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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여행 - 7일차 (아라시야마, 도게츠교, 텐류지, 은각사, 철학의 길, 치쿠린)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5. 6. 20. 12:18
1. 여행편
교토 북서부에는 아라시야마라는 곳이 있습니다.
한자로 람산이라고 되어있는 곳입니다.
일본 연예인을 좀 아시는 분들은 '아라시'를 아실텐데 같은 의미입니다.
아라시에는 폭풍우, 혹은 산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산바람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느낀 아라시야마 지역의 느낌이 아지랑이와 산바람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와라마치역의 모스버거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메뉴에 밥이 있길래 시켰더니 계란이 들어간 밥버거에 사이드메뉴로 된장국이 나오더군요.
아침을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때우다가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국물에 아침식사를 하니 속이 든든했습니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이라는 생각도 살짝 듭니다. (한국에서도 아침식사 잘 안하는 놈이...)
Mr.골과 한큐아라시야마선을 타고 도착한 아라시야마역은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월요일의 관광지란 그런 느낌이더군요.
덕분에 간사이 여행의 꽃이라 생각하는 교토여행중에 최고의 꽃날을 만나게 됩니다.
<아라시야마역에 도착>
<잘 정돈된 물길>
예전에 듣기를 좋은 정치는 치산치수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한 발자국 들어가서 살펴보면 치수가 잘 되어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좋은 정치인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아마도 섬이라는 특성상 바다로 새어나가기 쉬운 물길의 관리가 중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곳을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다녀본 곳들에서는 정갈하게 정리된 개천들을 볼 수 있죠.
인간의 손길이 닿은 인위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리 옆으로 쏟아지는 물길이 산바람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듯 합니다.
<카츠라강>
아라시야마는 그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헤이안시대(9세기~13세기)부터 귀족들이 즐겨찾던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교토의 주요 관광지로써 각광받고 있죠.
특히나 봄의 벚꽃, 가을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희는 꽃 다 지고 여름이 오기 직전에 놀러 간 것이지만 녹음이 짙은 아라시야마의 모습도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꽃이 피고 단풍이 진 아라시야마의 모습도 구경해보고 싶긴 하네요.
아라시야마역에서 잠시 이동하면 깊이는 얕지만 넓게 펼쳐진 카츠라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도게츠교를 통해 이 강을 건너야 비로소 아라시야마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게 되죠.
<멀리서 바라본 도게츠교>
<치수가 잘 되어있는 카츠라강>
도게츠다리는 아라시야마역에서 아라시야마 중심부로 접근하기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입니다.
다리 기둥은 콘크리트로 되어있습니다만 난간은 나무로 되어있어 예전 다리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계단식으로 정비된 강에서 물이 떨어지며 내는, 귀를 시원케 해주는 소리는 덤입니다.
이준기 주연의 영화 '첫눈'에서는 이준기와 미야자키 아오이(여주)가 도게츠교 옆에서 보트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눈'에서 교토 전반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나오므로 궁금하신 분들은 가벼운 멜로로 감상해보심을 추천드립니다.)
보트를 타고 산 밑자락을 흐르는 호즈강을 유람할 수 있는 투어코스가 있었지만 저희는 텐류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도게츠다리를 중심으로 서쪽을 호즈강, 동쪽을 카츠라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강 주변에서 해를 피하며 독서를 즐기던 편안한 느낌의 여성분>
<나무로 되어있는 난간이 인상깊다.>
<다리 너머를 바라보라고 시킨 뒤에 찍은 Mr.골의 컨셉사진>
<도게츠교에서 보이는 호즈강의 모습>
<호즈강을 유유히 흐르는 보트>
<산이 물에 녹아든 듯한 초록의 강을 가로지르다.>
<건너와서 다시 보는 도게츠다리의 모습>
도게츠다리를 건너자 관광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에도 이 정도인데 주말에는 엄청났겠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가는 방향이 제각각이라 사람에 밀려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대나무숲 초입에서는 조금 빡빡했습니다만...)
Mr.골은 갑자기 회사에서 발생한 업무로 전화로 정신이 없더군요.
휴가를 내도 일을 손에서 뗄 수 없는 직장인의 비애를 다시금 느껴보게 됩니다.
부처처럼 보이던 그의 모습이 처량한 회사원으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상사님들, 휴가내고 간 사람은 찾아서 일 시키지 맙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 말입니다~)
처음에 절 이름을 착각해서 텐류지를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왠지 큰 절인데 사전 조사를 했던 기억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있었는데 전화를 마치고 정신이 돌아온 Mr.골이 저를 채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절 이름이 생소하긴 한데 혹시 몰라서 사전조사로 만들어 놓았던 여행계획표 PPT파일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꼭 가봐야하는 리스트에 있더군요.
확실히 혼자 다닐때 보다 정신이 없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국내도 국외도 혼자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혼자 여행이 익숙해졌기 때문인 듯 합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텐류지로 입장하였습니다.
<텐류지 초입>
텐류지는 입장료를 받는 곳이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소겐치 정원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본당 주변부와 대나무숲 근처까지 넓은 공간을 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다른 하나는 본당 내부로 들어가서 길게 연결되어 있는 건물들을 볼 수 있는 코스인데, 두 코스 모두 볼 수 있는 풍경은 비슷합니다.
각각은 500엔의 입장료를 받지만, 먼저 한 곳을 보고 온 뒤에 표를 제시하면 나머지 한 곳에서는 100엔의 추가요금으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당을 통해 내부 건물을 지나며 먼저 관람을 하시고 후에 소겐치정원 코스를 구경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소겐치 정원 코스의 끝자락에 대나무숲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저희는 정원표를 먼저 산지라 본당코스를 보기위해 할 수 없이 돌아와야 했습니다.)
굳이 본당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신발을 벗고 마루를 걸을 수 있으며, 잠시 앉아서 쉴 곳이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원한 마루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정원을 하염없이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소겐치정원>
정원 입구를 지나자 넓게 펼쳐진 정원과 모래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새 날이 좀 더 맑아져서 파란 하늘도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죠.
연못에선 색색의 잉어가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와 노닐고 있었고, 잘 가꿔진 나무들이 물가에 비춰져 물 속에 다른 숲이 있는 듯 합니다.
잠시 뜨거운 해를 피해 건물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작은 평안함이 느껴졌죠.
풍광에 녹아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마음으로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과 인간과 인위 건물이 하나되는 모습>
넓은 공간에 펼쳐진 정원에서 도심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있던 중에 발바닥에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모래가 들어갔나 싶어 신발을 벗고 거꾸로 들어 탈탈 털어내고는 다시 신었는데, 여전히 따끔따끔하게 무언가가 찌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원짜리 싸구려 신발이 드디어 나를 배신하는구나 하며 다시 신발을 벗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바닥에 돌이 아닌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손톱을 이용해서 잡아 뽑으니 제법 길쭉한 것이 따라 올라왔죠.
오래된 녹슨 못 같았습니다.
소겐치정원이 1343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혹시 그때 떨어진 못이 신발에 박힌게 아닐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 봅니다.
600년을 거슬러 올라 제 발바닥을 따끔하게 해준 쇳덩이에게 안녕을 고하고 편한한 걸음으로 다시 경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600년의 세월을 숨어있다가 결국 내 신발에 상처를 내는데 성공한 못>
<텐류지 위쪽에 가면 대나무숲을 볼 수 있다.>
<다시 내려오면서 소겐치 정원을 보다.>
정원을 돌아다니며 건물 안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신분 차이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본당이 아무래도 바닥보다 높은 쪽에 있다보니 계속 내려다 보이는 느낌까지 드는 듯 했습니다.
실제로 코스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정원에 들어와서 본당에 어떻게 올라가는지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희는 정원 입구로 돌아와 본당에서 입장료를 내고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남의 물건에 손을 안대기로 유명한 일본이라서 그런지 신발장에 잠금장치같은 것 없이 오픈된 형태로 아무데나 넣어놓을 수 있게 되어있었습니다.
신발주머니를 따로 들고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죠.
벌써 과열상태라며 울부짖는 발바닥을 시원한 마룻바닥에 붙이고 숨을 쉬여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본당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본당에 들어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달마도, 카툰의 느낌까지도 나는 심플한 구성이다.>
<눕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 금지표시 속 누워있는 사람이 왠지 깜찍하다.>
본당을 거닐고 있는데 바닥에 두텁게 깔린 신문지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새똥이 잔뜩 쌓여있었죠.
그 위를 보니 제비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어미제비가 앉아서 젭젭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네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불안해 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비는 젭젭하고 운다...>
<같은 정원이지만 본당에서 건너편을 향해 보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길게 놓인 마루를 지나다 볼 수 있는 이런 작은 정원도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을듯>
<화장실 바닥에 까는 마루판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건 내 착각일테지...>
텐류지에서의 상쾌한 관람이 끝나고 바로 옆에 있는 치쿠린(죽림)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치쿠린에 들어가는 골목이 생각보다 좁은데 사람이 많이 모여있어서 북적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토에서 유명한 요지야카페가 여기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었고, 음식을 파는 작은 상점이 모여있어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계시더군요.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목이 말라서 저도 가게에서 빙수를 하나 사 먹었습니다.
전날 만난 처자가 강추하던 빙수에 보기에도 시원한 블루 하와이 시럽을 듬뿍 얹어 주는데 저는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래 한국에서도 슬러시, 스무디 등에 환장하고 달려드는 습성이 있는 저였는데, 일본의 빙수는 얼음입자가 거칠기는 했지만 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내주는
강력함이 있었습니다.
특히 블루 하와이 시럽이 상쾌함을 더해주어 재충전 상태로 치쿠린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300엔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첫눈에 나왔던 치쿠린>
5월의 햇빛을 담뿍 머금은 푸릇푸릇한 대나무들이 길게 쭉쭉 뻗어있는 모습이 인상깊은 죽림이었습니다.
한국의 대나무숲과의 차이점은 정돈된 정도의 차이라고 보여지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속에서 처럼 바람에 대나무 잎사귀들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그런 호사는 누릴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면 느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광지라는 곳이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까 영화같이 통행을 차단한 정갈한 모습을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조용하면 참 아름다울 곳도 사람이 많이 있으면 매력이 좀 덜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에 눈이 오는 불국사에 갇혔던 기억이 납니다.
버스가 오지 않아 움직이지도 못하고 콜택시를 불러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때 봤던 발자국 하나 없이 눈에 덮힌 불국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네요.
그런 장면은 여행을 하면서 자주 겪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제 자신도 그 고요함을 깨는 관광객에 불과하기에 다른 분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초록의 향연>
<아라시야마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인력거와 인력거꾼>
치쿠린에서 내려와 다시 아라시야마 초입으로 돌아오니 슬슬 배가 고파오더군요.
동행인 Mr.골의 제안으로 앞의 가게에서 카레우동을 시켜 먹기로 햇습니다.
식당은 있는데 의자도, 탁자도 없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벤치에 앉아서들 드시더군요.
자연스럽게 한 자리 차지하고 일본 첫 우동을 먹어 보았습니다.
카레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맛있었습니다.(혹시 시장이 반찬이였을까요?)
특히 그 면발이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쫄깃함으로 혓바닥에 감겨왔습니다.
이후에 우동을 다시 먹어볼 기회가 없어서 못먹어봤지만, 나중에 다시 일본에 갈 일이 있다면 카레우동을 찾아서 먹어볼 것 같습니다.
<맛나는 카레우동>
아라시야마에서 점심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가와라마치역으로 돌아왔습니다.
Mr.골은 첫날 늦게 도착한 관계로 교토 대표 관광지인 기요미즈데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곳을 보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첫날 이미 본 장소인 관계로 다시 가서 보기보다는 못본 다른 관광지를 가보기로 했죠.
같이 있는 동안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따로 떨어져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어찌나 신나던지요.
마치 와이프가 친정에 가면 집에 혼자 남겨지는 남편이 맥주 한 박스를 사다가 TV를 보면서 느낀다는 해방감을 제가 느꼈달까요?
짐(?!) 없는 자유여행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친구의 존재는 혼자 있기 뻘쭘한 곳에서는 든든한 아군이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약간의 속박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Mr.골도 저와 같이 생각해줬다면 편할텐데 아니라면 위의 멘트들은 조금 미안해 지는군요...
아무래도 저는 홀로 여행에 더 최적화된 사람인가봅니다...
(그래서 안생기나봅니다...라고 쓰다보니 예전에 좋아하던 여자아이와 돌아다니던 기억은 너무도 즐거웠기에 그냥 칙칙한
남정네랑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 봅니다.)
관람이 끝나는 시간이 각자 다를 것 같아서 오사카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길로 잠시 헤어졌습니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은 사실 교토 도착 첫 날의 일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해서 못봤던 것을 이날 가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우산을 갖고 있지 않아서 걱정되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소식이 교토 여행 막바지를 환상적으로 장식해주는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짐(?!)도 한명 없어진데다 관광객도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꿈에도 그리던 호젓한 관람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은각사 정류장 앞에서 내리자 꾸물꾸물한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아서 빨리 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빠른 걸음으로 은각사를 향해 걸어가는데 한두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살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빗방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여행객이기에 우산을 사는 것은 쓸데없는 지출이라는 생각이 자꾸 지갑으로 향하는 손목을 잡아챘죠.
사실 가격이 문제라기 보다는, 우산을 사면 들고다녀야 하고, 버리지 않는 한은 비가 오던 말던 한국까지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가급적 짐을 줄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산을 사는 것이 꺼려졌던 것입니다.
고민은 짧게 하고 빠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쫄딱 젖는 한이 있더라도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보고 간다. 우산은 사지 않는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군요.
그리고 놀랍게도 비가 그치기 시작합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고 어떤 결혼안한 아줌마가 말씀하시더니 그게 진짜였나봅니다!!
<후지산을 형상화했다고 하는 향월대(고게츠다이)>
은각사에 입장해 보니 비를 피해 사람들이 다 내려간 듯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금각사처럼 사람으로 미어터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을 한방에 날려주고 있었죠.
몇몇 외국인들만 남아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녹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고요한 사찰에서 나라 잃은 것처럼 빽빽 울어제끼던 7살 가량의 인도아이 잊지 않겠다...)
<은각사 모습>
은각사는 일본어로 킨카쿠지라고 합니다.
발음상 금각사와 같은데다가 입장권도 비슷하게 생겼고 건물을 지은 사람이 금각사를 지은 사람의 손자이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습니다.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할아버지 요시미스가 세운 금각사를 본보기로 삼아 은으로 덧씌워진 건물을 지으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건물 전체를 씌울 만한 분량의 은을 구하지 못했고, 이어서 일어난 오닌의 난으로 물자조달이 어려워져 결국 옻칠로 마무리 된 흔한 건물이 된 것입니다.
요시마사 사후에 선종에 기증되어 히가이야마지쇼지(줄여서 지쇼지)가 되었습니다.지금의 킨카쿠지라는 이름은 비공식적 명칭입니다.
은각관음전 이외에도 동구당이라는 건물이 있으며, 은사탄이라는 잘 빗어놓은 모래더미가 있습니다.
향월대(고게츠다이)는 후지산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모래 더미로써 달빛이 반사되도록 만든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밤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달빛이 반사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구글에서 향월대(向月台)로 검색을 하시면 고게츠다이를 인부들이 빚어내고 있는 사진이 많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은사탄(긴샤단)의 모습>
<은각사 주변 산책로를 거닐다.>
<위에서 내려다 본 은각사의 모습>
은각사에는 금각사의 황금빛 가득한 화려함은 없었지만 고요함과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달빛이 내려앉은 사찰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흐뭇한 마음이 됩니다.
교토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다리를 붙잡았지만, 아직은 돌아봐야 할 곳이 더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은각사 입구>
은각사 앞으로 펼쳐진 골목에는 좌우로 가게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두리번 거리던 제 레이더망에 제가 사랑하는 가챠머신(뽑기기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신없이 내용물을 탐독하던 중에 재미난 아이템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나라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비슷하게 생긴 불상이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일본의 국보 1호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인데 교토의 고류지라는 절에 있더군요.
그래서 교토의 몇몇 상점가의 가챠기기에 이런 뽑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요미즈데라와 긴카쿠지 앞에서 발견)
교과서에서 백제와 신라를 통해 일본에 불교가 전파되었고 문물이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류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조사를 해 본 결과 상당히 씁쓸한 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류지는 신라에서 건너온 하다노 카와카쓰(진하승)이라는 사람이 창건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앞선 여행기에서 언급했던 쇼토쿠태자가 "나는 고귀한 불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이 불상을 모실 자가 없는가."라고 묻자
진하승이 자진하여 고류지(광륭사)의 전신인 호코사를 창건하여 불상을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절의 한 켠에 마련된 초석에도 신라에서 온 진하승에 의해 고류지가 창건되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네, 적혀 있는 것이 아니고 적혀있었습니다.
지금은 창건자의 이름 앞에 붙어있던 '신라에서 온'이라는 표현은 파내어져 글씨가 적혀있지 않은 돌로 메워져 있습니다.
또한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경우, 당시 일본에서 불상을 만들던 녹나무가 아닌 한국에서 자생하는 적송이라는 점,
또 여러 부분을 만들어 나중에 합치는 방식의 불상 제작을 하던 일본과 달리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식으로 통나무를 조각하여 만들어졌다는 점,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형태적인 유사성을 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에서 전해졌거나 많이 양보해도 신라인에 의한 조각품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음에도 이런 사실을 어디에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천년을 넘게 보존되어왔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얼굴은 원래의 것이 아닌 근대에 복원을 하며 일본인의 형태로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전방위적인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징용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과 겹쳐지면서 많은 짜증이 납니다.
항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서는 참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후속 조사중에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되는군요...
아는만큼 보일 것이니 많이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가챠기기에서 뽑아온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뽑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일본에는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밖에 없는데 마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는것처럼 금칠한 뽑기를 둔 이유가 무엇일까? 하여간 찜찜하고 꼼꼼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사과정에서 짜증을 뒤로하고 다시 즐거웠던 여행지에서의 기분을 되살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은각사 앞 골목을 한참 내려오니 제가 사랑에 빠진 빙수를 파는 곳이 있더군요.
가격도 아라시야마에서 사먹었던 것 보다 저렴하기에 냉큼 한 컵을 사 들었습니다.
딸기맛이었는데 먼저 먹었던 블루하와이보다는 못하더군요.
그래도 더위를 식혀주는 한 컵의 빙수에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딸기맛 빙수>
얼마나 내려왔을까, '철학의 길'이라고 적혀있는 바위를 만나게 됩니다.
이 곳을 시작점으로 해서 약 2km정도 되는 개천을 끼고 걷는 산책로입니다.
교토의 4대 철학자중 한 명인 니시다 키타로가 즐겨걸으며 사색하던 거리라서 '철학의 길'이라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선불교적인 동양사상과 서양철학을 접목시켰다고 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상이 일본 군국주의의 기반으로 제공되어 전쟁의 옹호논리가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는 이야기는 기억해 두기로 하였습니다.
풍광이 아름답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상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여행을 하면서 다니는 많은 곳에서 우리의 사상과 부딪치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죠.
저는 분노하기 전에 이들을 포용하고 대한민국으로 감싸안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철학의 길>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사색이 절로 일어날 만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속에서 개천이 흐르고, 그 좌우로 무성한 풀과 나무,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걷고만 있어도 머리가 맑아진달까요, 미소가 입에 절로 머금어진달까요.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그 화려함을 뽐낸다는 철학의 길은 여름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도 보석같은 녹음으로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눈이 와도 이쁠 것 같으므로 사계절 좋을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철학의 길에서 만난 거대 잉어, 산란을 하는건지 그냥 물을 흐리는 중인지...>
<요지야카페의 장식물>
철학의 길을 걷다 보면 교토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요지야카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지야는 일본의 코스메틱 브랜드로, 수레에 화장품을 싣고 판매를 하러 다니던 것이 지금의 요지야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100년 전 교토에는 게이샤가 많이 있어서 이런 화장품이 많이 팔렸다고 하니, 화장품 수레의 필요성을 알 법 합니다.
아무튼 이런 요지야에서 카페를 만들어 정원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철학의 길에 열었는데
이 곳에서 마시는 말차 카푸치노와 모나카가 상당히 유명했습니다.
요지야 자체만 보자면 화장용 기름종이(유분흡수)와 유자립밤이라는 것이 유명하더군요.
저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갔지만, 그래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 주변을 얼쩡거리며 잠시 구경을 했습니다.
<요지야 은각사점 간판>
<철학의 길에서 꼼짝도 않고 있는 철학하는 오리>
<철학의 길에서 만난 강력한 레드의 코카콜라>
<산책하기 좋은 철학의 길>
<철학의 길에서 만난 눈감고 철학하는(졸고있는) 고양이>
<철학의 길 끝자락에서 버스를 타러 내려오며>
철학의 길의 다른 한 쪽 끝을 알리는 비석을 보며 사색의 시간이 끝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있자니 갑자기 몰려드는 인생의 무상함과 '내가 언제 다시 이곳을 와볼 수 있을까?'하는 섭섭함이 느껴졌습니다.
과연 철학의 길에서 느낄법한 감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풍광을 마지막으로 눈에 가득 담고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내려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찾으러 돌아갔습니다.
사실 체크아웃은 아침에 나오면서 이미 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여행지에 배낭 이외의 짐을 들고 다니기 어려웠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 부탁해서 짐을 맡겨놓은 상태였죠.
이날이 교토여행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숙소는 교토가 아닌 오사카였습니다.
부지런히 오사카의 베이스캠프, 타이요호텔로 돌아가야 했죠.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어제의 그 분이 카운터에 계셨습니다.
사실 어제의 대화에서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에 작으나마 보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침에 나올 때 체크아웃을 봐준 사람이 다른 사람이어서
다시 볼 수 없는건가 싶었는데, 다행히 짐을 찾으러 갈 때 있어서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감사한 분이 계시면 선물로 드리려고 준비해 갔던 답례품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그 분께 전해드렸습니다.
한국에서 여행준비를 하면서 예전에 한 여행책자에서 읽었던 내용이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현지인의 배려에 감사인사를 할 수 있는 작은 선물 등을 준비하면 즐거운 여행이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크게 공감하기도 했고, 한국의 미를 알리고픈 마음도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준비과정에서 주문 미스로 생각과 다른 물건을 주문했었죠.
태극선(빨노파 태극문양이 그려진 부채) 책갈피를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태극기가 새겨진 책갈피를 주문한 상태라
일본인에게 직접 선물로 드리기가 참 애매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죠.
(한국에서 일본인을 도와주었는데 일장기가 그려진 기념품을 건네받는다면? 하는 역지사지의 생각에서 비롯된 애매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일본인이 아닌 분이었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개를 사서 하나를 주고 왔으니 나머지 네개는 다음번 해외여행때 쓸 수 있겠네요.(일본 말고 다른곳에 가려고 합니다.)
<전달한 답례품 책갈피>
생각보다 더 고마워하며 받아주어서 저로서도 참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페이스북 친구를 맺게 되어 종종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네요.
한국에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시라고 했는데 '10월쯤 한국에 가보게 될 것 같다.'고 하니 짧은 만남이 더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짐을 찾아서 다시 헉헉거리며 가와라마치역으로 향했습니다.
배낭과 짐의 무게를 합치면 약 17.5kg 정도였으므로 저같은 저질체력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열차로 향하는 버스에서야 Mr.골의 현재 위치가 궁금해져서 물어보니 마침 가와라마치역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관람이 끝나고 벌써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천천히 알차게 구경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아침식사도 모스버거에서 했는데 또 모스버거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더군요.
저도 같이 햄버거를 시켜 먹고 숙소로 향하는 열차를 탔습니다.
3일만에 다시 보는 타이요호텔이 집같이 느껴지더군요.
<숙소에서 호로요이에 새우깡으로 마무리>
들어가는 길에 과자와 술을 사 들고 와 한잔 기울이며 7일차 여행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친구가 있으니 저녁엔 좀 즐겁군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빡센 내일의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합니다.
내일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입니다.
기다려라 해리포터!!!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