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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9일 북큐슈 여행기 - 2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6. 6. 23. 21:53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은 브렉시트(Brexit)가 통과된 상황입니다.
EU에서 유럽의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면서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한 자산인 엔화로 수요가 몰리다 보니 엔환율이 순식간이 오르고 있네요.
1075원에 환전하면서 비싸다고 툴툴거렸는데 지금은 1150원 정도 하는 상황이고, 앞으로 계속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행을 좋을 때 잘 다녀온 것 같네요.
한 나라의 국민투표가 전 세계 금융계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느껴져 신기합니다.
동시에 영국의 EU탈퇴라는 역사에 쓰일 한 순간을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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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여행지에서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는 부류입니다.
이런 분들은 경치 좋은 여행지에서 온천과 맛난 음식을 즐기며 고단했던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죠.
또 다른 하나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부류입니다.
이쪽 분들은 한 곳에 머물기 보다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에 주력하죠.
(물론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서 여행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두 여행 모두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높힌다는 점에서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분류상 후자에 속하는 여행자입니다.
8박9일의 일정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지는 비운의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류는 하루를 길게 쓰며 많은 것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게 됩니다.
저희도 7시에 일어나 세면을 하는 등의 난리 부르스를 피우고 8시가 되어 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숙소였던 하나호스텔의 바로 뒤켠에 구시다신사(즐전신사)가 있었기 때문에, 첫 관광지로 선택하게 됩니다.
<구시다신사 뒷문>
구시다신사는 757년에 세워져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카타(후쿠오카)의 수호신 역할을 해온 신사입니다.
매년 7월 초에 진행되는 하카타 기온야마가사마쯔리(기온 신 가마 축제)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과거 이 지역에 역병이 돌았을 때 승천사(조텐지)의 개조인 성일국사(쇼이치)가 물을 뿌려 병을 물리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며 그가 탔던 가마를 들고 사람들이 돌아다닌 것에 기원한 축제라고 하네요.
저희가 구시다 신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8시 정도 였는데, 한적한 가운데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출근길에 신사에 들러 참배를 하고 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인 듯 보였습니다.
천년의 전통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함께 한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생활의 터전이 되는 곳에 나 자신은 여행객이 되어있다는 점도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구시다신사 정문>
하지만 이 구시다 신사는 한국인에게는 영 불편한 장소입니다.
1895년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처참히 살해된 을미사변이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칼로 살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불에 태워 연못에 유기하기까지 한 잔학무도한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명성황후 살해에 직접 가담한 도오 가쓰아키의 칼 비전도(히젠도)이 이 구시다신사에 봉납되어 있습니다.
봉납 기록에는 "조선 왕비를 이 칼로 베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칼에는 을미사변을 기념한다며 칼집에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고 새겨두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한 시민단체에서는 "히젠도는 범죄에 사용된 칼이므로 검찰이 보관할 물건이지 민간이 소장할 물건은 아니다."라는 의미로
히젠도 폐기 요청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남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일본정부의 방침상 폐기 요청은 가뿐하게 무시하겠지만, 최소한 우리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시다신사에서 소원을 빌거나 참배를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약간은 착잡한 마음으로 구시다신사의 관람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전날 이동하며 봐두었던 마츠야(송옥)에 갔습니다.
작년 오사카의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반해버린 곳이죠.(마지막날 알게되어 한 번 밖에 못먹어서 억울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밥천국과 같은 이미지로, 저렴한 가격에 규동 등을 판매하는 체인점입니다.
500엔대의 가격에 대부분의 메뉴가 포진되어 있으며, 맛도 좋습니다. (맛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라 장담은 못합니다.)
입구 근처의 자판기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되는데, 한국어 옵션이 있어 주문이 간편합니다.
그리고 개인 식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아니 개인 식사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혼자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쓰다보니 마츠야 홍보대사가 된 것 같네요.
두 번째 식사도 아주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보이면 종종 이용할 생각입니다.
역시 아침엔 고기죠. 특히 소고기가 최고죠. 침만 발라도 소화된다는 소고기!
<마츠야 소고기 곱배기 정식>
2일차의 본격적인 첫 일정은 다자이후에 가는 것 입니다.
다자이후는 후쿠오카 지역의 관광지이긴 하지만 거리가 좀 되는 곳에 있기 때문에 교통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후쿠오카 시내 버스패스는 다자이후까지 커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린패스 다자이후라는 교통패스를 미리 한국에서 구매해 두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하카타역 옆의 하카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가 막 출발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20분 간격으로 있는 버스이기 때문에 꼼짝없이 20분을 앉아서 기다릴 뻔 했는데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헐레벌떡 뛰다가 에어컨이 잘 나오는 버스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필요 없었네요.
배부르고 시원하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다자이후 가는 길의 후쿠오카 국제공항>
다자이후로 가는 버스인 니시테츠사의 타비토는 꽃잎이 팔랑거리는 도색이 되어있습니다.
버스 내부에는 모니터가 있는데 다자이후의 소개영상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저는 잘 모르는 일본 걸그룹 연예인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한국 연예인이 많이 예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다자이후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이른 부분도 있었겠지만, 저는 규슈 지진의 영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곳이 삶의 터전인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면 안되겠지요.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태재부)는 일본의 관부로, 규슈지역을 통치하는 통치기구명이었던 것이 시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랜 도시이기 때문에 유명한 텐만구 이외에도 많은 유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텐만구만 보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닐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9세기 말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정적의 공격을 받아 다자이후에 좌천되게 됩니다. (이름이 미치자네... 신기하자네... 아재개그자네...)
얼마 뒤 미치자네는 사망하게 되고 그 유해를 실은 달구지를 몰던 소가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자리에 유해를 매장하고 사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미치자네를 좌천시켰던 정적과 다이고 일왕이 차례로 죽거나 번개를 맞는 등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자 미치자네의 죄를 사면하고 명예회복을 시켜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번개를 때려대는 미치자네를 천신과 동급으로 보았습니다. (일본에서 뇌신(번개신)은 천신(텐진)과 같은 개념)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천만궁(텐만구)을 지었습니다.
현재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도 추앙받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전역의 수험생들은 합격을 기원하며 다자이후 텐만구를 찾는다고 합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는 전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주저앉은 소를 동상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 소의 뿔을 만지면 시험에 합격하고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텐만구를 찾는 사람들이 소뿔을 찾아 헤메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소가 사람이 묻힐 자리를 정하고 사람들의 지능을 높여준다니, 과연 학문의 신 근처에서 버프를 받은 소는 두뇌 수준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자이후 텐만구 스타벅스>
다자이후 텐만구 본전으로 가는 길에는 상점가가 있고, 잘 꾸며진 연못과 정원, 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상점가의 스타벅스는 목재의 달인이라 불리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쿠마겐코'의 작품으로 다자이후의 랜드마크입니다.
나무젓가락들이 겹쳐지는 듯한 단순한 구성으로, 화려하면서도 다른 곳과 차별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멋지네요.
우에노공원의 1층 스타벅스, 고베의 이진칸 스타벅스, 타케오시의 도서관과 융화된 스타벅스, 교토 카모강의 스타벅스 등은
세계적인 체인인 스타벅스 특유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특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건축적 미학을 살리는 상점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이 역사와 문화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의 횡포가 있어서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일까요?)
<다자이후 텐만구 도마뱀>
상점가를 지나가고 있자니 사람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더군요.
가게 근처에 도마뱀이 나타난 모양이었습니다.
사람을 놀래키기엔 너무나 앙증맞은 모습이라 저는 귀엽게 느껴졌습니다.(데려다 키워보고 싶을 정도였네요.)
가게 직원분들은 도마뱀이 가게에 들어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창문을 닫고 발로 주변을 쿵쿵 밟으며 멀리 도망가게 했는데 도마뱀이 그냥 옆가게에 기어들어가더군요.
(예상치 못한 옆가게 어택...)
이후로도 다자이후에서 두어번 더 도마뱀을 볼 수 있었는데, 자연과 생태계가 잘 지켜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도마뱀 보기 힘들지 않던가요?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본전으로 가는 길은 울창한 정원과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연속으로 나옵니다.
이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지나가게 되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첫 다리를 지나면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과거의 악행들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언듯 듣고 갔는데 이 곳에서는 기억을 못해서 뒤를 돌아봤는지 어땠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네요.
과거에 착하게 살아와서 악행따위 없으니 뒤를 돌아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디선가 돌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오르내리는 다리를 건너고 있자면 천만궁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녹갈색의 연못은 햇살과 함께 무한히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유명 관광지 치고는 한산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어서 좋았습니다.
해가 거의 없는 구름 많은 날씨였지만 제법 뜨거운 날씨여서 그늘을 찾아 걸어다녔습니다.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다자이후의 소동상은 뿔을 만지면(혹은 머리) 머리가 좋아지고 시험에 합격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의 손길이 꾸준히 닿았기 때문에 몸통과 색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동상일지를 생각해 보니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곳을 찾는 수험생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염원을 담아 이 소의 머리를 쓰다듬었겠지요.
(참고로 다자이후에서 제가 소 동상을 세군데서 만났는데, 어떤 소가 소원을 들어주는지 몰라서 셋 다 만지고 왔습니다. 저도 많이 간절한가봐요.)
<다자이후 텐만구>
텐만구 본전이 있는 곳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이 나타납니다.
마당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바닥 길이 본전을 향해 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전 앞의 전통에 동전을 던져 넣으며 박수를 치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이니 만큼 무언가 합격을 기원하는 발걸음이었겠지요.
본전 안에는 거울이 있는데, 이는 소원을 비는 사람의 양심을 비추어 보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신사에 참배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양심은 한번 비춰보기로 했습니다.
다자이후 본전을 마주보고 오른쪽 뒤로 슬금슬금 이동하다 보니 거울 속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거울에 제 얼굴이 나타나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양심이 제법 귀엽게 잘생겼군요...(!!)
<다자이후 텐만구, 거울 속의 나>
<다자이후 텐만구 오미쿠지>
초반 여행의 동행인이었던 골송은 복부에 인덕이 두툼한 친구입니다.
저도 마른 체형은 아니지만 이 친구 옆에서라면 멸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번 2일차 이후로 글이 안올라오면 범인은 골송입니다.)
이 친구가 오미쿠지를 경험해보겠다며 100엔을 투자하여 운세종이를 손에 넣었습니다.
조심스레 펴본 그 종이에는 '말길'이라는 글씨가 소담스럽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흉은 아니고 길이니 일단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죠.
인터넷에 다자이후 오미쿠지 말길을 해석해놓은 것이 있어서 읽어보고 그는 충격을 받고 맙니다.
"여행을 자제할 것..."
이후 여행동안 저는 두고두고 이 이야기를 함께 여행하던 그에게 건네곤 했습니다.
"여행을 좀 자제하지 그래..."
<다자이후 고목>
넓은 다자이후 텐만구의 경내를 둘러보니 지도에 텐카이이나리샤(천개도가사) 신사가 있다고 나와있었습니다.
이나리신사는 여우신을 모시는 곳으로 농사와 상업을 관장하는 곳입니다.
이나리가 쌀포대를 의미하기도 하고 여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작년에 간사이 지역을 둘러봤을 때 교토에서 만났던 후시미이나리타이샤(복현도가대사) 신사가 생각나서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리이가 터널을 이룰 정도로 빽빽하여 센본도리이라고 부르던 그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였죠.
텐만구 뒤에 있는 정원을 걷다 보니 과연 도리이가 듬성듬성하나마 계속하여 연결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열쇠와 공을 물고 있다는 여우신상의 모습도 보였죠.
텐만구에서 이곳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는 않는 듯, 한산한 산 속에 있는 조용한 신사였습니다.
정말 아는 사람만 구경할 수 있는 숨은 신사라고 생각하니 보물을 찾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더운 날씨에 야트막한 산을 올라가며 쌓인 피로가 가시는 듯 합니다.
<다자이후 텐카이 이나리 신사>
<다자이후 수국>
<다자이후 창포>
제가 다자이후에 갔을 때는 한 켠의 연못에 창포꽃이 만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수국이 파란색, 흰색, 분홍색으로 피어올라 있었죠.
그런데 사실 다자이후의 진짜 매력은 2월 매화가 피어오를때라고 합니다.
미치자네가 교토에서 좌천되어 규슈로 오게 되었는데, 이때 같이 날아와 자라났다고 하는 '도비우메(비매)'라 불리는 매화나무가 본전 앞에 있습니다.
수명이 다하면 그 그 새끼를 심어 키우기를 거듭하여 현재의 도비우메는 10대째 매화나무라고 합니다.
이 매화를 중심으로 경 주변에 잔뜩 있는 매화가 일제히 피어오르게 되면 매화축제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텐만구의 명물 중 하나는 우메가에모찌입니다. (우메기모찌 아닙니다...)
좌천되어 풀이 죽어있던 미치자네를 보고 마음이 짠해진 한 노파가 창살 사이로 찹쌀떡 하나를 매화나무 가지에 꽃아 건네주었다는데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팥이 들어간 찹쌀떡이라고 하는데 눈에 확 들어온 곳이 없어서 사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한번쯤 사 드시면 좋을 것 같네요.
<다자이후 지식증가 소 동상>
텐만구를 벗어나 집으로 가기 위해 온 길을 서서히 되돌아 나오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 보였습니다.
점심때쯤이 되자 단체관광객과 느지막히 도착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이상 한적한 신사의 모습이 아니게 되어서, 일찌감치 도착하여 구경을 마친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아침에 안쓰럽게 생각했던 상인들이게도 다행인 일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차피 올라오면서 다 보기도 했고 인파를 피하고 싶기도 해서, 중심가에서 벗어나 옆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다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골목길이 나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그 골목에는 '고묘젠지(광명신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 날 문을 열지 않아 내부와 정원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마당까지는 들어갈 수 있어서 안에 들어가 마루에 앉아 잠시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허공에 다리를 버둥거리며 쐬여주는 바람이 얼마나 간지럽고 고맙던지요.
<다자이후 옆 고묘젠지>
<다자이후 고양이>
다시 버스를 타고 하카타 버스정류장에 돌아와서 곧바로 요도바시카메라로 향했습니다.
이 건물의 5층에 108엔 초밥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100엔이 가격이고 8엔은 일본 소비세입니다.)
우오베이 초밥은 벽에 붙은 터치스크린을 통해 메뉴를 선택하면 만들어진 초밥이 자동차를 타고(?!) 나타납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과 초밥이 배달되는 방식이 신기하다는 점 덕분에 최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저는 배틀트립이라는 KBS 프로그램에서 EXID 하니가 다녀온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 접시에 두개 올라가는 초밥이 배가 불러봤자지 라며 우습게 보았다가 열 접시를 채 먹지 못하고 배가 불러 숨을 쉬기 힘든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천엔 정도면 본인이 좋아하는 초밥을 골라서 맛있게 먹고 나올 수 있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계란말이 초밥의 그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데, 충분히 느끼고 왔습니다.
이곳도 한국어 메뉴를 지원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없이 맛나게 드시고 오면 될 것 같네요.
<하카타 요도바시 카메라 우오베이 초밥>
<하카타 요도바시 카메라 우오베이 초밥>
이날은 그린패스를 쓰는 것이 계획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버스를 많이 타는 것이 이익이었습니다.
오후의 주요 일정은 후쿠오카타워에 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시간이 너무 많이 비어서 후쿠오카 성터에 들렀다 가기로 하였습니다.
후쿠오카성은 17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구로다 요시타카가 세키가하라 전투의 공적으로 받은 영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많은 일본 성이 그랬듯 후쿠오카성도 메이지유신 이후 해체의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후쿠오카성의 해자 주변은 오오리공원이 되어 시민들의 휴식을 담당하고, 성터 또한 개방되어 과거의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 후쿠오카성에는 천수대는 있지만 천수각은 없습니다.
1646년에 그려진 그림에 후쿠오카성의 천수각이 없기 때문에, 구로다 가문이 막부의 의심을 걱정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기존의 학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1620년 호소카와 다다오키가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막부를 배려하여 천수를 해체하였다.'는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도쿠가와 막부가 오사카에 성을 축성하기 위해 각지에서 자원을 모은 일이 있기 때문에, (간사이편 2일차 참조)
천수각을 해체하여 오사카 성의 부재로 납품하며 신임을 얻게 된 것이라는 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 성터>
후쿠오카 성터에 들어섰을 때 저는 예전에 배웠던 시 한수가 생각났습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한 마리 말을 타고 돌아 들어가니
산천은 여전한데 그 영웅 호걸들은 보이지 않는구나.
아아, 태평했던 세월은 꿈인가 싶구나.
언젠가는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며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이 곳에 영원을 믿고 성을 지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석벽에 돋아난 잡초와, 사방에 깔린 이끼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무얼바라고 이리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요?
인생의 무상함을 만리타지 일본 후쿠오카에서 느꼈습니다.
<후쿠오카 성터 천수대>
후쿠오카성이 평지에 있기는 하지만 성곽과 천수대의 높이는 제법 높습니다.
당시 많은 힘없는 백성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있는 결과물이겠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후손들이 역사를 느끼고 관광산업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제법 헐떡이는 높이를 올라가니 천수대 위의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탁 트인 전망대에 서있자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줍니다.
멀리로는 최종 목적지인 후쿠오카 타워가 보이고,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돔구장인 야후돔도 보입니다.
야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일본 돔구장에서 야구 직관을 해보시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천수대에서 내려와 후쿠오카타워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가 보통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 사소한 것이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곤 합니다.
여행에 대한 태도가 동행인인 골송과 저는 많이 다른 축에 속합니다.
그래도 평소에는 서로 배려를 해서 잘 맞춰주는 편인데 이때는 제가 불평불만을 매섭게 몰아쳤더랬죠.
보통 제가 발끈하고 먼저 사과하는 편이고, 골송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도 아주 잠시 어색했다가 굽히고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먼 여행길을 같이 다녀주는 좋은 친구니까 이런 일로 의가 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만 생기면 이런 곰퉁이같은 칙칙한 남자놈하고는 절대로 같이 여행 다니지 않을겁니다.)
후쿠오카 타워에 도착했을 때 바로 타워에 입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제가 추구하는 타워의 미학이라고 하는 것이 "낮과 밤의 풍경을 모두 눈에 담는다."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에서 보는 부감풍경은 낮과 밤의 모습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몰시간에 잘 맞추어 가면 한 곳에서 두 가지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침 후쿠오카 타워 앞에 있는 모모치해변에 편안한 형태의 벤치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기도 했고, 바람도 선선했기 때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리의 피로를 틈틈히 풀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도 신발을 벗고(여행지에서 신발 벗는것을 좋아하는 발 노출광) 바닷바람에 피로를 풀어주었습니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해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비키니를 입고 보드를 타는 여성분을 만난 것도 좋았습니다.
<후쿠오카 모모치해변>
<후쿠오카 모모치해변>
후쿠오카 타워는 일본 해변에서 지어진 타워중에 가장 높습니다.(솔직히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위한 억지인 것 같은 느낌같은 느낌입니다....)
높이는 234미터이지만(63빌딩이 249미터) 전망실은 123m에 있고, 높이의 상당부분은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전파탑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시가 생긴 지 10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태평양 박람회에 맞추어 지어졌다고 합니다.
외관은 8000여장의 반투명 거울로 덮혀있고, 후쿠오카를 이끄는 돛대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미러세일(mirror sail)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처음에 봤을때는 63빌딩(제 마음 속의 빌딩 기준입니다.)보다 왜소해 보여서 좀 실망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쿠오카타워의 진가는 밤에 나타나므로, 저녁에 이 타워의 외관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타워 앞 웨딩아일랜드>
<후쿠오카타워 앞 웨딩아일랜드 야경>
<후쿠오카타워 앞 NHK 야경>
<후쿠오카타워 앞 NHK 더 깊은 야경>
<후쿠오카타워>
<후쿠오카타워 야경>
<후쿠오카타워>
<후쿠오카타워 야경>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까지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내려다 보았던 도쿄 야경보다 멋진 야경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도쿄편 1일차 참조)
3일차에 만났던 세계 신3대 야경이라 불리는 나가사키의 야경도 제게 최고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 도시의 낮과 밤의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야경 관람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반짝이는 후쿠오카의 모습에는 후쿠오카만이 담을 수 있는 향기가 어려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타워를 내려가고도 한참을 더 야경에 매달려 있다가, 배가 고파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타워를 내려와 버스패스를 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죠.
아직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마지막 목적지는 텐진역에 있는 이치란(일란) 라멘 본점입니다.
이치란 라멘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현지 라멘집입니다.
후쿠오카 텐진에 본점이 있고, 현재는 전국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라멘 체인이기도 합니다.
독서실 같은 식탁에서 라멘의 맛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로 삼면이 막혀있는 인테리어를 해 둔 것이 유명합니다.
특히 라멘의 맛이 우리나라 입맛에 적합하게 매콤하여 현지인들보다 한국인들에 의해 더 사랑받는다는 느낌마저 주곤 합니다.
이치란 본점의 1층은 독서실 식탁이 아닌 일반 음식점처럼 단체 여행객이 마주앉아 먹을 수 있도록 설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도 그 곳에 앉아서 좀 늦지만 그래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치란 라멘은 주문을 받을 때 파의 양이나 마늘의 유무, 비법소스의 양 등을 설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추천받은 대로 2배 소스를 주문했는데(계왕권인가...) 입맛에 딱 알맞게 매콤한 맛이었습니다.
1~4배 정도가 적당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가보시게 되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시면 좋겠네요.
아, 라멘에 나마비이루(생맥주) 한잔 곁들이면 아주그냥 죽여줘요.
<텐진 이치란 라멘 본점>
<이치란 라멘+비법소스X2>
숙소에 돌아와 작은 욕실의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반신욕을 즐겼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반신욕이라니, 정말 최고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물에서 다리를 이리저리 문질러 가며 피로를 풀고 내일의 계획을 머리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은 후쿠오카를 벗어나 나가사키로 떠나게 됩니다.
그 곳에서 또 어떤 일본의 모습을 보게될지 벌써부터 설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층 침대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올라가 눈을 감았습니다.
2일차가 마무리됩니다.
정보편
후쿠오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다자이후는 의외로 후쿠오카와 가깝지는 않습니다.
텐진역 주변에 숙소가 있는 분이라면 텐진역에서 니시테츠 열차를 탑승하여 니시테츠 후츠카이치 역에서 환승하여 다자이후 역으로 접근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따로 사용중인 패스가 없다면 니시테츠선을 이용하여 다자이후 관람과 야나가와 가와쿠다리(뱃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다자이후-야나가와 간코킷푸(관광티켓)을 구입하시면 저렴하게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후쿠오카의 중심지인 하카타역에 가까운 숙소에 계시는 분이라면 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다자이후 타비토 버스를 타고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산큐패스가 있다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편도 600엔, 왕복 1200엔이 들어갑니다. (일본의 교통비는 정말 센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린패스라고 하는 후쿠오카 전역의 버스를 하루동안 이용할 수 있는 교통패스를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갔습니다.
그린패스는 후쿠오카만 볼 수 있지만 그린패스-다자이후 패스는 후쿠오카 전역에 더해 다자이후 타비토를 탑승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왕복 비용이 1200엔인데 그린패스-다자이후 패스의 가격이 1500엔이므로 버스 몇 번만 더 탑승한다면 충분히 이익이 되는 패스입니다.
후쿠오카 패스류의 특징은 복권을 긁듯이 은박으로 가려진 연/월/일 부분을 긁어서 패스권을 발동시킨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보관중에 잘못된 부분이 긁혀 패스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