 결국 5만 원이 추가되어 112,800원짜리 티켓이 된 셈이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는 돌아올 때 사 올 수 있는 만큼은 푸짐하게 사 와야지라는 결심을 했다. 원래도 뽕을 뽑는 것에 목숨 건 인생 아니던가.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고 지나서 마침내 출발일인 6월10일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9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적어도 8시 정도까진 공항에 도착해야 했고 그러려면 6시 정도에는 동네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탑승해야 했기에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작년에 남큐슈 여행을 할 때 공항버스가 늦어져서 체크인 시간에 간신히 도착해서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나서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해가 완전히 길어지지 않은 다섯 시 반의 거리는 푸르스름한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이제 4일간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들을 모두 잊고 나그네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점차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가방 옆에 '대한민국' 뱃지를 달고 나라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히로시마행 에어서울> 공항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야 했다. 넓은 창 밖의 세상은 구름이 이불처럼 뒤덮여 한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히로시마 현지의 비소식까지 전하고 있어 마음까지 같이 꾸물거렸다. 원래도 비 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여행지에서 비 오는 것은 더더욱 싫은 마음이다. 멋진 사진을 남겨오고 싶은 내게 비 오는 날씨를 멋들어지게 표현할만한 사진실력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날이 맑아도 흐려도 좋은 사진가들은 좋은 사진을 뽑아내는데 나는 언제나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는지. 그래도 여행지에서 폭우를 만난 적은 잘 없는 내 운에게 기도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 에어서울 쪽 발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지 앞선 비행기들은 출발이 지연되는 일이 속출했던 것 같은데 다행히도 히로시마행 비행기는 제때 떴다. 이걸로 오늘의 운은 다 쓴 것도 같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1시간 남짓 날아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하니 도시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는 그 동안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골짜기를 따라 나뭇가지처럼 사방팔방 가늘고 길게 펼쳐진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나중에 여행을 하다 알게 된 곳인데 수백여 가구가 언덕 위에 있고 아래쪽과 도로 한두 개 정도로만 연결되어 있던 장소였다. 왠지 출퇴근 시에 병목현상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히로시마 도시 중심지로 갈수록 산은 점차 없어지고 거대한 도시의 풍경이 드러난다. 히로시마를 '소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무래도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 같은 메가시티보다는 작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히로시마는 상당히 큰 도시다. 다만 한국 여행객이 많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도시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겠다.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하니 아기자기한 공항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이런 곳은 국내선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제선 청사는 조촐한 편이다. 지난 시즈오카 공항이나 구마모토 공항에서 받은 느낌을 이 곳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 공항이 작다고 해서 아쉽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작은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점점 차오르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달려가 공항 출구즈음 도착하니 인포메이션이 있었다. 첫 목적지가 이곳이었다. 일본에서 움직이는데 교통수단은 비용의 압박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여러가지 교통수단을 묶어놓은 교통패스를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히로시마는 대표적으로 '비지트 히로시마 투어리스트 패스'가 아주 유용하다. 히로시마 내 노면전차(히로덴-広電) 무한사용, 주변지역까지 고속버스 무한사용, 관광지 할인 등이 포함되어있어 잘 쓰면 교통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번의 일본여행으로 얻은 노하우로 이제는 패스권부터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서 관광지를 선택하는 노하우까지 생겼다. 비지트 히로시마 패스는 커버하는 지역에 따라 종류가 한번 더 갈리고, 공항 셔틀버스 비용까지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다시 종류가 나뉜다. 나는 비지트 히로시마 와이드 에어리어에 공항 리무진까지 포함된 패스를 샀다. 한 번에 6천엔(한국 돈으로 6만 원가량)이 한 번에 나가지만 1만 엔 이상의 값어치를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사용 가능 일수도 5일로 늘어나서 4박 5일간의 여행에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케하라 행 셔틀 대기줄> <히로시마 공항> 사실 인포메이션에 패스권을 사려는 사람이 몰려들기 때문에, 늦게 도착했다간 빠른 리무진 버스를 놓칠 수 있어 서둘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금방 패스권을 구매했고 가려는 곳의 버스가 워낙 띄엄띄엄 있는지라 꽤나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으레 그러했듯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뽑아 시원하게 원샷했다. 그러면 현장에서 쓰기 편한 잔돈도 생기고 당충전도 되고 여행 시작의 의미도 되새기게 되는 나의 출발 의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셔틀버스 줄의 가장 구석에 있는 '타케하라(竹原)'행 셔틀 대기줄에서 기다리다 시간에 딱 맞춰 오는 리무진에 탑승했다. 히로시마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아닌 듯, 태권도장 학원 버스보다 조금 큰 정도인 봉고차가 리무진이랍시고 있었다. 커다란 버스에서 에어컨을 쐬며 달릴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졸지에 뻘쭘하게 나이 지긋하신 운전수 어르신과 단둘이 길을 달리게 되었다. 물론 에어컨이 시원찮은 것은 덤이었다. 시골길을 굽이굽이 달려 도착한 작은 역에서 내렸는데, 내리면서도 투어리스트패스를 못 알아보시는 눈치라 잠시 설명을 해드려야 했다. 다행히 시즈오카에서 한번 겪은 적이 있었던 일이라 차근차근 잘 이야기를 나누어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뭔지도 모르는 패스를 돈도 안 내고 들이미는 외국인이 당황스러웠을 아저씨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타케하라에서 내린 것은 타케하라에 볼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타다노우미(忠海)라는 곳을 가고 싶은데 가장 빠른 방법이 타케하라를 경유하여 전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들어가 차표를 사고(히로덴 이외의 전차는 패스권 사용 불가) 또 한참을 기다렸다. 대중교통으로 일본을 여행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시간인 것 같다. 시골에는 차편이 자주 있을 필요가 없어서 차편의 시간간격이 넓은데 1분1초가 아쉬운 여행자에겐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이럴수록 여유를 가져야 할 텐데 아직 그 정도 경지의 여행자는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경쾌한 음악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샛노란 열차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냉큼 올라타고 타다노우미로 향했다.
<타케하라역 선로> <쿠레선 미하라행 열차> 타다노우미역에서 내려 정확하지 않은 표지판을 따라 타다노우미 항구로 이동했다. 걸어가면서 '이쪽이 맞나, 또 반대로 한참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며 덜덜 떨었지만 다행히 방향이 맞았다. 소도시 항구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풍경에 어릴적 아버지 손을 붙잡고 인천 소래포구에 드나들던 생각이 났다. 물이 빠져 뻘에 서있는 배들의 모습이 그리움 속 한 구석을 자극했다. 예쁘게 단장한 건물에 들어가니 사방에 온통 토끼사진 천지다. 타다노우미항구의 배편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었다. 타다노우미 항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오쿠노시마(大久野島), 일명 토끼섬이다. 사방 천지에 토끼가 뛰노는 곳이라서 인기가 많았다. 배편 시간을 보니 아뿔싸, 오늘은 시간대가 계속 어긋날 모양이다. 점심시간이 겹쳤는지 다른 배들이 1시간 간격으로 있었던 것과는 달리 거의 2시간 가까이 배가 없었다. 그 중간쯤에 도착했기 때문에 1시간 정도가 공으로 비게 된 셈이라 나도 점심이나 먹자 하고 구글지도를 켜 편의점을 찾았다. 빵과 우유를 사 뙤약볕 아래서 우적우적 씹고 있자니 나그네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여행사에서, 연인끼리 오는 와중에 혼자 와서 나같이 궁상을 떨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바로 고독이라는 거겠지. 우적우적.
점심을 가볍게 먹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 동네 한바퀴를 슬쩍 돌아보았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아 조금은 썰렁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일본의 소도시들은 낮시간에 사람이 잘 없다. 워낙에 인구가 없기도 하고, 노령인구가 많아 움직임이 적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리라. 이 마을을 책임질 작은 소방서의 앰뷸런스 한 대, 소방차 한 대가 정갈하게 정비된 모습에서 작은 마을의 고요함과 정갈함을 동시에 엿본 듯도 하다.
<타다노우미항 매표소> <선착장에서 본 풍경> <오쿠노시마행 배> <마린라피트II> <타다노우미 표지판> <한적한 타다노우미 바닷마을 풍경> <작은 마을의 작은 소방서> <타다노우미항 풍경> <쿠레선 노란 열차> 이윽고 배시간이 다 되어서 잽싸게 줄을 섰다. 늦게 줄을 서면 배를 못타는 불상사도 있다고 해서 넉넉히 시간을 두고 미리 서있었다. 작은 배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탔는데 현지 일본인이 대부분이고 외국인들은 소수만 있었다. 교통편이 좋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은 내국인 관광객 위주였던 듯싶다. 작은 배에 사람을 촘촘히 심은 배는 선수를 돌려 오쿠노시마, 일명 토끼섬을 향해 물을 갈랐다. 배에서 나는 매연이 객실로 다 들어오는 모양인지 매캐한 내음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배를 둘러보니 꽤나 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다가 가라앉는 건 아니겠지?'라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배는 잘 나갔다.
사실 매표소에서 기념품 삼아 토끼엽서 두어장을 미리 사두었는데 배 안의 안내서를 보니 살 필요가 없었던 듯싶다. 매표소에서 구입한 토끼 사료용 봉투를 다시 가지고 오면 엽서로 교환해 준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섬 내에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참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모르고 섬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분들도 많이 보았는데 욕심 같아서는 주워다가 전부 엽서로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토끼섬 주의사항 : 쫓지 말것, 손대지 말것, 손가락을 입에 넣지 말것(?!), 사람 음식 주지 말 것, 불 금지, 애완토끼 방생금지> <사료 봉투를 되가져오면 엽서로 바꿔주는 좋은 정책> <배를 타고 지나가다 본 독가스 제조시설 풍경> 선착장에 도착하여 배를 내리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이 배는 오쿠노시마에서 다른 섬 하나를 더 들렀다 돌아오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람이 별로 타지 않았다. 나중에 타다노우미쪽으로 나가는 배로 돌아오면 그때 사람들이 탑승하리라. 선착장에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굴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히로시마가 굴로 꽤나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군침이 살짝 돌았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간 해수욕장에서 갓 딴 생굴을 주시면 호로록 빨아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태안 어딘가에 있는 그 해수욕장은 예의 기름유출사고의 피해지역이라 한참 뒤에 다시 해수욕을 하러 찾아갔지만 굴을 따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뒤로 생굴을 맛볼 일은 잘 없는데 이런 곳에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다니 참으로 얄궂다.
<오쿠노시마 선착장의 굴> <입구부터 맞이해주는 토끼똥> 사람들이 토끼섬이라며 사랑스러운 토끼를 찾아 오는 이 섬은 현재는 휴양지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내려 왼쪽 루트로 나있는 길을 따라 야자수도 심겨있고 큰 호텔에는 셔틀버스도 자주 돌아다닌다. 그러나 이 섬은 그렇게 2차 대전 역사 속에서 독가스를 제조했던 사실을 서서히 묻어가고 있다. 위키피디아의 오쿠노시마항목은 이 섬의 역사를 이렇게 전한다.
러일전쟁 이전까지는 어부일을 하는 3가족이 살고 있던 경작지였다. 1925년 일본 제국군의 과학기술연구소는 유럽과 미국이 생산하는 화학무기에 착안한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1925년 제네바 협약은 화학전을 금지했고 일본도 이에 서명했지만 개발과 저장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1927년 생산공장 건설을 시작하여 29년에 완공, 직후부터 6천 톤의 머스타드 가스와 최루가스를 생산했다. 오쿠노시마가 이런 독가스 생산시설로 선정된 것은 보안에 적합하고 수도로부터 거리가 있으며 여러 재난으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이다. 생선을 보존하던 시설은 독가스 반응로가 되었고, 많은 노동자들은 혹독한 근로환경과 독성에 노출되어 고통받았지만 함구령이 내린 탓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후에 점령군이 해당 시설을 불태우고 파괴했다. 독가스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토끼들을 사육하고 있었는데 전후에 이를 섬에 방생했는데 이로부터 개체수를 늘려 현재의 토끼섬이 되었다. 1988년에 독가스 박물관을 설립해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어둠의 역사를 가진 곳인데 나중에 이 곳을 찾겠다는 외국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내용은 알지도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관광지로 이미지를 얼마나 잘 구축했는지를 알법하다. 선착장에서 오른쪽 루트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데 나는 일부러 그쪽 방향으로 해서 섬을 한 바퀴 크게 돌아보기로 했다. 토끼는 이쪽 방향에도 많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필요 없이 양껏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리조트 방향의 토끼들은 아무래도 먹이를 많이 얻어먹어서 사람에 대한 애착이 덜한데(덜하다는 거지 여전히 토끼들은 몰려든다.) 독가스 제조시설 방향의 토끼들은 많이 굶주린 듯 개떼처럼(?!) 몰려들어서 사진 찍기에는 훨씬 편했다. 조금 걷다 보니 미적 감각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실용 위주의 터널과 그 터널 너머로 황폐화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철원 노동당사를 보는 것 같은데 여기는 창살까지 녹슬고 뒤틀려있어 을씨년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점령군이 무기고로 썼던 모양인지 노란 페인트로 칠한 MAG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보였다. (MAGAZINE은 무기고라는 의미가 있다고)
<독가스 제조시설 가는 터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무너져가는 시설> <벙커> <어딜가나 보이는 토끼들> 아마도 88년에 박물관을 개관하며 설치했을 안내판들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녹슬고 페인트가 갈라지고 벗겨져 있었다. 이것이 그네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였다면 이렇지 않았을텐데, 시간 속에서 서서히 잊히길 원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역사 속에 저지른 수많은 만행들을 하나하나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겠거니 싶었다. 이번 일본여행도 결국은 이런 곳을 만나 착잡한 마음 하나를 얻어가고 말았다.
오쿠노시마의 풍경 자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숲이 무성한데 사람이 많이 찾지는 않아서 손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느낌이 있었고, 멋들어지게 길쭉이 뻗은 백사장이 있었으며 바닥이 비치는 맑은 바다가 있었다. 섬 곳곳에는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밥을 달라며 쭐래쭐래 쫓아오는 귀여운 토끼들이 넘쳐났다. 잠깐 서서 가방이라도 뒤질라 치면 어느새 발치에 토끼 서너 마리 정도가 와서 관심을 보였다. 밥 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닌 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섬 반바퀴를 돌자 십여 개의 테니스코트가 펼쳐져서 리조트로 계획된 섬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근데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코트에도 토끼들만 잔뜩인 점은 좀 의아했다.
토끼섬에서는 토끼들의 보호를 위해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취하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정책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섬 내를 돌아다니는 차량이나 셔틀버스는 느린 속도로 운행하며 날카로운 삑삑 소리를 끊임없이 낸다. '차가 지나가고 있으니 토끼들아 알아차리고 밟히지 않게 도망가라'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밟히는 참사가 벌어진다고...) 6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곳곳에 구덩이를 파고 엎드려 잠만 자는 토끼들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랑가 모르겠다.
<오쿠노시마 해변 풍경> <독가스 저장시설> <갈라지고 희미해지는 간판들> <독가스 저장시설> 섬을 반 바퀴 조금 넘게 돌자 리조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서 토끼떼도 많이 보였다. 이때까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꽁꽁 숨겨두었던 사료를 가방에서 꺼냈는데 냄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토끼들은 도리어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는데 사료가 이렇게 심하게 나다니. 그래도 토끼들은 좋아하는 향이겠거니 싶었다. 기본적으로 관광객들이 사료나 당근 같은 것들을 많이 주기는 하는데 지푸라기와 물도 기본적으로 공급은 하고 있었다. 아마 배고프지 않을 정도는 먹이가 공급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료를 주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을 보면 사료가 더 맛난 것이긴 한가보다. 사료를 손에 조금 덜어 쭈그리고 앉으니 바로 상황을 캐치한 토끼 서너 마리가 겅중겅중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손에 코를 처박고 사료를 오물오물 먹었다. 혹시 손이 물리는 건 아닌가 싶어 무서웠는데 손가락 쪽으로 밥을 주지 않으면 알아서들 손바닥에서 잘 먹는다고 했다. 토끼들의 따끈따끈한 숨결과 보들보들한 털이 손바닥 안에서 움찔거리고 있는 것은 꽤 좋은 기분이었다. 다만 계속 코를 박고 사료를 먹어주었으면 했는데 씹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지 한입 물고는 고개를 들어 한참을 우물거리고서야 다시 얼굴을 들이댔다. 쭈그려 앉아있자니 다리가 아파서 마냥 기다려줄 수 없었기에 바닥에 사료를 던져주고 쉬고 다시 토끼를 불러 모으고 하기를 반복했다.
<곳곳에 널려있는 토끼들> <무너져가는 독가스 생산시설> <옛날에 접안시설로 사용했던 곳인 듯> 사료를 다 주고 돌아가는 배를 타러 슬금슬금 이동했더니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비에 홀딱 젖은 토끼라면 귀여움이 덜했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 전에 만나서 뽀송뽀송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토끼들에게 인사를 날리고 타다노우미 항구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꽤나 구석진 관광지였지만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다노우미에서 다시 타케하라로 가는 전차를 타고 그곳에서 이번엔 히로시마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숲을 달리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 마침내 베이스캠프인 히로시마 시내에 들어서자 곳곳에 도요 카프 야구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야구경기가 있었던 모양인 듯 했다. 연고가 확실한 일본야구답게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히로시마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복 입은 사람들이 술 한잔 하러 가는 모습도 보였고 야구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았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날 히로시마는 라쿠텐에 3: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했다. 그 행복한 표정들의 이유를 알 것 같다.
노면전차를 타고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니 카운터의 일본아저씨가 나를 맞아주었다. 환한 표정에 접객을 받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을 짓는 분이었다.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안내받고 2층 구석에 있는 6인 혼성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프랑스인이 한명 있었고 그 외에 독일여자분, 영국 남자가 있었다. 나중에는 미국인도 한 명 들어왔다. 히로시마 시내를 아직 본격 관광하기 전이라서 서양인이 많은 그 구성에 마냥 신기하게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히로시마를 돌아보니 온통 서양인 투성이었다. 거리에도 많으니 숙소에 많은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갔다. 내가 묵은 숙소 전체에 동양인이 네 명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보면 더더욱 알만했다. 아무튼 짐을 풀며 서로 가볍게 국적과 통성명을 하고 짤막하니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만 해도 첫날이라 아직 서먹서먹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묘미는 사실 이런데 있는 것 같다. 잠자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사람들과의 밀도 있는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라서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참 좋아한다.
느지막이 다시 숙소를 나와 편의점에서 가볍게 도시락을 챙겨 먹고 들어와 잠이 들었다. 요즘 일본여행을 일주일 이상씩 다녀 버릇했더니 4박 5일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부지런히 다녀야겠다고 다짐하며 2층 침대에 올라갔다. 잠자며 이리저리 뒤척이는 습관이 있는 나는 굴러떨어지지나 않을까 염려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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