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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큐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4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7. 12. 31. 20:44
구마모토 토요코인 호텔의 마지막 날이다. 비행기를 구마모토in 구마모토 out으로 해두었기 때문에 어차피 구마모토로 돌아오긴 할 예정이지만, 마지막 날은 좀 특별한 곳으로 숙소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사실상 이 호텔은 마지막인 것이다. 내게는 조식이 참 맛있었던 호텔로 기억될 예정이다. 아침에 일찍 나가야 했으므로 전날 미리 짐을 다 싸놓았다. 가볍게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차린 뒤 내려가 조식을 챙겨먹었다. 내 방은 옆 건물과 딱 붙어있고 두꺼운 커튼이 쳐져있어서 잘 몰랐는데, 로비로 나와보니 바깥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따금씩 우르릉 쾅쾅 거리며 번개도 쳤다. 일단 내가 오늘 가려고 하는 타카치호(고천수-高千穂)는 날씨가 흐림으로 나와서 거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두었다. 그래도 호텔을 나서면서는 비를 좀 맞아야 할 터였다.
방에 다시 올라가 캐리어와 가방을 챙겨 다시 내려오니 한숨이 앞섰다. 이렇게 센 비는 바닥에서 튀어올라 신발이고 바지고 온통 젖게 만들 것이다. 이런건 여행자에게 좋지 않다. 속으로 엄청 투덜거리고 있다가 문득 더위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지독한 더위였는데, 비가 온 덕분에 좀 선선해진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비오는 날씨를 정말 싫어한다. 날씨중에 비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 중에서도 베스트로 싫어하는 것이 비오는 날씨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비 덕분에 더위가 좀 가셨다는 생각에 그리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강렬한 더위였던 것이다. 나중에 옷이 젖어서 고생하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이 날씨를 즐겨보기로 했다.
<토요코인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
<비가 온다며 파랗게 뒤덮힌 북중부큐슈>
폭우를 뚫고 캐리어를 질질 끌며 버스를 타러가니 줄이 길었다. 첫날 버스를 예약하면서 타카치호행 버스는 예약제가 아니라 선착순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사실 속으로 좀 긴장했다. 타카치호로 가는 버스의 초반부 정류장일텐데도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 있었다. 다음 버스는 또 몇 시간이나 뒤에 오기 때문에 이번 버스를 놓치면 꼼작없이 비오는 구마모토에 갇혀있게 되는데 볼장 다 본 구마모토에 볼일이 있을리 만무했다. 특히 비가오는 날이면 더더욱. 심지어 숙소도 체크아웃한 상황이 아닌가. 자리가 없으니 다음 버스를 타셔야한다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 두근거리는 와중에 상당수의 사람은 공항으로 가는 다른 버스를 탔고, 타카치호행 버스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탑승했다. 괜히 쫄아있었던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런 쫄림까지도 여행의 일부로 즐기기로 했다. 창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타카치호에서는 좀 그치길 바라며 버스안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비오는 길을 뚫고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전원풍경>
벌써 네번째 보는 구마모토공항이 너무나 익숙해지고 있었다. 첫날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올 때 한 번, 다음날 구로카와 온천을 다녀오기 위해 오가며 두번, 그리고 이날 타카치호로 가기 위해 네 번째로 버스 안에서 공항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떠나면 집에 가기 위해 한번 더 만나게 되겠지.
타카치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이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거의 3시간 반 이상을 버스안에서 앉아있었던 것이다. 남큐슈의 동선이 길고, 초반에 열차가 아닌 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이번에는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길어졌다. 하루에 5시간 정도는 꼬박 교통편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거리가 멀어서 자가용을 이용했더라도 시간은 제법 걸렸겠지만, 사진을 찍는데는 훨씬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의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겠다고 하기엔 눈치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잠시 멈춰서 사진에 담고 싶은 멋진 풍경들이 있었지만, 버스에 타고있는 죄로(?!) 그저 눈에만 그득그득 담고있을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왠 외국인 관광객이 버스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사님이 일본어로 "영어가 되시는 분 안계시나요"하며 사람을 찾았고, 마침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통역을 해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통 영수증이 필요했던 모양인데, 영수증은 터미널에서 발권할때만 받을 수 있다는 기사님의 말을 전하니 납득한 모양이었다. 감사인사를 들으며 멋지게(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자리를 떴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일본어와 영어 사이를 통역하고 있자니 꽤나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맛을 즐기기 때문에 번역기보다는 언어를 익히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현지에서 현지인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새로운 경험인가.
밖으로 나와보니 해는 없었지만 쏟아지는 비도 없었다. 관광에는 이정도 날씨가 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물론 사진은 날씨가 맑을때 기똥차게 나오는 법이지만.) 터미널 좌측 건너편으로 관광안내센터가 있어서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사전지식으로는 이곳에서 전기자전거를 렌탈할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비도 오고 타카치호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험하다고 들어서 포기했다. 대신 안내소에는 타카치호 협곡 이외에 무언가 관람할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들어갔다. 건네받은 지도에는 멀찍이 다른 폭포가 하나 더 있어서 폭포덕후인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하였으나 갈 수 있는 방법이 택시 이외에는 마땅치 않고 금액도 상당히 드는 거리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입만만 다실 수 밖에 없었다. 대신 타카치호 신사와 아마노이와토 신사라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시간에 따라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가장 무난한 방법인 택시를 타고 타카치호 협곡에 가기로 했다. 터미널 앞에는 항시 손님을 태우기 위해 택시들이 대기중이기 때문에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앞선 네번의 여행에서는 택시를 한 번도 이용해본적이 없는데 다섯번째 오사카/교토여행에서 어머니와 이모님을 모시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던 것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아주 비싸다는 말을 듣고 무서워서 타보질 못했는데, 막상 타보니 사람수가 많으면 큰 부담이 아닐때도 많았고 거리만 적당하면 납득이 가는 가격일때도 많았다. 타카치호 협곡도 걸어가기엔 말도 안되는 거리였다는 것을 택시를 타고보니 알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탔어도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700엔 조금 넘는 택시비용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택시기사님은 명함을 주시면서 "돌아갈 때 연락을 주면 데리러 올 수 있다."고 했다. 교통편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된 나는 본격적으로 타카치호 협곡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타카치호 협곡 입구>
구불구불 길을 내려가다 보니 왼쪽으로는 절벽에 폭포가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연못이 보였다. 폭포도 꽤나 신기하다 할 만한 것이 돌 위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예전에 시즈오카의 시라이토 폭포도 이렇게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모습이었는데 화산지형의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상절리가 생길 때 그 틈새에 물이 들어찼다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여 물길이 생기면 저렇게 갑자기 바위에서 솟아 흐르는 폭포가 생긴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나 보던 주상절리를 산속에서 보는 느낌은 꽤나 색달랐다.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슬금슬금 걷고 있자니 연못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고 가까이 다가가니 깊이도 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안에 사는 물고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얕은 물에 몸이 채 잠기지 않은채로 헤엄치는 철갑상어의 위용이란 정말 대단했다. 크기가 최소 1미터 이상 되는 것들이 떼지어다니며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데 물가로 다가올때 솔직히 좀 무섭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물이 좀 더 깊어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으면 좋았을것을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쨌거나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좁다는 것은 꽤나 답답한 일일테니까.
<타카치호 철갑상어>
<타카치호 연못>
타카치호에서 하려고 계획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보트를 타는 것이었다. 보트라고 해서 모터보트 같은 것이 아니고 노를 저으며 협곡 사이를 지나가며 구경할 수 있는 보트다. 보트는 한정되어있는데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예약이 차버리면 세네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예약부터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행히 보트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정표로 안내도 잘 되어있었다. 주차장을 지나가니 매표소가 있었다. 다행히 그리 늦지는 않았는지 약 1시간 반 정도 뒤에 보트를 예약할 수 있었다.
사실 보트를 탈지말지 참 오래 고민했었다. 이유인 즉슨... 가족단위나 커플단위로 배를 타는 곳에서 혼자서 노를 저으며 배를 타는 것이 과연 괜찮을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뻔뻔한 성격은 되지 못하는지라 누군가 '어머 저사람 혼자 왔나봐.'라고 하면 마음의 상처를 입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일본이고, 나의 일본어 듣기 실력은 그 정도가 되지는 못한다고 믿었다. 잠시의 쪽팔림을 감수하면 평생 떠올릴 풍경을 담아갈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날 조금 뻔뻔해져보기로 했다. 다만 보트 렌탈료가 사람 수당이 아니고 배 한척당이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서럽긴 했다.
탑승시간까지의 1시간 30분 정도 되는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계곡 옆 산책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어서 궁금한 부분이 컸다. 걸어가면서 보니 옆으로 고카세강(五ヶ瀬川)이 흐르고 그 너머로 절벽이 펼쳐져있는데 화산에 의한 주상절리의 모습이 명확했다. 각진 기둥 사이사이에 가느다란 틈새가 보였고, 그 위로 용암이 흐르는 듯 한 물결모양 바위가 놓여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제주도의 주상절리도 멋지지만 이곳의 주상절리도 멋이 살아있었다.
<타카치호 협곡 산책로>
<타카치호 협곡 - 마나이 폭포>
<타카치호 협곡 보트타기>
<타카치호 협곡 상류>
자연의 신비란 참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용암이 흐르다가 어느 시점에 식기 시작하는데, 식는 과정에서 부피가 줄어든다. 이때 무작위로 온도가 식어서 굳는 중심점이 생기게 되고, 그 점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온도가 떨어진다. 그러면 용암이 중심점쪽으로 압축되고 서로 다른쪽과 경계는 선형으로 형성되면서 6각형이라는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공간이 구성된다. 이것이 주상절리의 형성과정이다. 물론 육각기둥은 아주 이상적인 경우의 형태고 삼각형, 사각형의 기둥도 생긴다고 한다. 육각기둥이 아니라고 해서 신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런 주상절리가 20km에 걸쳐서 협곡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잘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오르니 정면에 다리 세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스팟이 있었다. 거대한 자연경관에 다시 거대한 인간의 건축물이 섞여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첫번째 다리에 도착해서 좀 더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출발한 지 40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보통 내가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할 때는 그 시간을 반으로 쪼개서 갈 수 있는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한다.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으면 45분 정도는 무작정 가보고싶은 곳까지 가보고 남은 시간에는 돌아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여유롭게 사진을 찍다가 문득 시간을 알게되고나서 마음이 급해져서 올라온 산책로를 뛰듯이 돌아내려갔다.
<타카치호 3다리 촬영 스팟>
<타카치호 큐슈 올레 코스>
한참을 내려가 다시 산책로 입구쯤에 도착해보니 철갑상어가 헤엄치던 연못이 있었다. 지나면서는 보지 못했는데 돌아가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절벽쪽으로 연못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는 점이다. 절벽쪽에서 물이 흘러내리면 폭포처럼 보여야할텐데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생각했더니 저곳이 바로 마나이 폭포(真名井の滝)가 흘러내리는 곳이었다. 일본 폭포 100선에 포함된다는 마나이폭포는 사람이 돌을 쌓아 물길을 내놓은 인공폭포였던 셈이다. 약간의 배신감을 안고 배를 타는 곳으로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타카치호 마나이 폭포의 비밀>
배를 타는 곳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이야 2시 30분에 예약을 했다지만 어쨌든 나갔던 배가 돌아와야 대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야만 했다. 다들 가족단위, 커플단위로 온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자니 온갖 뻘쭘한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남자 둘이 타러 온 것보다는 낫겠지.'하는 마음이었는데, 남자끼리 온 팀은 반드시 세명 이상씩 꽉꽉 채워서 탑승했다. 뭐 그래도 이날은 뻔뻔해지기로 작정한 날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차례를 기다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나아갔다.
노를 젓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꽤나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는 어릴적 인천의 한 유원지에서 배를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서 쉽게 익숙해졌던 것 같다. 다만 좁은 통로에 배들이 지나다니다 보니 노가 얽히고 배끼리 부딫치는 등의 자잘한 불편함은 있었다. 특히 나는 혼자 노도 저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몸이 두개였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출발하는 시점에는 그리 깊지 않은 물 속에 물고기가 떼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위로 오리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헤엄을 치는데, 먹이와 사냥꾼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같아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물고기들은 오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그 아래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협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진 기둥이 양 옆으로 높다랗게 뻗어있는 모습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도 위압적인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신비스러움이 배가되었다. 절벽의 한쪽면은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해서 그런지 초록색 이끼가 잔뜩 끼인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조차도 매우 신기했다. 타카치호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기이한 자연경관들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신령스러운 장소로 인식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카치호 보트대여소 근처>
<겁없는 물고기와 배부른 오리>
<오리 샤워중>
<타카치호 협곡 보트타기>
<아래서 보는 뷰는 사뭇 다르다.>
<자연의 신비와 시간의 신비>
<배와 함께 노니는 오리들>
30분여에 걸친 뱃놀이를 마치고 육지로 올라오니 팔뚝이 땡기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코스는 길지 않아서 30분 정도면 두어번 왕복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배를 빌리는 값을 뽕을 뽑고 싶어서 중간의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미적거리면서 한참 둥실둥실 떠다녔기 때문에 30분을 꽉 채울 수 있었다. 타카치호에서 가장 보고싶었던 마나이폭포를 보았고, 배를 탄다는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하는 것들은 모두 보너스와 같은 것들이 될 터였다. 우선 타카치호 교통센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알고 있는 방법이랄게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택시에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지역상품을 판매하는 곳 옆에 붙어있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교통센터로 가는 방법을 슬쩍 물어보았다. 택시회사에 연락을 하는 방법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 싶어 가볍게 여쭈어보았던 것인데, 아주머니께서 대뜸 가게를 나서며 따라오라고 하셨다. (날이 더워 아이스크림 손님이 줄을 잇는데 다른 한 분께 가게를 맡기고 자리를 비우셔도 되나 싶어서 참으로 송구했다.) 지역상품매장 안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가더니 그곳에 계시던 안내원 두 분과 교통센터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대 토론회를 펼치기 시작하셨다. 택시회사에 연락정도 넣어주시려나 싶었던 그분들은 '토요일에는 버스가 있다.'며 택시를 타기보단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게 어떻겠냐며 시간표를 건네주셨다. 나같은 짠돌이 여행객에게는 그렇게 돈을 아끼게 되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른다. 인사를 거듭거듭 올리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냉큼 올라탔다. 평일에는 운행하지 않는 버스라니 참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버스비는 200엔인데 토요일만 운행하고, 심지어 산큐패스 사용이 가능했다.) 창밖에는 방금 길을 알려주신 분이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 계셨다. 인사로밖에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아까웠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가방에 챙겨온 답례품이 생각나서 더더욱 안타까웠다. 이런 친절이 관광객을 다시 그 장소로 불러오게 하는 것 같다. 누군가가 길을 물어온다면 나도 그 사람이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알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요즘에 길을 묻는 척 하면서 도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져 누군가의 선의를 이용해먹으려 하는 사람이 많아 큰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타카치호 지역상품 직판장>
교통센터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에 타카치호 신사에 들르기로 했다. 타카치호 신사는 타카치호 마을 중앙부에 위치한 신사인데, 역사적인 정보를 찾아보니 자료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 다만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삼나무의 수령이 800년이라는 점 등을 들어 역사가 제법 오래되었지 않았겠는가 유추해볼 수 있었다. 타카치호가 천손강림신화와 관련된 땅이라는 설이 있어서 이곳에 신을 모시는 여러가지 춤과 음악들이 전승되고 있는데, 33개의 카구라(신락神樂)중 4개의 카구라를 밤마다 신사에서 공연한다고 한다. 공연 시작시간이 오후 8시라서 6시에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하는 나는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신사는 전체적으로 거대한 나무들로 이뤄진 숲에 싸여있었는데 덕분에 어둑어둑한 느낌이 강했다. 야트막한 계단을 오르니 신사 본전 주변에 엄청난 높이의 삼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수령과 높이를 기록한 팻말이 나무 앞에 있었는데, 55미터에 800년짜리 나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삼나무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가 삼나무라는 점이다. 기네스에 올라있는 현생 세계 최고(最高) 높이의 삼나무는 아메리카 삼나무로 높이가 83미터에 이른다. 무게는 천톤에 이른다고 하니 이런 나무가 쓰러진다고 생각해 보면 지진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기록상 최고높이 나무는 111미터였다고 하니(꼭대기가 부러져서 현재는 높이가 낮아졌다고 함) 정말 무시무시한 성장인 셈이다. 숫자로 보면 크게 다가오지 않지만,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느꼈던 운동장의 광활함을 생각해보면 100미터짜리 나무가 수직으로 솟구쳐있는 장면은 정말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가장 뚱뚱한 나무의 둘레는 시칠리아의 유럽밤나무로 둘레가 58미터라고 한다.)
<타카치호 신사>
<타카치호 신사>
<타카치호 신사 고목>
<타카치호 무궁화>
<타카치호 신사 입구>
신사에서 교통센터까지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지도상에 가까운 곳이라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시작했는데, 도로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이 시간대의 도로가 너무나 더웠기 때문이리라. 고령화사회인 일본에서도 특히 시골마을은 고령의 시민들이 더욱 많게 마련이라 이런 날씨에 함부로 돌아다니시다간 건강을 헤치기 딱 좋다. 나도 나름 젊음을 무기로 여행을 하고는 있지만, 이런 날씨에는 수명을 깎아먹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니 말이다. 900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서 다시한번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에어컨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모두 에어컨의 발명가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가 에어컨을 만들었음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캐리어 에어컨의 그 캐리어 맞다.)
<타카치호 마을 풍경>
헉헉거리며 교통센터에 돌아와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가 시간을 조금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4시 30분 정도에 버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6시 55분이나 되어야 다음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원래 착각하고 있는 시간과 비교해서도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상황이어서 남은 시간에 다른 곳을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전에 조사했던 아마노이와토 신사(天岩戸神社)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버스 시간표가 워낙에 띄엄띄엄이라 가는건 가더라도 제시간에 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항상 고민의 시간에 나의 선택을 빠르게 해주는 것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 또 오겠나.'라는 마음가짐이다. 돈을 좀 더 쓰더라도 한 번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소중히 하기로 했다. 택시기사분께 아마노이와토 신사까지 가는데 금액이 얼마나 나올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조심스레 여쭈어보니 정확하게 1860엔쯤 나올거라고, 관람하고 나오면 버스를 탈 시간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택시 금액을 물어보았는데 의도를 파악하고 돌아오는 버스시간까지 말씀해주시는 친절함에 두말않고 그 택시를 타기로 했다.
목적지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기사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간신히 대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퍽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특히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보통 한국인들은 후쿠오카가 있는 북큐슈는 많이 찾아도 남큐슈는 많이 찾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고, 특히나 남큐슈는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택시를 타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려웠던게 아닐까 싶다. 남큐슈를 여행하면서 어디서 온 분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한국이라고 대답할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 것을 보면서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왜 일본에 여행을 왔느냐는 질문에 '일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고 대답했을 때 기사님의 놀라움은 최고점을 찍는 것 같았다.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한국을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일본이 현재 한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쌓아올린 역사적 성과들을,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역사적 상처를 쉬이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그 직접적인 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의는 또 다른 적의를 불러오는 일이지 않은가.
기사님과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택시가 가는 시간은 더디게 느껴졌다. 아마도 미터기 속도가 미친듯이 올라가는 것이 시간의 속도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기사아저씨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미터기가 1860엔을 찍자 미터기를 멈추고 남은 거리를 달려주셨다. 여러가지로 감사한 분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관광객이 거의 다 빠져나간 막바지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가는 사람만 이따금씩 보이는, 이곳이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인지, 그리고 내가 찾던 곳이 맞기는 한지 의심이 들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다지카라오노미코토>
일본 신화에 의하면 이자나미(伊邪那美)와 이자나기(伊邪那伎)의 자식 중 하나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는 그 형제자매로 스사노오}(素戔嗚)와 츠쿠요미(月夜見尊)가 있다. 기본적으로 태양을 관장하는 신이었던 아마테라스는 동생 스사노오가 자신의 신전에 똥을 뿌리고, 그녀가 옷감을 짜던 베틀에 말가죽을 벗겨 던지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자 아마노이와토(天の岩戸)라는 동굴에 은신해버리고 말았다. 태양이 없어지자 신들은 발칵 뒤집혀 회의를 했고, 그녀를 다시 끌어내는 작전을 세우게 된다. 무녀 아메노우즈메(天宇受売命)가 알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자 신들이 깔깔대며 웃었고, 이 웃음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아마테라스가 문을 슬쩍 열어 '내가 없는데 뭐가 그리 즐거워 웃어대는가?'며 관심을 보인다. 아메노우즈메는 '당신보다 존귀한 신이 나타나서 웃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슬쩍 거울을 갖다대니 아마테라스는 그 신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밖으로 빼내고 말았다. 그때 다지카라오노미코토(手力男命)라는 힘이 장사인 신이 그녀를 붙잡아 밖으로 끌어내니 다시 태양이 돌아왔더라는 이야기다.
이 어렵기 그지 없는 이름들이 생각보다는 익숙하게 들려오는 것은 아마도 유명만화 '나루토'의 힘이 큰 것 같다. 그곳에 나오는 주인공의 기술 이름에 이자나미, 이자나기, 스사노오, 아마테라스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오래된 문화를 계속 발굴하여 새로운 컨텐츠로 만드는 것, 그것이 일본 문화컨텐츠의 저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천손이 강림한 땅인 타카치호 곳곳에는 이와 관련한 것들이 많다. 우선 아마노이와토 신사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주차장에는 커다란 바위를 들고있는 도깨비같이 생긴 조형물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테라스를 끌어냈던 힘좋은 신 '다지카라오노미코토'를 표현한 것이다. 조금 들어가면 배우 '김혜자'를 떠올리게 하는 온화한 미소로 쌀과 벼를 들고있는 여인의 동상이 있는데, 이는 '아마테라스'라고 한다. 웃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동굴을 나오다니 너무 천진난만한 신이 아닌가 싶었는데, 동상을 보면 상상의 산물이겠지만 그런 순박함이 느껴지기는 한다. 아무래도 태양을 관장하는 신이니 곡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싶다. 이외에도 타카치호 신사 길 건너편에 있는 춤을 추는 석상은 아마테라스를 끌어내는데 일조했던 무녀 '아메노우즈메'이고, 그 석상이 이 아마노이와토 신상에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는 보지 못했다.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
일본 신토사상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라 신사의 크기는 제법 컸다. 차로도 찾아오기 힘든 구석진 곳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다. 이정표를 살펴보니 내가 보려고 했던 아마테라스가 숨어있었던 동굴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보였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고려하면 약간은 빠듯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신사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신사를 통과하고 일반 도로도 약간 걷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동굴로 가는 길이 나왔다. 관광품 상점들도 거의다 문을 닫고, 일본 명승지라면 반드시 존재한다고 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만 몇몇 문을 열고 있었다. 산속 깊은 골짜기라 해도 슬금슬금 지는 느낌이 나서 마음이 더더욱 급해졌다.
이정표에서 가깝다고 느꼈던 것과는 달리 동굴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계곡이 흐르는 옆을 따라 습기와 이끼가 가득한 길을 조심조심, 그러나 급하게 한참을 내려갔는데도 동굴이 나올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아예 멀다고 생각하고 걸었으면 그렇게 마음이 급하지 않았을텐데 가깝다고 생각하고 걸었더니 조바심이 생겼던 것 같다. 콘크리트로 만든 아치모양의 다리도 건너고, 계곡(과 시내의 중간정도 되는 규모의 물길)이 갈라졌다 합쳐지기를 여러번 거치고 나서, 아직 멀었나 싶은 생각으로 코너 하나를 돌았을 때 비로소 나는 아마노이와토 동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마노이와토 신사 입구>
<아마노이와토 신사 본당>
<동굴 가는 길>
<동굴 앞 계곡>
그곳은 동굴의 길이가 깊다기 보다는 커다란 광장같은 크기의 동굴이었다. 사방에서 우거진 나무들의 뿌리가 동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높은 습도로 벽과 바닥이 이끼로 뒤덮인 것은 신비로운 풍광을 한층 더했다. 그 속에 자그맣게 놓인 도리이와 신사가 어둠속에서 고요하게 놓여있었다. 그 바로 앞으로는 제법 세찬 물살이 동굴을 스치듯 곡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화룡점정은 사람들이 이 곳에 도착하여 소원을 빌며 하나씩 쌓았을 돌들이었다. 신사에 드나드는 길 두줄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소망이 켜켜이, 그리고 빼곡히 쌓여있었다. 자연의 조화와 인간의 소망이 합쳐져 아주 묘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연출되고 있었다. 사람도 없는 그 압도적인 공간에서 이따금씩 매미우는 소리만 들려오는 신비함에 나는 돌아가야 하는 시간도 잊고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신화의 장면들을 머리속으로 그렸다. 동굴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아마테라스, 그리고 그 근처에서 그녀를 끌여내려 하는 다지카라오노미코토, 그리고 계곡을 뒤로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아메노우즈메의 모습을 상상했다. 잠시 뒤 늦은 관광객들이 도착했고, 나는 잠시 구경꾼 신이 되었던 것에서 버스를 타야하는 여행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노이와토 동굴>
동굴에 갈때는 내리막이라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이 오르막이 되다보니 더위가 새삼 느껴졌다. 헥헥대며 올라가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구멍가게 앞에 놓인 벤치에 가방을 놓고 휴대용 선풍기로 바람을 쐬었다.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휴대용 선풍기였는데 이것을 가져가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가히 상상히 가지 않았다. 그만큼 제값을 하는 착한 소비였다고 자부한다. 여름에 일본을 간다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추천을 할 생각이다.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시원한 포카리스웨트 한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키니 잠시나마 더위를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더위를 계속 잊어보겠노라고 계속 마시다보니 배가불러서 이날도 저녁시간은 10시 이후로 미뤄지겠구나 싶었다.
문득 앉아있는 건너편을 보니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려있었다. 이미 운젠에서 십자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 이곳도 무슨 교회같은 곳인가 싶었다. 십자가에 칠해진 페인트에 뭐라고 글씨가 쓰여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말라서 조각나 너덜너덜한 페인트자국에서 글씨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영 어려웠다. 무엇하는 장소인지 한참을 궁금해하다가 그것이 십자가가 아니고 약국의 십자마크임을 알았다. 약국이라는 글씨가 바로 아래 적혀있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십자가에 적힌 글자도 '쿠스리-약'인 것을 알 것 같았다. 모르고 돌아갔더라면 계속 궁금해서 찜찜했을수도 있어서 그 순간의 앎이 제법 즐거웠다.
다행히 예정된 시각에 버스가 잘 들어와서 냉큼 탑승했다. 에어컨을 만나게 될때마다 에어컨에게 참으로 감사했다. 남큐슈의 여름은 그만큼 잔인할 정도로 더웠다. 더위에 팔려나갔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자 그제서야 바깥의 풍경이 느껴졌다. 버스 차창 밖으로는 한창 자라고 있는 초록빛 다랭이논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두달 정도면 노랗게 변해 또 다른 풍경을 선물해주겠지. 그 풍경을 보게 될 사람이 벌써부터 부러워졌다.
<아마노이와토 신사 근처 마을>
<십자가인줄 알았는데 약국마크>
<버스 밖 푸른 다랑이논>
교통센터에 도착해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버스를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구마모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건너편, 남큐슈의 서쪽에 위치한 노베오카(延岡市)로 가야했다. 예전에는 이 타카치호에 역이 있어 기차로 드나드는 방법도 있었다고 하는데, 태풍으로 철로가 유실되는 바람에 철도회사가 망해서 이제는 불가하다고 했다. 결국 노베오카로 가는 방법은 버스뿐인데, 그 버스의 막차를 놓치면 빼도박도 못하고 타카치호에서 노숙을 하던가 숙소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마지막 버스는 반드시 타야만하는 그런 존재였다. 문제는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1시간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어딘가에서는 1시간 20분이 부족해서 보고싶은 것을 보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실제로 여행 후반부에 그런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 아쉽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근처에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볼 만한 것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는 편이다. 이날은 한번 더 힘을내서 남은 시간에 교통센터 근처에 있는 쿠시후루신사(槵觸神社)에 다녀오기로 했다. 왕복 4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도착해서 경내를 둘러볼만한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 신화이야기가 한 번 더 나오는데, 이번에는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의 이야기이다. 일본 천황가의 직계시조라고 하는 니니기는 비단 보자기에 싸여 이 쿠시후루에 강림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가야의 김수로왕이 구지봉에 강림했다는 탄생설화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니니기는 강림한 자리에서 '韓國이 보여서 좋다.'고 말하고 있는데, 일본 서기에서 한국의 발음을 가라구니로 하고 있고 이것이 가야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타카치호에는 가라쿠니타케(韓國岳)이라는 1700m짜리 봉우리가 있다. 벼농사 기법을 들고 간 한반도인이 일본 천황가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쿠시후루신사가 무엇을 모시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달리 보인 것은 사실이다. 점심께의 과격한 노젓기로 피곤한 몸이었지만, 억지로 찾아가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도로 옆에 산을 타고 오르는 구조로 되어있는 쿠시후루신사는 마침 사람이 아무도 없어 꽤나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게다가 저녁매미 울음소리가 그 분위기를 완성시켜주고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쓰르라미 울 적에'는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들과 그 배후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마추어 게임으로 시작된 것 치고는 엄청난 반전의 스토리와 으스스한 연출이 압권인 게임으로 나중에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까지 나올 정도였다. 나는 이 작품을 모두 섭렵(?!)하며 즐겼던 기억이 있는데, 이 게임의 주요 연출 중 하나는 '저녁매미의 울음소리'이다. 우리나라 매미소리와는 아예 형태가 다른 울음소리인데, 공포물로 그 소리를 접해서 그런지 이 신사에서 그 매미소리를 들었을 때 '여름이구나'하는 느낌보다는 '누가 죽는건가.'싶은 느낌을 받았다면 약간은 과장된 이야기일까. 아무튼 신사 전체에서 그 저녁매미 소리가 들려와서 오싹오싹했다. (원작에 의하면 저녁매미 울 적에가 맞는데,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팀이 쓰르라미로 번역하면서 국내에는 '쓰르라미 울 적에'로 알려져 있다. 쓰름매미의 소리가 아니라 저녁매미의 소리를 찾으면 어떤 소리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으스스한 쿠시후루 신사>
<쿠시후루신사 입구>
<다리가 절로 두꺼워지는 타카치호 소학교 계단>
시간이 되니 버스는 어김없이 도착했고, 나는 타카치호를 뒤로해야 했다. 내리는 분 중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지 운전기사님과 한참 실랑이를 하셔서 뙤악볕에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버스에서는 우유 토한 내음이 가득했다. 아마도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온 가족 중 한분이셨던 모양인데, 청소비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 자리에서 토했는지 앞쪽에 냄새가 가득하기에 가장 뒤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에어컨을 포기할 수는 없어 창문을 열지는 못했다. 뭐 살다보면 항상 완벽하게만 굴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토 내음에 내가 토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노베오카로 넘어가는 길에 이런저런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해가 지고나니 버스 밖은 온통 암흑 투성이었다. 건물이 있는 동네를 지나치는 것이 아니고 숲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길이다보니 흔한 가로등 하나 볼 수 없었다. 밖을 볼 일이 없으니 눈을 붙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바다를 마주한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노베오카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제는 베이스캠프가 없는 진짜배기 떠돌이생활이 된 셈이다.
<노베오카 가는 길>
사실 노베오카에서 숙소를 잡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노베오카 숙소를 찾아보는데, 워낙에 작은 도시라 관광 숙박업소가 잘 마련된 곳이 아니었던 탓이다. 한 숙소는 역에서 대단히 가깝고 가격도 저렴했는데 APA의 호텔체인이었다. 일본 극우세력이 운영하는 호텔로 객실에 혐한 서적을 비치하는 등 문제가 많은 곳이다. 역에서 한참 걷더라도 그런곳은 묵고싶지 않아서 다른 숙소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겐로쿠엔(兼六園)이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거리도 500m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호텔이 아니라 '園'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좀 찜찜했으나 일단 호텔스닷컴에 등록된 것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노베오카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제법 늦어있었다. 밤길을 헤치고 구글지도를 봐가며 숙소에 도착했다. 우선 들어가는 구조부터 그동안의 호텔과는 상당히 달랐다. 카운터에서 종을 치고 사장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에 중년의 여주인분께서 나와 방을 안내해주었다. 길 안내를 상세히 하셨는데 그 이유를 몰랐다가 방까지 가면서 알게 되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식당이고 오른쪽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야 했다. 삐그덕거리는 마루로 된 복도를 걸어가면 다시 두 갈래길이 나오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 길과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내려가는 길에는 대욕장이 있어 목욕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왼쪽길로 들어가 세개의 문 중에 정면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내 방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현장에서는 상당히 넓고 복잡한 길이었다. 밖에서 보았을때는 그렇게 넓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oo장 정도 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법 일본여행을 많이 다녀보았지만서도 상당히 독특한 구조의 숙소였다.
개인욕실이 따로 없는 곳이라 대욕장에서 가볍에 씻고나니 더위에 흐른 땀으로 찐득했던 몸이 다시 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제서야 식욕이 돌기 시작해서 숙소 밖으로 나가 편의점을 찾았다. 양념된 돼지고기가 올라간 도시락을 사고 카운터에 서니 스낵바의 고로케 내음이 침샘을 자극했다. 세개를 주문했는데 주문받는 분이 실수로 네개를 넣어버렸는데, 그것을 정정할 만큼 정신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냥 네개를 사서 나왔다. 역시나 다 먹지 못하고 두개가 남아버렸다. (다행히도 이 두개는 다음날 그 역할을 다 해 주었다.) 드라마 한편을 보며 콜라맛 호로요이를 홀짝이니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내일 방을 나서면 노베오카에 올 일은 없다. 스쳐가는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다음날을 궁금하게도, 불안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역시 베이스캠프를 정해서 돌아다니는 것이 긴 여행에서는 더 좋은 것 같긴 하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이 계속해서 즐겁기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노베오카에서 먹은 편의점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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