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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국토종주 2일차 - 3
    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24. 11. 18. 23:00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면서 내 목표 중 하나는 중간중간에 재미나 보이는 것들을 다 보면서 지나가자는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부산까지 달리는 스피드를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느릿느릿하게 가면서 유람하는 느낌의 여행을 하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면서도 남산이 보이는 곳에서 한참을 쉬었고 잠실 수중보를 구경하느라 또 한참 쉬었다. 하남에서는 산곡천 탐조대에서 새 구경도 한참 했다. 지나가다가 보이면 이렇게 쉴겸 구경할 겸 해서 멈추곤 했는데 여주보 바로 지근거리에 세종대왕릉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미리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 가장 크고, 아마도 작은 표시정도는 있었을 법도 한데 보지 못했을 내 잘못이 그 다음일 것이다. 다 내잘못이다. 아무튼 몰랐던 관계로 무언가 풀숲이 무성한 곳을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여행지에서 아쉬움이 남으면 다시 그 여행지를 찾게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나는 국토종주를 다시 하게 되는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국토종주를 떠나기 전에는 "그런걸 두 번이나 할 수 있을리 없다. 이번에 모두 끝내버릴테다."라는 마음으로 다녀오긴 했지만,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난 지금에 와서는 "한 번 더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한 번 정도는 더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든다. 오롯이 자신의 판단으로 긴 거리를 자기만의 힘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꽤나 성취감이 큰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재미도 있었다. 아무튼 다시 하게 된다면 세종대왕릉을 꼭 방문해보고싶다.

    어느정도 달렸을까 한창 공사중인 다리가 보였다. 현수교인데 기둥을 먼저 세워 그 위에 현을 얹어놓고 상판을 들어올릴 줄들이 칸칸이 매달려있었다. 다만 상판이 없어서 건너갈 수는 없는 다리였다. '여주 출렁다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다리는 원래 2022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올해 말, 즉 2024년 말에나 개통이 완료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와 그로인한 세계적인 자재가격의 상승, 그리고 건설사의 파업 등으로 늦어졌지만 다행히 공사가 재개되어 그나마 올해 완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공사 중단기간이 길어서 안전진단 등에 시일이 걸려 실재로는 내년 5월은 되어야 개통된다고 한다. 출렁다리에 자동차가 다닐리는 만무하고 알아보니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인 듯 했다. 강 건너편에는 곧바로 신륵사와 여주도자기센터 등이 있어 볼거리가 있다 치는데 이쪽편에는 제법 유명한 썬밸리 호텔을 제외하고는 인프라가 별로 없었다. 조금 더 지나가야 금은모래강변공원이라고 해서 유원지가 하나 있는데 이미 다리에서 꽤 멀어진 위치라 다리의 역할이 무엇인가 싶긴 하다. 뭐 건축이나 교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의 무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뉴스에서도 이런 부분을 꼬집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니 신륵사가 보인다. 보통 절이라고 하면 산 속에 있는 산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강변에 자리잡은 절이다.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 고려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이후 세종대왕릉이 여주로 이장되면서 원찰(죽은 이의 소원을 이뤄주는 사찰로 왕실이 지었다.)로 신륵사가 선정되었고 크게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 초만 하더라도 불교와 유교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지 싶다. 신륵사는 예전에 사진동호회에서 은하수를 촬영하기 위해 육백마지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여 일출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사찰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히 절 끝에 바위 위에있던 정자의 분위기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흔치않게 전탑(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 있어 독특한 볼거리가 되어준다. 그때는 강의 북쪽편의 사찰을 지나며 황포돗배가 다니는 나루터를 보았는데 이번에 자전거를 타면서는 강의 남쪽을 지나며 황포돗배가 도착하는 곳을 보게 되었다. 신륵사도 강 너머에서 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신륵사를 방문하는 분들은 황포돗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 사찰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천보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때 조금 놀랐던 것이 화요일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여름의 폭염이 한풀 꺾이고 조금은 선선한 가을이 되자 참고 있던 자전거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합리적인 추측이었다고 만족하고 있다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자 "오늘 한글날이잖아."라고 말했다. 오랜 휴식에 공휴일의 존재를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가갸날 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을 기념하는 행사를 시작한 것이 한글날이 되어 유지되었고 광복 후 4년이 지나 관공서의 공휴일을 제정하면서 공휴일이 되었다. 10월 9일이라는 날짜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여있는 음력 발간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지정한 것이라고 한다. 1991년에 갑자기 일반 기념일(국경일도 아니고 쉬는 날도 아님)이 되었는데 10월에 국군의 날, 개천절, 어떤 경우엔 추석까지 끼면서 휴일이 너무 많아진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몰려있는 휴일보다는 분산된 휴일이 더 좋았었던 모양이다. 2006년에는 국경일로 다시 회복되었지만 공휴일은 아닌 날이 되어 사실상 의미가 없는 변경이 있었고 마침내 2013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어 그 명예를 되찾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요즘같이 법이 법같지 않은 세상에서는 제헌절을 없애고 한글날이 공휴일로 남아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주말을 피해 국토종주를 시작했지만 그 중간에 공휴일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침 일찍 달릴때만 해도 관광지가 아니었어서 몰랐는데 강천보부터는 캠핑장도 있고 여러 관광지가 강변에 몰려있었다. 이날도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 음료수를 마셔서 물배가 찼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했고 마침 강천보 편의점에 한강라면을 끓여주는 기계가 있어 배를 좀 채우고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보통 라면을 국물까지 싹 빨아들이는 사람인데 역시나 물배가 차서 물이 더 들어갈 공간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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