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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여행 - 5일차 (교토, 기요미즈데라 (청수사), 야사카신사, 난젠지 (남선사), 수로각, 산몬, 교토대학,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5. 6. 10. 15:48
1. 여행편
5일차 일정은 교토여행의 꽃이라고 생각되는 교토입니다.
교토는 오랜 시간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던 곳입니다.
미일전쟁에서 상당수 대도시가 폭격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토가 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래된 문화재들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겨진 곳들이 지금의 교토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관광자원이 되었죠.
그래서일까요?
교토에서는 우리나라 천년고도 경주의 향기가 많이 묻어납니다.
아침 첫 일정은 기요미즈데라로 결정하였습니다.
사람이 없는 고즈넉한 사찰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죠.
오사카의 숙소에서 일찌감치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공용 컴퓨터에 앉아 전날 촬영한 영상을 외장하드에 옮겨담으려고 했는데...
먼저 오신 분이 떠날 줄을 모르시고 계속 앉아계시더군요...
복사하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기다리느라 눈치를 보다가 결국 복사도 못하고 또 출발이 늦어지고 맙니다.
관람시간 전에 도착해서 1등으로 사찰을 누벼보는 호사는 이미 틀려버렸네요.
우메다역에서 한큐선을 타고 가와라마치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지하철도 사람이 많아서 앉아간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습니다.
캐리어도 없이 배낭과 짐가방을 들고 교토를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숙소로 바로 이동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중에 관광지가 가까워서 이동이 편할 것 같은 곳을 미리 예약해 두었죠.
하지만 오후 3시부터 체크인이라 일찍 도착한 저는 체크인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짐을 맡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무거운 짐만 먼저 맡기고 바로 근처의 청수사를 보기 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어디로 올라가는지 모르겠더군요.
근데 옆에 신사 비슷한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올라갈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없는 것이 좀 수상하긴 했는데 제가 워낙 길치라 길을 잃어버릴 때면 모든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라 이때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기요미즈데라 가는 길이라고 쓰인 팻말을 따라가는데 왠 묘지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요미즈데라 가는 길이라고 해서 계속 걷고는 있는데 묘지가 끝없이 펼쳐지자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계속 걷다 보니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청수사 입구가 나타났습니다.
샛길 비슷하게 올라가는 길인 듯 하더군요.
입구 정면에 길게 늘어선 상점가를 지나가는게 정석인듯 했는데, 내려갈 때는 볼 수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저같은 길치가 도착한것만 해도 어딥니까?
봄 벚꽃이 새겨진 표를 받아 들고(하지만 주변에 벚꽃은 이미 없고...) 천천히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청수사 포토스팟>
사진에서 많이 보던 그 숲 속의 청수사 풍경을 다들 어디서 찍으시나 목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는데
계속 걷다 보니 누가봐도 사진을 찍는 장소임을 알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시더군요.
마침 저 건물 앞뒤로 유적보수공사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이 각도가 가장 이쁘게 나오는 각도인 듯 했습니다.
봄에 벚꽃이 피어있었다면 더 아름다웠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에 더 치여다녔을 것이므로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하였습니다.
<오토와폭포>
사진 핫스팟을 좀 지나가면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길을 따라서 내려오다 보면 물줄기가 세개로 갈라져 떨어지는 오토와폭포가 나타납니다.
떨어지는 물을 받아마시면 건강, 학업, 연애에 복이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받아 마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줄을 스려는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기다란 줄을 만드는 바람에 한참을 더 기다려서 가운데 물 한바가지를 마셔보고 왔습니다.
물 뜨는 국자를 많은 이들이 돌려쓰기 때문에 좀 불안했었는데, 사용한 국자를 다음사람 주지 않고 뒤에 있던 통에 계속 넣고 빼고 하길래 살펴보았더니
자외선 소독장치가 되어있더군요.
역시 디테일의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 학업, 연애 순서는 잘 모르겠는데 셋 중에 아무거나 하나만 복받아도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부터 지혜, 사랑, 장수 라고 네이버 지식백과는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부려 세개를 다 마시면 불운이 온다고도 하니 욕심부리지 마셔야 하겠습니다.
<청수사 본당 아래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
청수사는 798년에 승려 엔친이 세운 사찰로 1200년이 넘은 절입니다.
현재 건물은 163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스의 명령으로 재건한 것이라고 하네요.
건물 전체에 걸쳐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렇게 높은 기둥 위에 건물을 지었는데 못 하나 쓰이지 않았다니 참 대단할 따름입니다.
바닥부터 본당 앞 무대까지 높이는 15.4미터로 제법 높습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높이가 11미터인데 그보다는 높으니 좀 덜 무서우려나요?(근데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미터의 근거를 찾을 수가 없군요...)
일본에는 '기요미즈데라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라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 고문헌 조사에 의하면 170년간 234명이 투신했고 생존률이 85.4%라고 하니 생각보다는 생존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살아남았을 뿐이지 어디 한 곳이 크게 다쳤다거나 했겠지요...)
<청수사 입구 정면의 길을 타고 내려가 본다.>
구르면 3년 안에 사망한다는 산넨자카, 2년 안에 사망한다는 니넨자카 거리는 제가 지나갔는지 안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목적지인 야사카신사쪽으로 구글지도를 보며 걸어갔을 뿐입니다.
다만 제가 지나가고 있는 곳이 산넨자카일지도 모르므로 걸음걸이는 좀 조심했죠.
좌우로 펼쳐진 매대를 구경할 정신도 없었던 것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특히 일본의 수학여행철인가 싶을정도로 교복입은 학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매점 구경은 반쯤 포기하고 다녔더랬습니다.
문득 작년에 도쿄 하코네에서 먹은 쿠로타마고(흑달걀)가 생각납니다.
그 곳에서 흑달걀 한개 먹으면 수명이 7년씩 연장되는데 여기서 한번 구르면 누가 이길까요?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목적지 방향으로는 가고 있음을 구글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곳도 어디인지는 알 수 없음...>
<야사카신사 앞 시죠거리>
<야사카신사 입구>
야사카신사는 액과 화를 면해주고 상업을 번성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교토에서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에 이어 정초 참배객 2위에 빛나는 유명한 신사입니다.
일본에는 정초에 신사를 참배하는 풍습이 있는데, 야사카신사의 정초3일간 참배객 수는 100만에 이른다고 하니 직접 보고 싶어도 그 전에 사람에 떠밀려갈 것 같네요.
참고로 교토의 1위인 후시미이나리타이샤의 참배객 수는 2006년 경찰청 발표 기준 269만명이라고 합니다. (전국 1위는 도쿄 명치신궁이 310만명이라고...)
2009년부터 경찰청에선 전국 참배객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집계 방법에 이의를 제기한 여러 신사들 때문이라고 하니
설 대목이 신사들에게 얼마나 민감한 부분인지를 알 것도 같습니다.
야사카신사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양 옆으로 게살꼬치와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요, 저도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타코야키를 먹었습니다.
타코야키 가게 옆에는 간이의자가 있어서 그곳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건너편의 게살꼬치가게에는 그런 의자가 없더군요.
건너편에서 게살꼬치를 사서 이쪽편 의자에 앉으려 하자 타코야키 가게 아저씨가 사람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안도감(?!)과 각박함을 느꼈습니다.
두 분이 서로 사이가 안좋으신 모양이었습니다.
게살꼬치집 아저씨 인상이 좀 험악해 보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보고싶었던 교토대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교토대 도서관 앞 빼곡한 자전거들>
교토대를 가보고싶다고 생각한 첫번째 계기는 사실 별 것 없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대학교인 동경대를 보았으니 교토에 간 김에 비슷한 급인 교토대도 보아야겠다 정도였죠.
교토대로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보니 교토대 졸업식 모습이라는 게시물이 몇번 보였습니다.
<교토대 졸업식 모습>
<교토대 졸업식 모습>
<교토대 졸업식 모습>
유머게시판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교토대 졸업식 사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성해야 할 졸업식 행사에 우스꽝스런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졸업증서를 받으러 연단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같이 웃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러움이 더해갔습니다.
(아...아니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게 아니구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권위주의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보였습니다.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학습에서도 제한이 없는 발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초교육이 중요한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일률적인 학습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쌓인 지식에 새로운 배움을 더해야 하는 대학교 과정이라면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그 어떠한 제약도 거부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교단에는 권위주의와 복종, 그리고 튀어나온 못의 가차없는 제거행태가 많이 남아있죠.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교 교단에서 '시키는대로 해'가 남아있는 한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토대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보았습니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30분이 걸리는 수술을 2시간동안 쩔쩔매던, 지도의의 지속된 질책에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생각하고 결국 임상의의 길을 포기한 한 아이,
미국의 대학에 진학해 연구를 하던 중 고국으로 돌아와 마저 연구를 이어서 하고 싶었지만 미국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연구환경에 낙담하기에 이르고...
그나마 연구하는 분야는 당장 쓰일 수 있는 신약이 아닌 기초연구에 가까운 것들로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가 발견한 연구분야에서 미래 가치를 확인한 교토대는 연구센터를 설립해주고 20년 계획으로 지원을 약속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뤄낸 성과 iPS(induced Pluripotent Stemcell - 유도만능줄기세포), 그의 이름 야마나카 신야.
이 연구로 2012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교토대의 노벨상 수상자는 총 8명.
세계 제일이 아닌 세계 유일을 추구하는 학풍의 교토대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고있냐 서울대?)
<교토대 유일한 포토스팟인 시계탑>
학교 자체는 높은 건물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없는 고요한 캠퍼스의 풍경입니다.
카페도 입구 바로 근처에 있는 곳 말고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가 주변처럼 주변에 뭔가 먹을거리가 넘쳐나지도 않았구요.
특징이 있다면 그 어느곳에서보다 많은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는 점 정도입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주변 나무들과 동화되어 녹음이 짙게 깔린 느낌이 많았습니다.
일요일이었는데 입구에 있는 광장에서 춤을 추거나 단체줄넘기를 하는 등 편안한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일본 자율교육의 산실 교토대를 보며 참 부러운 마음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교토대 정문>
<세계 대학 평가에서 상위에 한자리 차지하는 교토대, SKY보다 많이 높다.>
<난젠지로 가는 중 만난 물길>
버스에서 내려 난젠지로 터벅터벅 걷고 있자니 소방서가 보이더군요.
음 일본의 소방서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싸이렌이 울리면서 사람들이 냅다 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깜짝 놀라서 입구에서 도망치듯 피하자 얼마 안되어 소방차가 나가더군요.
이어서 앰뷸런스도 나가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신이 잠시 없었습니다.
혹시 일본에는 소방차가 지나갈 때 다른 차들이 멈춰주거나 비켜주고 하는지 지켜봤는데 그런거 없더군요...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나라가 먼저 모세의 기적을 일상화 시켰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소방서를 지나가다 보니 사람들이 사거리에 바글바글 모여있더군요.
아까 출발한 소방차와 앰뷸런스도 이곳에 있었구요.
사거리 중앙에 승용차 한 대가 옆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사고가 난 것인지...??)
다행히 사람은 차 안에 없는 것으로 보아 후송된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못 본 장면을 일본에서 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고지 주변에서는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순경에게 사고 목격담을 전하는 아저씨들이 계셨는데 그건 우리나라 모습하고 똑같더군요.)
원래는 난젠지가 야사카신사 근처에 있기 때문에 교토대가 아닌 난젠지를 먼저 갔어야 했습니다.
근데 워낙에 타지고, 저는 워낙에 길치고, 피곤도 하고 하다보니 잠시 판단 착오가 있었죠.
그래서 버스를 타고 멀리 있는 교토대를 보고 온 뒤에 역방향으로 다시 돌아와 난젠지에 가는 헛발질을 하게 됩니다.
물론 교토 버스패스가 있고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던 것도 아니지만, 여행지에서는 1분 1초가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난젠지에 있는 산몬의 입장시간을 놓쳐 올라가보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난젠지 수로각>
난젠지에는 로마의 수로교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로각(소스이바시)라고 하는 것인데, 이 다리 위로는 사람이 아닌 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도 지나갈 수는 있겠습니다만...)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코에서 물을 끌어다 교토에 공급하는 수로인데, 산에서 낙차가 생기면 다시 올리기가 어려우므로 다리를 놓아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로각은 본래 난젠지에서 건설한 것은 아닙니다.
1800년대 말에 교토의 산업 부흥을 위해 물과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수로를 만들고, 이로부터 수력발전을 하여 트램을 운영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더군요.
(일본 최초의 수력발전이라고...)
난젠지는 1291년에 설립된 절이니 이 다리와는 약 5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어쩐지 오래된 절에 벽돌 건물이라 뭔가 이상하긴 했죠.
그래도 이 다리는 10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얼룩덜룩한 벽돌들이 주변의 녹음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난젠지 수로각>
<수로각 전에 물이 흐르는 모습>
<난젠지 수로각>
<이끼에 덮힌 나무가 수로각과 잘 어울리는 듯 하다>
난젠지에는 호조정원이라는 멋들어진 절이 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로각을 본 만족감에 나머지를 모두 잊어버린 셈입니다.
어디서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면 다른 곳에 본당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이 수로각을 본 것 하나만으로 난젠지는 그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못버틸 것 같네요...
<난젠지 산몬>
난젠지에는 삼문이라는 거대한 문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실물로 봤을 때 더 거대한 느낌이 납니다.
규모로만 보면 남대문이나 광화문 급의 느낌이 납니다.
저 위에 올라가서 교토의 풍경을 내려다 보는 것이 절경이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저 문에 올라가는 입장료만 500엔이라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입장권 판매하는 아주머니가 분주하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입구에 終 이라는 한자가 쓰여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시마이 데스요...
이미 올라간 분들은 관람을 하고 계셨지만 그 사이에 입장이 종료되어서 저는 못 올라가보게 되었습니다.
올라가도 별로 볼게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만, 그것도 다 올라가 봐야 할 수 있는 말 아니겠습니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헤이안 신궁 입구를 스치듯 지나가다>
교토의 오후는 일찍 끝납니다.
특히 관광지의 경우에는 오후 6시면 대부분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를 하기가 참 애매해지죠.
저도 일찌감치 숙소에 돌아와서 체크인을 하고, 땀에 쩔은 몸띵이를 씻어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7시가 다 되어 후발대(?!)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사실 여행계획을 세우던 중 친구 한 마리의 동행이 결정됩니다.
직장인이라는 특성상 저처럼 긴 여행계획은 잡지 못하고, 주말을 끼고 3일의 연차를 이용하여 4박5일의 휴가를 만들어 냈죠.
그리고 토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에 도착, 하루카 열차를 타고 교토로 날아온 것입니다.
나중에 와서 같이 들어간다는 컨셉이었습니다.
여행계획의 A to Z를 모두 결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도 노고를 치하하긴 커녕 부족함을 지적질 해주어 분노지수를 끌어올리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몇번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보았을 제 순간적 짜증들에도 크게 모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부처님같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 녀석이 교토에 도착해서 날린 멘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토역으로 마중나와줘, 나 버스 무서워 데려가주세요."
키만 봐도 저보다 20센티는 넘게 크고 덩치로 보면 30키로는 더 나갈 녀석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직장이 해외영업부에 있기 때문에 더 험하고 더 많은 곳에서 교통편을 이용해 봤을 텐데 말이죠.
벌써 4박 5일째 빡빡한 일정에 발바닥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토역으로 마중을 가기로 했죠.
그동안 길을 잘 안 잃고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이 친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는데 정류장을 못찾아서 시간이 좀 늦어지자 바로 태클이 들어오더군요.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말이죠...
이때부터 이 친구는 제 교통계획을 신뢰하지 못하기 시작합니다.
친구 한 놈을 더 꼬셔서 세명을 만들어서 이놈 전담마크를 시키고 저는 편안하게 여행을 다녔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요때 아주 잠깐 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나간 교토역에서 바라본 교토타워, 간 김에 교토역 구경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교토역에 가자 외국에 나온 것 같지 않은 프리스타일로 노란 캐리어를 들고 있는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그 친구나 저나 저녁을 안먹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밥을 먼저 먹기로 하였습니다.
(편의를 위해 친구를 '미스터 골' 이라 지칭합니다.)
Mr.골은 식도락가입니다.
한국에서 같이 여행을 가 보면 어디 맛집이라며 열심히 검색하여 찾아다니는 타입이더군요.
저는 줄서서 먹는 것을 질색하는 타입입니다.
'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근처에 아무데나 가서 먹는다'가 제 식사 컨셉이었죠.
Mr.골은 저를 기다리는 동안 교토역 근처의 유명 라멘집을 검색해놨더군요.
우선 따라가 보았습니다만 아니나다를까, 길게 서 있는 줄이 식욕을 뚝 떨어뜨려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둘다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기다릴 정신력이 부족했고, 교토역으로 돌아와 지하의 포르타라는 식당가에서 라멘을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교토에 뜬금없는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
다시 숙소로 돌아와 Mr.골과 이후 일정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뭐 논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 사전에 계획된 대로 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일정 브리핑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산티아고 게스트하우스는 전에 묵었던 호텔 타이요와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개인실이 아닌 기숙사 형태의 방을 여러명과 같이 써야 했죠.
예약 서류를 제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체크인 할 때 친구것도 같이 체크인 했는데 이게 좀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Mr.골은 코를 좀 고는데 침대를 제 위로 배정을 해 주었더군요...
따로 배정했다면 아예 다른 방으로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참 아쉽습니다.
이날 저녁 피로가 상당히 누적되어 어찌 보냈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이른 잠을 청했습니다.
5일차의 밤이 저뭅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