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박9일 북큐슈 여행기 - 5일차여행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6. 7. 18. 20:04
5일차 일정은 8박9일의 북큐슈 여행 중에 가장 많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닌 날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은 많고, 시간은 별로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나가사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일찍 예약해둔 열차를 이용하여 사가역으로 갔습니다.
사가역에서 무언가 볼 예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사가역이 가장 무난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의 일정은 나가사키에서 사가역으로 간 뒤 버스를 타고 야나가와에 가서 뱃놀이를 한 뒤에 다시 사가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타케오온천역에서 3000년짜리 녹나무를 보고 온천을 즐긴 뒤 다시 사가로 돌아와 열차를 타고 가라쓰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가에 도착하자마자 귀찮은 짐이었던 캐리어를 코인락커에 넣어두었습니다.
나중에 이 코인락커가 저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지만 그건 좀 나중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가사키역>
<시사이드라이너와 카모메>
북큐슈여행을 거치면서 철도에 입덕한 제게 매끈에게 빠진 885계 카모메 열차는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787계 카모메가 짙은 회색 외관에 각진 모습이었다면 885계 카모메는 유선형에 하얀색 열차입니다.
외관의 세련된 모습도 멋지지만 객실 의자가 사장님 의자같은 느낌의 가죽시트로 되어있는 부분도 독특합니다.
사전에 열차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885계 열차는 곡선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틸팅기능이 도입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실제로 곡선주로에서 차체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더군요.
한국에서도 지하철이나 타봤지 KTX같은 것들을 타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지라 이런 체험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점점 철도의 매력에 빠져들어갑니다.
<885계 카모메>
사가역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구름의 모양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썰물이 빠져나간 후의 모래밭에 물결무늬가 새겨진 것을 보신 적 있으실겁니다.
그런 형태의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습니다.
'어? 저거 지진운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마침 4월에 구마모토에 대지진이 발생했던 것 때문에 지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지진운이라는 구름을 보니 괜히 싱숭생숭해졌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많이 발견되고 있으니까요.
제가 지진운을 본 것이 6월 11일입니다.
그리고 6월 12일 도쿄부근 사이타마현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신기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진운?>
야나가와는 후쿠오카현 남단에 위치한 작은 도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곳으로 산이 잘 안보일 정도로 끝없는 평야갸 펼쳐져 있습니다.
예전에 이곳에 있던 다나카 요시마사라는 영주가 농업용수를 위해 수로를 개발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총연장이 470km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구글지도에서 야나가와를 검색하면 물길이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나가와 지도>
사가역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니시테쓰 야나가와역이라는 곳입니다.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니시테쓰선을 이용하면 쉽게 도착할 수 있지만, 저는 사가역이 베이스캠프였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리가 제법 되는 곳이라 버스를 타고 한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외곽지대이기 때문에 노령인구가 많은데 정류장에서 버스를 멈추고 기사가 직접 내려서 시중을 들며
어르신들의 승하차를 돕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한참 서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도 없었고, 도움을 받은 사람도 거듭 감사표시를 하는 모습에서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점차 좋아지겠지요?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역 근처에서 잠시 돌아보고 있자니 뱃놀이 노리바(정류장)이 보였습니다.
바로 가서 표를 구매하고 삿갓을 하나 빌려 배에 올랐습니다.
날이 뜨거웠기 때문에 100엔을 주고 빌려 쓴 것인데 이것이 신의 한수였음을 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늘이 없는 개천 한 가운데를 배로 가로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햇빛을 직격으로 얻어맞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삿갓이 아니었다면 얼굴이 홀랑 타버렸을 것이 훤히 보이더군요.
배를 운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는데 제가 탄 배는 젊은 여자분께서 노를 잡으시더군요.
중간에 낭랑한 목소리로 일본 민요같은 것을 부르시는데 약간의 부끄러움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아서는 아직 초심자인듯 보였습니다.
뱃사공분이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아쉬울뻔했는데 옆에 앉은 분들이 넝쿨째 들어온 호박이었습니다.
호주에서 왔다는 분 두분이 일본인 가이드를 대동하고 계셨는데 바로바로 영어로 통역을 해주시더군요.
일본어보다 영어가 편했던 저에게 공짜 가이드가 붙은 셈입니다.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물과 함께 배와 함께 물 위를 흐르다 보면 뱃사공이 몇몇 장소에 대해 설명을 해줄 때가 있습니다.
다나카 요시마사의 동상이 있는 곳, 비틀즈 존 레논의 아내였던 오노요코의 아버지가 살았다는 곳도 있었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수상매점, 전통방식의 새우잡이 시설, 사진촬영스팟 등을 이야기해줍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 사이사이로 놓인 수로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다니는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편안하고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곳곳에 핀 수국이 강에 비쳐 색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유자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물가에 놓인 바위 위에서 거북이가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배 주변으로 이따금씩 물고기가 튀어올라 저를 깜짝 놀래키곤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유유자적, 이게 제가 야나가와의 뱃놀이에서 느낀 감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촬영스팟>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매점>
<야나가와 가와쿠다리 새우잡이 시설>
문제는 뱃놀이가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사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니시테스야나가와역으로 가야만 했는데, 돌아가는 셔틀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간계획이 틀어질 것이 우려된 저는 구글지도를 켜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중에서도 가장 더울 시간인 12시 근처에 뙤악볕을 걷고 있자니 정신이 오락가락 하더군요.
1시간 남짓을 걸으면서 자판기 음료를 세 번이나 뽑아먹어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야나가와라는 동네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버스를 탔을 법 합니다.
심지어 니시테츠야나가와역에 도착했을 때 30분에 한번 있다는 사가행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고 맙니다.
여행은 여유롭게 즐기라지만 이럴때는 멘탈이 흔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가역>
사가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지정석으로 예약해둔 타케오온천행 열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사가 멀리까지 구경하고 싶었지만 일정의 압박으로 버리는 패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남겨두면 다음에 다시 올 핑계가 될 수도 있겠지요.
사가역 앞에는 면부립(멘부류우)이라고 하는 민속놀이 동상이 있습니다.
귀신가면을 쓰고 북과 징을 치며 풍년을 기원하고 악령을 퇴치하던 풍습이라고 하네요.
이게 제가 사가에서 본 전부인 것 같습니다.
역 한바퀴를 가볍게 돌고 편의점에서 요기거리를 사 점심을 대강 때웠습니다.
타케오온천에 가는 길이 멀었으면 에키벤을 사거나 패스트푸드 세트를 구매해 기차에서 먹었겠는데 사가역에서 고작 20분 걸리는 거리라 포기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 저는 코인락커를 열어야할지 말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야나가와에서 사진을 찍어대다 보니 메모리가 거의 꽉 차게 되었는데, 이를 옮겨넣을 리더기와 태블릿이 전부 캐리어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삼십여장의 여유공간이 남아있기도 했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500엔이나 하는 코인라커를 열기가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미리 생각을 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여행객의 어리석음인 것 같습니다.
혹은 저만의 어리석음일지도 모르겠네요.
<타케오온천>
사실 타케오신사를 가보기로 한 이유는 한 블로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큐슈에서 볼 곳들을 정하기 위해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던 저는 한 블로그에 있던 게시물에 꽃히게 됩니다.
그 분은 타케오신사의 3000년령의 녹나무가 있는 곳이 본인이 가본 곳 중에 가장 신비로운 장소였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협찬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고, 유럽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게시물을 올린 분이 하신 말씀이라 상당히 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렇게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을 하는 걸 보면 대단한 곳임에 틀림 없어!'
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요?
그 생명력이 경이롭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신비로움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재미를 느끼게 되었으니 타케오행이 손해는 아니었네요.
뭐였냐구요?
<타케오신사 이정표>
여전히 습하고 더운 날씨 속에 타케오온천역에서 타케오신사로 가는 길은 제법 길었습니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도착한 곳에는 아담하고 한적한 신사가 있었습니다.
건물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지만 이 신사의 창립 연도는 735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360년을 살았다는 타케우치 수쿠네를 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장수, 액막이, 행운 등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타케오신사 입구>
<타케오신사 오르는 길>
<타케오신사>
일본인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사겠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 뒤켠에 존재하는 3000년 수령의 녹나무가 더욱 유명합니다.
일본 전통에 따르면 오래된 나무에는 신이 깃든다고 하여 신목이라 부르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타케오신사의 녹나무도 3000년의 세월동안 자연의 혹독한 시험을 거치면서도 그 생명을 유지했다고 보여집니다.
뿌리 부근에는 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생겨 현재는 제단으로 사용되고 있죠.
일본에서 6번째로 커다란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를 보러 가는 길은 큐슈올레길에 속하는 코스로 좌우로 대나무가 촘촘히 솟아 있고 바닥은 깔끔하게 잘 닦여 있습니다.
<타케오신사 녹나무 가는 길>
<타케오신사 큐슈올레표지>
<타케오신사 3000년령 녹나무>
<타케오신사 녹나무>
<타케오신사 죽림>
<타케오신사 녹나무와 죽림>
나무의 생김새와 대나무에 의해 가려진 그 신비한 광경을 보니 왜 일본인들이 신목으로 신성시하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 아래쪽에서 위에 있는 나무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제단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줌렌즈로 땡겨 보았는데 참이슬이 여러병 보이더군요.
일본 신사이고 출입 금지구역일텐데 왜 제단에 참이슬이 올라가 있었을까요?
참 알 수 없는 것 투성입니다.
<타케오신사 죽림>
타케오신사를 관람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다음 사가행 열차시간을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잡았더랬습니다.
나무까지 보고 나니 딱히 할 일은 없는데 시간이 세시간 정도 비어있었습니다.
타케오신사 맞은편에 타케오 시립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구경하러 갔을텐데 이때는 알지 못했던게 한이 맺힙니다.
근처에 미후네야마라쿠엔도 있던데 아주 땅을 치고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또 북큐슈를 찾을 이유가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남은 시간동안 타케오온천 로몬(누문)이나 구경해볼까 하고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 보았습니다.
마침 중학생들의 하교시간이었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나타나더군요.
제가 휴대용 배터리에 USB선풍기를 달고 바람을 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꺄르륵 웃어댑니다.
그 나이대에는 그런 웃음이 맑고 이쁘게 느껴집니다.
<타케오온천 가는 길>
<다케오온천 신관>
<타케오온천 로몬>
타케오온천은 1300년 전부터의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온천입니다.
인터넷에서 타케오온천의 정보를 찾아보면 진구왕후가 삼한을 공격한 후 돌아오는 길에 창을 찌르자 온천이 솟아났다고 되어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정신나간 소리입니다.
삼한 정복설은 일본서기를 기반으로 하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이야기인데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 처럼 영문 관광안내지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 학계에서도 소수파만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인용하는 이들의 저의가 참 무섭습니다.
일본인은 친절하고 일본은 관광하기에 좋은 나라이지만 이런 행태들은 항시 이들의 행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지만 그래도 온천수의 질은 좋아서 많은 여행객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일본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할만한 이름인 미야모토무사시, 다테마사무네 등도 이 온천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온천 입구의 누문은 다쓰노 긴고라는 사람의 설계로 1914년에 지어졌습니다.
다쓰노 긴고는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본점(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이용), 일본 도쿄역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입니다. (서울역은 긴고의 제자가 설계)
누문은 용궁의 입구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져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미난 점은 도쿄역과의 관계인데요.
도쿄역의 천장에 12간지 중 8간지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의아해하던 차에 나머지 4개 간지가 최근이 되어서야 누문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설계자의 재치있는 보물찾기 같은 느낌으로 일본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다케오온천 모토유>
누문을 구경했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사가행으로 예약해둔 지정석 시간을 변경해서 일찍 출발할까 생각도 했지만, 가라쓰에 도착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민이 좀 되었죠.
그러다가 인생 첫 일본 대중온천을 이용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게 바로 신의 한수였습니다.
일본 온천을 본격적으로 경험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동안 숙소에 딸린 목욕탕 정도를 사용하는 수준이었지, 이렇게 대중 온천을 이용해볼 생각은 못해본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 틈바귀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온천에 들어가는 기분이 묘하더군요.
근데 이 첫경험이 정말 황홀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옷벗은거 말고 물에 들어간거요...)
물이 어쩜 그렇게 매끌매끌할 수 있을까요?
몸을 잠시 담궈두었을 뿐인데 온몸이 반들반들해진 느낌이 납니다.
지친 다리가 뜨끈한 물에 닿자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는 착각마저 일으켰습니다.
5분쯤 들어가있다 더워지면 나와서 샤워기로 찬물을 한 바가지 받아 머리에 끼얹고 다시 온탕에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루의 피로 뿐 아니라 큐슈에서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가 모두 풀릴 지경입니다.
모두들 이렇게 온천의 노예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얼었다 녹았다 덕장의 황태처럼 온천을 즐기길 한 시간, 수건으로 잘 닦고 뽀송뽀송해진 몸으로 대합실에 앉았습니다.
뙤악볕을 돌아다니느라 땀에 절었던 것이 언제였냐는듯 새로 빨래한 옷을 입었을 때의 상쾌함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목욕 후에 바나나우유를 먹듯 일본인들은 흰 우유를 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판기에서 커피우유를(?!) 뽑아 들었습니다.
유리병에 들어있는 얼마 안되는 우유를 시원하게 원샷하고 나니 왜 그들이 목욕 후에 우유를 찾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커피우유임에도 고소한 그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이라니요.
이날 저는 어느때보다 새로운 경험을 몸에 새기고 가게 되었습니다.
<타케오온천역>
온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타케오온천 역을 통해 사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맡겨두었던 캐리어를 찾아 이제는 가라쓰로 갈 시간입니다.
하루종일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던 떠돌이 생활의 마침표를 찍을 숙소를 찾아가야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묵게되는 호텔급 숙소에서 반신욕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죠.
무려 해변가에 위치한 호텔인데 가격이 저렴한 부분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요.
<사가행 미도리특급>
<니시가라쓰행 열차>
가라쓰역에서 내리니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한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밤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으슥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목적지인 숙소까지는 약 1.8km정도 되는데 가라쓰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죠.
1.8km는 걸으면 안되는 거리입니다.
아니, 제게만 죽을만큼 힘들었던 거리라고 생각하는게 좋겠네요.
그래도 도로변에 있을때는 괜찮았는데 숙소 가까이 가자 인도도 없이 차도 옆을 걸어야 했습니다.
주변을 지나치는 차들이 무서워 바짝 붙어 걸어야 했던 것과 동시에 캐리어도 굴리며 가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졌습니다.
<가라쓰성 라이트업>
호텔을 뭐 이런데다 지어놨냐며 애꿏은 호텔을 욕하기를 한시간이 넘고서야 애타게 원하던 호텔 입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가라쓰역에서 사들고 온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두려고 했는데 없더군요.
호텔급에서 냉장고가 없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대신 복도에 있는 얼음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아이스버킷이 있었습니다.
이런건 와인이나 담가놓고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맥주를 담가놓게 되었네요.
두개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입구가 좁아서 하나밖에 들어가지 않은 점은 여러 아쉬움들 중에 아주 결정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맥주가 차갑게 식기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시원한 한모금에 대한 열망이 차올랐고, 덕분에 맛나게 먹을 수 있었으니 다행일까요?
창 밖으로는 칠흑같은 어둠인 가운데 파도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아쉽게도 바다 반대쪽 방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소리만 들을 수 있었지만, 내일이면 소나무숲 앞에 놓인 해변의 모래밭을 거닐 수 있을 겁니다.
북큐슈에 머물 날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요.
5일차 밤이 저뭅니다.
정보편
<신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의미와 이름>