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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큐슈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8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8. 5. 26. 19:59
여행 마지막날의 아침이 밝았다. 일본의 매력에 푹 빠져서 벌써 여섯번째 일본 여행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날의 느낌은 항상 똑같았다. '이제 돌아가야 하는구나. 이 곳을 다시 보러 올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가기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주던 이 이국적인 풍경들을 이제 추억속에서만 찾게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음번 여행을 할 때가 오면 나는 또 새로운 여행지를 찾을테니 이 곳에 다시 올 확률은 매우 낮다. 내가 결정하면서도 그 사실이 못내 서운한 것이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 3시반이라 1시반까지는 공항에 도착할 필요가 있어서 관광은 오전 정도만 가능할 것 같았다. 구마모토성 바로 옆에 숙소를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전날 체크인할때 받아두었던 식권을 들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16년 이전에 포스팅된 게시물들에서는 이 KRR호텔의 조식부페에서 보이는 웅장한 구마모토성의 풍경이 멋들어진다. 구마모토성까지 중간에 걸리는 것 없이 완전한 조망권이다. 호텔의 자랑이었을 뷔페였겠지만 지금 구마모토성은 공사장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흉물스러운 풍경만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좀 무너져 있더라도 가림막이 없는 모습을 기대하며 조식부페를 신청했던건데 아쉬움만 더해갔다.
2016년 4월 14일 밤 구마모토에 리히터규모 6.3의 강진이 몰아쳤다. 이 지진으로 9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했다. 그러나 이 지진은 전진이어서 이틀 뒤인 16일 새벽 리히터규모 7.3의 본진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39명이 추가로 사망, 110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현대에 들어서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라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상자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도로, 철도 등이 유실되고 문화재가 파괴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나는 이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6월에 뜨는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매해둔 상황이었다. 당시 후쿠오카 취항 기념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었는데 이 지진으로 취항계획이 무효화되면서 항공권이 취소되고 말았다. 내 계획은 후쿠오카에 들어가 북큐슈레일패스로 구마모토까지를 보는 것이었는데 선로가 끊기고 여진의 문제도 있고 해서 결국 구마모토를 제외한 북쪽만 돌아다녔다. 결국 남큐슈에 미련이 남은 나는 올해 이렇게 구마모토로 들어오게 되었고, 아쉽게도 완전한 모습의 구마모토성은 구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카메라 하나만 둘러맨 채 산책하듯 구마모토성으로 이동했다. 동네 주민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었다. 아직 관광객이 올만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아니 그 전에 관광지라고 할 수가 있는지도 의문이긴 했지만. 호텔 바로 근처의 입구로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자니 멀리서 보았을때보다 훨씬 처참하게 무너진 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과 천수대 이곳저곳이 무너져 있었고 나무구조물들도 뒤틀리거나 쪼개져 있었다. 아마도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구마모토성은 어떤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것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상당히 자존심도 상하고 씁쓸한 일일 것이다. 우리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남대문을 잃었던 일화가 있기에 문화재의 손상에 대한 슬픔에 공감이 갔다.
무너진 구조물을 곧바로 복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우선순위를 정한 뒤에 차례차례 복구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성벽에서 굴러떨어진 돌들도 번호를 매겨서 늘어놓았고, 자잘한 돌들은 커다란 검은 봉지에 모아 떨어진 자리에 배치해두었다. 19년까지는 우선적으로 천수각을 복원하고 20년에 걸쳐 성 전체를 복원하는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하니 이들의 철두철미함을 본받을만 하다. 졸속으로 복원해서 목재가 뒤틀리고 갈라지는 우리나라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구마모토성에 대해 좀 알아보자면 '가토기요마사(加藤清正-가등청정)'가 축성한 성으로 유명하다. 완전히 새로 지은 성은 아니고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 통일 이후 기요마사에게 구마모토의 봉토를 하사하였는데, 이때 기존에 있던 성을 확대 개조했다고 한다. 가토기요마사는 임진왜란에 선봉장으로 참여한 전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나쁜놈의 대명사같은 인물이다. 실제로 구마모토 봉토를 하사받은 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기요마사는 곽재우에게 패배한 후 울산에 왜성을 짓고 처참한 농성전을 펼친 적이 있다. 이때 아군의 시체를 먹고 말피를 마셔가며 결국 원군이 올때까지 살아남아 귀국했는데, 이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성 만드는 달인이 되어 구마모토성을 축성했다고 한다. 농성 당시의 굶주림에 치를 떨었는지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도시락을 지참하게 했고, 성내 다다미방을 만들 때 토란줄기를 엮어 짜게 했으며, 성벽엔 주렁주렁 조롱박을 키우고 성내엔 우물을 120개나 파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성이지만 자식인 가토 히로타다 대에서 에도막부에 숙청되면서 호소카와타다토시(細川忠利)에게 넘어가게 된다. 성이 잘 만들어지기는 했던지 앞서 센간엔 설명할 때 언급했던 서남전쟁때 정부군이 점거하고 농성을 펼쳤고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군대가 여러번에 걸쳐 함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역사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성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성(名城)인데 사실 지진으로 무너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1623, 1854, 1889년에 차례로 지진에 무너진바 있고, 서남전쟁 중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여 현재의 천수각은 1960년에 철근콘크리트로 외형만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옛 것이 아닌 새로운 자재로 만들었으니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문화라는 것은 물건에 기초한다기 보다는 그 안에 있는 조상의 정신을 승계한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복원을 한다고 옛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외형으로 당대의 미적 감각을 전하고 지리적 의의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문화개 복원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에 공감하는 바가 있기에 구마모토성의 복원을 바라는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 아닌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도착한 카토신사(加藤神社)는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을 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예전에 오사카성 천수각을 보고 '일본 천수각은 다 으리으리 하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니 그렇게 큰 천수각은 의외로 찾기 쉽지 않았다.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은 3대 명성에 꼽힐 정도의 규모와 멋을 자랑하고 있고, 그 웅장함을 느끼기에 카토신사는 꽤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근처에 도착하는데 어디서 윙윙소리가 나기에 쳐다보았더니 드론이 있었다. 상황을 보니 복원중인 구마모토성을 배경으로 공중에서 팽이를 돌리는 곡예를 촬영중인 듯 했다. 아마도 구마모토 지진 피해 복원을 응원하는 어떤 영상물의 촬영이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알록달록한 팽이를 공중에서 연신 돌려대는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가토신사 공연 촬영중>
<공중에서 돌리는 팽이>
<무너지기 전의 구마모토 성>
<복원중인 구마모토 성>
<가마다세(간바레-힘내라 의 구마모토 사투리) 구마모토라고 쓰인 쿠마몬 달마상>
<구마모토성 소천수는 외형이 남아있다.>
<봉투에 담아 쌓아놓은 붕괴 잔여물>
<밑단이 무너진 망루>
<행사가 있는 것인지, 성내 전시물을 밖으로 빼둔 것인지 모르겠다.>
<멀리서 본 구마모토 성>
<심하게 무너진 모습>
<관광 안내소에서 만난 붕괴 전 모형>
<안내소의 구마모토 깃발>
복원중인 성에는 아쉽게도 들어갈 수 없어서 성을 크게 돌며 관람만 했다. 그러다 내려오는 길이 어떤 상점가와 닿아있어서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사쿠라노바바 죠사이엔(桜の馬場 城彩苑-벚나무마장 성채원)이라는 이름의 이 장소는 구마모토성 축성 400주년을 기념하여 에도시대 구마모토 거리를 재현한 일종의 아케이드다. 완전히 상가로만 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구마모토 문화를 소개하는 장소와 관광안내소가 결합된 모습이었다. 내가 갔을 때는 시간이 너무 일러서 아지 상가가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았다. 사람도 너무 없어서 구경하기도 뻘쭘하고 하여 스치듯 지나온 아쉬운 장소가 되고 말았다.
<사쿠라노바바 죠사이엔>
<죠사이엔의 쿠마몬>
<죠사이엔의 입체 쿠마몬>
<죠사이엔 입구>
<구마모토성 해자(? 개천?)>
<가토기요마사 동상>
죠사이엔을 나와 미리 봐두었던 돈키호테로 가는 길에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서 있었다. 앞서 카토신사도 가토 기요마사를 모시는 신사이기도 하고, 구마모토 자체가 가토 기요마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곳이긴 하다. 가문의 문장인 뱀눈알이 새겨진 높다란 투구를 쓴 그 모습으로 시대의 영웅을 표현하려 한 듯 싶었다. 한민족의 후예인 나에게는 영 기분나쁜 동상일 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바보같이 두 번째 침략을 당한 역사가 있지만 세 번째 침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릴 수 밖에.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날 쇼핑리스트는 이미 충분히 작성해 둔 데다, 본의 아니게 쇼핑을 한 번 연습한 셈이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뚫고 쇼핑을 할 수 있었다. 돈도 넉넉히 챙겨왔고 여권도 들고 와서 마음편하게 쇼핑을 했다. 호로요이도 10캔을 사서 쟁여놓았다. 한 달에 한 캔씩 마신다고 치면 다음번 여행때까지 이 여행자의 기분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인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2캔이 남아있다.) 신나게 쇼핑을 하고 보니 아이봉(눈세척제)과 호로요이 등 액체류가 너무 많아 도무지 들고갈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다. 전날 KRR호텔까지 걸어갔다가 진을 다 뺐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거리가 가까워서 생각보다 금액이 크게 나오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잽싸게 한번 더 씻고 귀국용으로 남겨둔 마지막 뽀송뽀송한 한 벌을 쫙 빼입었다. 산뜻한 마음이라 바로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쇼핑을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포기하려고 했는데 일사천리로 진행된 터라 마지막 남은 관광지를 다녀오기로 했다. 다만 체크아웃 시간까지 돌아오긴 어렵다고 판단되어 미리 체크아웃을 해두기로 했다. 캐리어에 사온 것들을 바리바리 집어넣고 보니 묵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뿌듯한 마음 반, 곤란한 마음 반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로비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며 짐을 잠시 맡겨두기로 했다. 코인락커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았지만 결국 다시 이 곳에 와서 짐을 챙겨가야 한다는 점이 좀 두려웠다.
<구마모토 노면전차>
<노면전차 타고 스이젠지 가는 길>
노면전차를 타고 도착한 마지막 관광지는 스이젠지(水前寺)정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가토 기요마사의 가문이 2대째에 개역당하고, 이후 이곳의 영주가 된 호소카와 가문의 타다토시(細川忠利)는 아소산부터 복류로 흐르던 물이 솟아난 호수가 있던 자리에 스이젠지라는 절을 지었다. 이후 절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차실이 건설되어 호소카와 가문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조경하기 시작한 것인데 나중에는 동해도오십삼차(일본 동해를 잇는 도로에 있는 53개의 역참, 이 주변에 멋진 풍경이 많다고 전해진다.)를 상징하도록 꾸미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스이젠지조슈엔(水前寺成趣園)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도연명의 시에서 언급된데서 붙은 이름이다. 옛 시조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게 된다.
<스이젠지 앞 상점가>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일본에서도>
<스이젠지조슈엔 입구>
표를 끊고 경내로 들어가니 넓은 호수를 두고 건너편으로 녹색의 잘 깎인 언덕들이 보였다. 곳곳에 둥글둥글하게 깎인 나무들 사이로 자작자작소리를 내는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가면 위로 둥글게 굽은 일본식 다리가 보인다. 멀리는 누가봐도 후지산을 형상화한 듯한 언덕이 보였다. 옛날에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이상향이란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조용한 가운데 물이 졸졸 흐르고 비단잉어가 노니는 곳. 반듯반듯하게 정돈된 풀과 나무가 지평선을 넘어 산까지 맞닿아 있는 곳. 예전에는 논밭이라서 멀리 아소산 등을 배경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제는 변에 맨션같은 것들이 들어서서 차경은 모두 가려져버렸다.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이만만 해도 내겐 꽤나 힐링을 주는 풍경이었다. 눈이 건강해지는 것 같은 8월의 짙은 녹음은 덤이었다.
<스이젠지 공원 호수>
<스이젠지공원 잘 꾸며진 정원>
<녹색이 가득한 스이젠지>
<노면전차를 타러 나가는 길에 만난 투박하지만 귀여웠던 쿠마몬>
다시 노면전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캐리어를 챙겨들고 교통센터로 향했다. 처음 이틀과 마지막 하루, 8일 중 3일을 구마모토에서 보냈으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은 구마모토인 셈이다. 덕분에 정이 좀 들었던 모양이다. 안녕을 고해야 하는 곳인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서도 피로한 눈을 감지 못하고 계속 풍경을 눈에 주워담았다. 역대 일본여행에서도 가장 더웠던 이 시간을 나는 뜨겁게 기억할 것이다. 몸이 뜨거웠던 것은 물론이고 마음도 뜨거워졌던 것 같다.
구마모토의 국제선 청사는 정말 단촐했다. 기본적으로 내국인들이 이용하는 것이 목적인 공항이라 국내선은 꽤 크고 잘 되어있지만 국제선은 정말 '간이'라고 이름 붙여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특히 마지막 로비를 지나 대합실에 들어가면 매점같이 생긴 면세점 하나가 있을 뿐이고, 자리에는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앉을 곳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나오는둥 마는둥 해서 다들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원한 로비에서 좀 더 버티다가 올걸'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수백번 되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 마저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면 꽤 재미난 추억이 된다는게 신기하다.
가고시마에서 채우지 못했던 가챠의 욕망을 다행히도 구마모토공항 로비에서 조금 채울 수 있었다. 특히 구마모토에만 있을법한 쿠마몬 스탬프 뽑기에 남은 동전을 거의 다 쏟아 붓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 200엔을 기계가 꿀떡 삼켰는데 어디에도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어서 피같은 내돈을 포기하고 말았다...) 3종세트인데 10개가까이 뽑았는데도 세트구성이 안되어 결국 포기했다. 분명 11번째로 뽑은 누군가는 내가 원하던 그 녀석을 뽑아갔겠지. 뽑기란 이런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여기서 포기하지 못하면 10개를 더 뽑고 눈물만 흘리게 되는 일도 빈번한 것이다. 이번에 뽑은 10개도 2개만 내가 갖고 8개는 전부 주변에 줬다. 가챠는 이럴때는 좀 좋다. 주변에 인심쓰며 나눠주기 좋은 것이다.
<구마모토현 캐릭터인 쿠마몬과 아소구마모토 공항의 마스코트>
이윽고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온 탓일까, 자리를 날개 옆으로 배정받아 좀 아쉬웠다. 귀국하는 하늘에서 내가 돌아다녔던 땅을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난데 말이다. 반짝이는 비행기 날개에는 하늘이 비쳐서 마치 물처럼 보였다. 그래선지 잠자리가 연신 날개 위에 알을 낳았다. 꼬리로 비행기 날개를 톡톡 건드리며 다니는 것이다. 저 잠자리는 결국 후대를 남기지 못하고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 옆이라서 재미난 구경을 했다. 이런걸 보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비행기 날개에 알을 낳는 잠자리>
<출발하는 비행기>
여섯번째 일본여행을 했다. 아주 유명한 두 지역인 도쿄, 오사카를 시작으로 점점 구석진 곳을 찾아다녔다. 비행기표값이 싸다는 이유 말고 나는 무엇때문에 일본에 이렇게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일까? 무엇이 에어컨 있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돌이인 나를 나오게 하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 내게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이런 것들이 나를 다시 일본에 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8월의 남큐슈는 참으로 무더워서 몸무게를 2kg쯤은 그곳에 두고 온 것 같다. 하지만 그 많은 곳들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느꼈기에 나의 지식과 생각이 2kg쯤은 늘어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다시 이 나라를 찾을 것이다. 애정과 증오가 함께 하는 이 나라에서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서 한국을 보고, 한국은 괜찮은 곳이며 우리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보고 싶다. 지금은 이 정도에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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